목차
Ⅰ. 일제시대(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노동쟁의
Ⅱ. 일제시대(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노동운동사
Ⅲ. 일제시대(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재일한인노동운동
Ⅳ. 일제시대(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재일조선인
Ⅴ. 일제시대(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토지조사사업
1. 식민지 근대화론 입장에서 본 토지조사사업
2. 식민지 수탈론의 입장에서 본 토지조사사업
3. 검토와 평가
Ⅵ. 일제시대(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행정왜곡
1. 제1기 무단통치기의 행정개혁
2. 헤유조정(문화정치)기의 행정개혁
3. 제3기 : 병참기지화 및 전시동원기(1931-1945)의 행정변혁
참고문헌
Ⅱ. 일제시대(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노동운동사
Ⅲ. 일제시대(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재일한인노동운동
Ⅳ. 일제시대(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재일조선인
Ⅴ. 일제시대(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토지조사사업
1. 식민지 근대화론 입장에서 본 토지조사사업
2. 식민지 수탈론의 입장에서 본 토지조사사업
3. 검토와 평가
Ⅵ. 일제시대(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행정왜곡
1. 제1기 무단통치기의 행정개혁
2. 헤유조정(문화정치)기의 행정개혁
3. 제3기 : 병참기지화 및 전시동원기(1931-1945)의 행정변혁
참고문헌
본문내용
되었던 자문기관을 한국인 거주지구인 농촌지구에도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지방에 설치된 자문기관은 지방자치와는 전연 무관한 친일파 세력을 동원한 관선기구에 불과하였으며 한민족을 회유분렬시키는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이상 소위 ‘문화정치’의 기만성에 관하여 대략 살펴보았으나 결국 사이토우(藤)의 ‘문화정치’는 노골적인 무단정치보다 훨씬 세련된 것으로 즉 종래의 기본 지배 방침을 답습함과 아울러 일제가 내외의 위기상황에 대처해서 사태발전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절박한 여건 하에서 시도된 식민통치수법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31운동부터 만주침략까지의 시기를 기만적인 ‘문화정치’가 자행된 시기로 특징지을 때 그 실태는 군비경찰의 강화, 친일분자와 친일단체의 육성, 민족회유 및 분렬지배정책, 민족말살을 목표로 하는 동화교육, 정치선전의 강화, 산업구조재편과 산미증식계획 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 시기의 주요한 행정조직의 변혁을 살펴보면 1919년 8월 20일(제20호) 개정규정에 따라
ㄱ. 총독부 관방의 무관실이 폐지되었는데 이는 총독을 육해군 대장이 아니라도 보(補)할 수 있도록 한 관제를 개정(제2조의 개정)하였기 때문이다.
ㄴ.종래 내무부에 속해 있던 학무국을 총독 직속으로 개편했다.
3. 제3기 : 병참기지화 및 전시동원기(1931-1945)의 행정변혁
①전시동원체제의 전개
다음 1930년대의 병참기지화정책과 전시동원체제 및 태평양전쟁 말기의 총력전체제의 변혁과정을 통한 행정의 변화에 관하여 살펴보면, 1931년 만주사변 이래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을 병참기지화하면서 전시동원체제를 준비하는데 주력하였다.
우선 1931년 6월에 조선총독에 취임한 우가키(宇垣一成)는 농촌경제의 개발과 농민의 자력갱생을 위한 국민운동으로 농촌진흥운동을 표방하면서 총독부기구를 전체주의적인 동원체제로 재편성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이 운동을 통하여 한국 전역에 모든 관민단체와 기관을 총동원하여 ‘지방진흥’, ‘정신작흥’,‘사회교화’,‘농촌진흥’, ‘자력갱생’ 등을 상징적으로 표방하는 국민운동을 가동시키는 동시에 소위 ‘일선융합’과 ‘내선일체화’를 강도높이 표방하면서 한국인의 인력을 식량증산과 대륙침략정책에 동원하였다. 이 운동의 주체인 농촌진흥운동의 최고지도기관은 조선총독부 농촌진흥위원회였으며, 그 구성을 보면 정무총감이 그 위원장을 겸하고 위원으로는 총독부의 각 국장 및 경기도지사, 문서과장, 지방과장, 사계과장. 이재과장, 상공과장, 수산과장, 토목계량과장, 임정과장, 학무과장, 사회과장, 보안과장, 그리고 조선총독부 촉탁 2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질상 조선총독부 중앙정부의 최고관리계층 및 중간관리층의 책임자가 총망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앙기관 밑에 각도의 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각도 농촌진흥위원회와 도(島)군의 도사(島司)군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군도 농촌진흥위원회가 또 각 邑面에는 각 邑面長을 위원장으로 하는 邑面농촌진흥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농촌진흥운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각도 참여관회의 및 전국 부윤, 군수회의를 개최하고 각급 행정기관의 각급 관공리에게는 강습회, 순회연설회, 시국광구강습회 등을 개최하여 이 운동의 이념과 정신 및 취지를 선전하고 이 운동의 행정지원을 제도화하였다. 이로써 전국 농촌의 말단행정관리까지 동원해서 이들이 각급 관공리 및 경찰, 학교, 금융조합 등과 혼연 일체가 되어 이 운동을 제일선에서 지도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3년 5개월간에 실시된 농촌진흥운동은 총독부 관료기구를 전체주의적 전시동원체제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후의 전시동원체제형성에 기초가 되고 애국반조직의 보급과 황민화 정책에 큰 여향을 주었다.
