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아시아국가 한국의 문화
Ⅱ. 아시아국가 중국의 문화
Ⅲ. 아시아국가 일본의 문화
Ⅳ. 아시아국가 인도네시아의 문화
Ⅴ. 아시아국가 몽골(몽고)의 문화
1. 위치
2. 면적
3. 인구
4. 인구밀도
5. 수도
6. 정체
7. 공용어
8. 통화
9. 환율
10. 인당 국민총생산
11. 역사
12. 의
13. 식
Ⅵ. 아시아국가 베트남의 문화
Ⅶ. 아시아국가 우즈베키스탄의 문화
1. 위치
2. 면적
3. 인구
4. 인구밀도
5. 수도
6. 정체
7. 공용어
8. 통화
9. 환율
10. 1인당 국민총생산
11. 역사
참고문헌
Ⅱ. 아시아국가 중국의 문화
Ⅲ. 아시아국가 일본의 문화
Ⅳ. 아시아국가 인도네시아의 문화
Ⅴ. 아시아국가 몽골(몽고)의 문화
1. 위치
2. 면적
3. 인구
4. 인구밀도
5. 수도
6. 정체
7. 공용어
8. 통화
9. 환율
10. 인당 국민총생산
11. 역사
12. 의
13. 식
Ⅵ. 아시아국가 베트남의 문화
Ⅶ. 아시아국가 우즈베키스탄의 문화
1. 위치
2. 면적
3. 인구
4. 인구밀도
5. 수도
6. 정체
7. 공용어
8. 통화
9. 환율
10. 1인당 국민총생산
11. 역사
참고문헌
본문내용
는 형세가 전개되었다. 이로써 남북이 정치적으로 분열되었던 월남의 오랜 전례를 고착화시켰다. 한편 완씨 정권은 계속 남쪽을 압박하여 1700년에 이르러 사이공을 점령하였고 1750년에는 반도의 남쪽 끝 코친차이나 전역을 확보하게 되어 마침내 메콩강 델타 전지역을 개척하게 되었다.
-西山 반란
1771년에 광범위한 농민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 반란은 완씨 성을 가진 삼형제에 의해 영도되었는데, 보통 위에의 남쪽 고원의 한 지명에 연유한 서산(西山 Tayson)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들은 1778년에 사이공을 취하고 1786년에 하노이를 장악하여, 완씨와 정씨의 지방 통치를 종식시켰다. 서산 형제 중 光中이 황제를 자칭하면서 사태에 개입한 淸軍을 격퇴한 뒤, 월남을 혁신적으로 통치하였다. 농민 반란의 농민 지도자로서 권력을 획득한 최초의 월남 군주였던 광중은 중국적 모형을 단순히 모방하기보다는 그것을 혁신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예컨대 그는 중국식의 문관제도를 희생시켜서, 월남 정치에서의 지배적 역할을 자신의 혁명군에게 맡기려 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자신의 조정에서 고전적 한자를 사용하는 관행을 철폐하려 하였고, 심지어는 중국의 경전을 字으로 번역하는 정부의 특별 기관을 창설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북경으로 조공을 보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남부 중국에 대한 해적 행위를 조장하였다. 서산 반란과 그 결과로 출현한 정권은 새로운 민족 정신, 즉 반전통적이며 반외세적(특히 반중국적)인 정신의 전개를 미리 암시하였다. 서산 운동을 어떤 점에서는 1850년에 중국에서 일어난 태평천국운동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었다. 권력을 오래 장악하지 못하였다거나 서양의 지원을 확보한 전통적 세력에 의해 무너졌다는 점에서 양자는 비슷하였다.
서산당에 멸망당한 완씨 일족 가운데서 살아남은 阮福映은 타이와 라오스인, 그리고 프랑스인들의 도움으로 서산당의 난을 평정하고 베트남 전토를 통일하였다. 그는 1802년에 통일 월남의 嘉隆 황제(1802~20)임을 자칭하면서, 1945년까지 지속된 완 왕조를 창건하고 국호를 안남에서 월남(베트남)으로 고쳤다. 이것은 남부의 메콩강 델타 지역이 중부와 북부까지 함께 지배하는 정권의 치하로 들어가게 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완조는 가륭제와 그의 아들인 明命帝(1820~40) 시기에 청의 문물을 도입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문화의 발전을 꾀하는 한편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을 속국화하여 베트남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과시했다. 그러나 완조는 중국 문화에 경도되어 유교를 존중하여 명명제 이후가 되면 여러 차례 기독교 박해 사건을 일으켰으므로, 프랑스는 1858년부터 기독교 옹호를 구실로 베트남을 침략했다. 그리고 완조는 1883년 프랑스에 굴복하여 보호국화되고 청불전쟁을 통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됨으로써 괴뢰 왕조로 존속되었다. 최초 프랑스에 대한 독립 운동은 완조의 관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나, 점차 베트남 국민당, 이어서는 공산당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1945년 8월혁명에 의해 保大帝(바오다이)가 퇴위함으로써 완조는 완전히 멸망하여, 10세기 이래 계속된 베트남 왕조들의 역사도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Ⅶ. 아시아국가 우즈베키스탄의 문화
중앙 아시아 중부에 있는 나라.