뒤이어 南次郞總督의 취임(1936년 8월)과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은 총독부의 전시동원체제를 총력전체제로 변혁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한국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전면적으로 침략전쟁에 강제동원 할 수 있는 전시동원체제를 확립하였다. 이를 위해서 한국인에게 신사참배,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교육령 개정 등 정책을 통하여 한국인의 모양이나 마음과 피, 그리고 육체까지도 모두 일본인화시키려는 철저한 동화정책을 강행하였다. 아울러 한국인의 사상을 통제하고 대중통신, 정보매체를 장악하여 전시협력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1937년 7월에 정무총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선중앙정보위원회와 각도 정보위원회를 총독부관제로 설치 운영하였으며 1년 후에는 그 사업을 그대로 계승하여 1938년 7월 7일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결성하여 식민지 한국에서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내선일체‘를 기조로 한국인의 ’황국신민화‘를 기본 목표로하는 제21항목의 실천요목을 강행하였다. 그 조직은 중앙에 조선총독부 주도하에 ’국민정신총동원위원회‘와 동 ’간사회‘가 있고 총독부 지방행정의 각 단계별로 지방연맹이 결성되었으며, 아울러 각종 연맹이 관공서, 학교, 은행, 회사 기타 단체별로 결성되고 또 이 운동의 말단기저조직으로 애국반조직이 있고 연맹추진대가 도연맹에 부설조직으로써 결성되었다. 애국반은 동리부락연맹과 각종연맹 아래 10호(戶)를 하나의 애국반으로 결성하여 한국주민의 거의 전부를 포함하였다. 이렇듯 애국반 조직은 조선인 전체를 황국신민화하여 침략전쟁에 동원하려는 계획하에 추진된 것으로 각 戶의 사생활까지 서로 감시하게 한 것이다.
한편 \'연맹추진대\'는 청년훈련소나 육군특별지원자 훈련소 등에서 훈련받은 황민화된 가장 모범적인 중견정예분자들로 구성하여 이 운동을 추진하고 실천하는 중추적 기관으로 삼은 것이다.
참고문헌
김인덕 - 식민지시대 재일조선인 청년운동에 대한 연구, 한국사학회, 1997
이덕재 - 일제하의 노동운동, 전남대학교, 1985
이영호 - 일본제국의 식민지 토지조사사업에 대한 비교사적 검토, 한국역사연구회, 2003
정혜경 - 식민지 시대 노동운동사연구의 현황과 과제, 한국근현대사학회, 1996
정혜경 - 식민지시대 재대판 한인노동자의 생활상, 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함인선 - 일본 식민지시대의 행정법제, 전남대학교 법학연구소, 2009
이상 소위 ‘문화정치’의 기만성에 관하여 대략 살펴보았으나 결국 사이토우(藤)의 ‘문화정치’는 노골적인 무단정치보다 훨씬 세련된 것으로 즉 종래의 기본 지배 방침을 답습함과 아울러 일제가 내외의 위기상황에 대처해서 사태발전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절박한 여건 하에서 시도된 식민통치수법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31운동부터 만주침략까지의 시기를 기만적인 ‘문화정치’가 자행된 시기로 특징지을 때 그 실태는 군비경찰의 강화, 친일분자와 친일단체의 육성, 민족회유 및 분렬지배정책, 민족말살을 목표로 하는 동화교육, 정치선전의 강화, 산업구조재편과 산미증식계획 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 시기의 주요한 행정조직의 변혁을 살펴보면 1919년 8월 20일(제20호) 개정규정에 따라
ㄱ. 총독부 관방의 무관실이 폐지되었는데 이는 총독을 육해군 대장이 아니라도 보(補)할 수 있도록 한 관제를 개정(제2조의 개정)하였기 때문이다.
ㄴ.종래 내무부에 속해 있던 학무국을 총독 직속으로 개편했다.
3. 제3기 : 병참기지화 및 전시동원기(1931-1945)의 행정변혁
①전시동원체제의 전개
다음 1930년대의 병참기지화정책과 전시동원체제 및 태평양전쟁 말기의 총력전체제의 변혁과정을 통한 행정의 변화에 관하여 살펴보면, 1931년 만주사변 이래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을 병참기지화하면서 전시동원체제를 준비하는데 주력하였다.
우선 1931년 6월에 조선총독에 취임한 우가키(宇垣一成)는 농촌경제의 개발과 농민의 자력갱생을 위한 국민운동으로 농촌진흥운동을 표방하면서 총독부기구를 전체주의적인 동원체제로 재편성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이 운동을 통하여 한국 전역에 모든 관민단체와 기관을 총동원하여 ‘지방진흥’, ‘정신작흥’,‘사회교화’,‘농촌진흥’, ‘자력갱생’ 등을 상징적으로 표방하는 국민운동을 가동시키는 동시에 소위 ‘일선융합’과 ‘내선일체화’를 강도높이 표방하면서 한국인의 인력을 식량증산과 대륙침략정책에 동원하였다. 이 운동의 주체인 농촌진흥운동의 최고지도기관은 조선총독부 농촌진흥위원회였으며, 그 구성을 보면 정무총감이 그 위원장을 겸하고 위원으로는 총독부의 각 국장 및 경기도지사, 문서과장, 지방과장, 사계과장. 이재과장, 상공과장, 수산과장, 토목계량과장, 임정과장, 학무과장, 사회과장, 보안과장, 그리고 조선총독부 촉탁 2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질상 조선총독부 중앙정부의 최고관리계층 및 중간관리층의 책임자가 총망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앙기관 밑에 각도의 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각도 농촌진흥위원회와 도(島)군의 도사(島司)군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군도 농촌진흥위원회가 또 각 邑面에는 각 邑面長을 위원장으로 하는 邑面농촌진흥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농촌진흥운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각도 참여관회의 및 전국 부윤, 군수회의를 개최하고 각급 행정기관의 각급 관공리에게는 강습회, 순회연설회, 시국광구강습회 등을 개최하여 이 운동의 이념과 정신 및 취지를 선전하고 이 운동의 행정지원을 제도화하였다. 이로써 전국 농촌의 말단행정관리까지 동원해서 이들이 각급 관공리 및 경찰, 학교, 금융조합 등과 혼연 일체가 되어 이 운동을 제일선에서 지도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3년 5개월간에 실시된 농촌진흥운동은 총독부 관료기구를 전체주의적 전시동원체제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후의 전시동원체제형성에 기초가 되고 애국반조직의 보급과 황민화 정책에 큰 여향을 주었다.
뒤이어 南次郞總督의 취임(1936년 8월)과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은 총독부의 전시동원체제를 총력전체제로 변혁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한국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전면적으로 침략전쟁에 강제동원 할 수 있는 전시동원체제를 확립하였다. 이를 위해서 한국인에게 신사참배,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교육령 개정 등 정책을 통하여 한국인의 모양이나 마음과 피, 그리고 육체까지도 모두 일본인화시키려는 철저한 동화정책을 강행하였다. 아울러 한국인의 사상을 통제하고 대중통신, 정보매체를 장악하여 전시협력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1937년 7월에 정무총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선중앙정보위원회와 각도 정보위원회를 총독부관제로 설치 운영하였으며 1년 후에는 그 사업을 그대로 계승하여 1938년 7월 7일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결성하여 식민지 한국에서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내선일체‘를 기조로 한국인의 ’황국신민화‘를 기본 목표로하는 제21항목의 실천요목을 강행하였다. 그 조직은 중앙에 조선총독부 주도하에 ’국민정신총동원위원회‘와 동 ’간사회‘가 있고 총독부 지방행정의 각 단계별로 지방연맹이 결성되었으며, 아울러 각종 연맹이 관공서, 학교, 은행, 회사 기타 단체별로 결성되고 또 이 운동의 말단기저조직으로 애국반조직이 있고 연맹추진대가 도연맹에 부설조직으로써 결성되었다. 애국반은 동리부락연맹과 각종연맹 아래 10호(戶)를 하나의 애국반으로 결성하여 한국주민의 거의 전부를 포함하였다. 이렇듯 애국반 조직은 조선인 전체를 황국신민화하여 침략전쟁에 동원하려는 계획하에 추진된 것으로 각 戶의 사생활까지 서로 감시하게 한 것이다.
한편 \'연맹추진대\'는 청년훈련소나 육군특별지원자 훈련소 등에서 훈련받은 황민화된 가장 모범적인 중견정예분자들로 구성하여 이 운동을 추진하고 실천하는 중추적 기관으로 삼은 것이다.
참고문헌
김인덕 - 식민지시대 재일조선인 청년운동에 대한 연구, 한국사학회, 1997
이덕재 - 일제하의 노동운동, 전남대학교, 1985
이영호 - 일본제국의 식민지 토지조사사업에 대한 비교사적 검토, 한국역사연구회, 2003
정혜경 - 식민지 시대 노동운동사연구의 현황과 과제, 한국근현대사학회, 1996
정혜경 - 식민지시대 재대판 한인노동자의 생활상, 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함인선 - 일본 식민지시대의 행정법제, 전남대학교 법학연구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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