1. 위치
: 중앙 아시아 중부
2. 면적
: 44만 7400㎢
3. 인구
: 2444만 9000명(1999)
4. 인구밀도
: 54.6명/㎢(1999)
5. 수도
: 타슈켄트
6. 정체
: 공화제
7. 공용어
: 우즈베크어
8. 통화
: 솜(Som)
9. 환율
: 625Som = 1달러(1999.10)
10. 1인당 국민총생산
: 1,020달러(1997)
11. 역사
우즈베키스탄은 4,000년 전에 청동기 문화가 출현하였으며, 이때 인공 관개에 의한 농경이 보급되었다. 3,000년 전에 박트리아, 소그디아나의 일부였고, BC 6세기에는 고대 페르시아의 영토였다. BC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 정복되고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8세기에 아랍의 침공을 받은 이후 이슬람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사마르칸트, 타슈켄트, 코칸트, 부하라 등지가 종교의 중심지나 동서무역의 중계지로 번성하였다. 8세기 중엽 고구려 출신의 고선지(高仙芝)장군이 이끄는 당 위구르연합군과 아랍 투르크동맹군간에 무력충돌이 있었다. 11세기에는 셀주크투르크제국의 일부였고, 13세기에 몽골의 침략을 받아 차카타이한국(汗國)에 이어 16세기 초까지 티무르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4세기 이후 우즈베칸과 같은 강력한 통치자에 의해 부족들이 통합되면서 민족집단으로 등장하였다. 16세기 이후 부하라, 히바 및 코칸트한국이 건국되고 여러 부족의 정착화가 진행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제정러시아가 영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막고, 시장확보를 위해 진출하였다. 러시아는 1868년에 부하라 한국, 1873년에 히바 한국, 1876년에 코칸트 한국을 병합하였다. 1917년 12월 공산화되고 1918년 4월 투르크스탄자치공화국이 되었다. 1920년 부하라와 히바지역이 독립인민공화국이 되었으나, 1924년 투르크멘공화국에 병합되었다. 1924년 10월 우즈베크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되고, 1925년 5월 소련의 일원이 되었다. 1929년 타지키스탄이 분리되었으며, 1936년 러시아로부터 카라칼팍자치공화국이 편입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소련의 개방과 개혁정책으로 경제난관과 환경문제가 노출되고, 민족주의운동과 이슬람부흥운동이 전개되었다. 1990년 주권을 선포하고, 1991년 9월 완전한 자주독립국이 되었으며 독립국가연합의 일원이 되었다.
참고문헌
김평수, 문화와 예술의 해석 : 한국의 문화코드와 문화콘텐츠, 한국해석학회, 2011
김상욱, 중국의 문화산업의 부문별 생산성 비교, 한중경상학회, 2011
먀그마르 아마르타이방, 한국과 몽골의 문화상징 비교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2011
양승윤, 인도네시아의 인도문화 영향에 대한 역사적 고찰 , 한국인도학회, 2008
최호림, 베트남의 문화정책 담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2007
최철호, 일본의 문화입법과 문화정책, 한국입법정책학회, 2008
-西山 반란
1771년에 광범위한 농민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 반란은 완씨 성을 가진 삼형제에 의해 영도되었는데, 보통 위에의 남쪽 고원의 한 지명에 연유한 서산(西山 Tayson)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들은 1778년에 사이공을 취하고 1786년에 하노이를 장악하여, 완씨와 정씨의 지방 통치를 종식시켰다. 서산 형제 중 光中이 황제를 자칭하면서 사태에 개입한 淸軍을 격퇴한 뒤, 월남을 혁신적으로 통치하였다. 농민 반란의 농민 지도자로서 권력을 획득한 최초의 월남 군주였던 광중은 중국적 모형을 단순히 모방하기보다는 그것을 혁신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예컨대 그는 중국식의 문관제도를 희생시켜서, 월남 정치에서의 지배적 역할을 자신의 혁명군에게 맡기려 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자신의 조정에서 고전적 한자를 사용하는 관행을 철폐하려 하였고, 심지어는 중국의 경전을 字으로 번역하는 정부의 특별 기관을 창설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북경으로 조공을 보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남부 중국에 대한 해적 행위를 조장하였다. 서산 반란과 그 결과로 출현한 정권은 새로운 민족 정신, 즉 반전통적이며 반외세적(특히 반중국적)인 정신의 전개를 미리 암시하였다. 서산 운동을 어떤 점에서는 1850년에 중국에서 일어난 태평천국운동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었다. 권력을 오래 장악하지 못하였다거나 서양의 지원을 확보한 전통적 세력에 의해 무너졌다는 점에서 양자는 비슷하였다.
서산당에 멸망당한 완씨 일족 가운데서 살아남은 阮福映은 타이와 라오스인, 그리고 프랑스인들의 도움으로 서산당의 난을 평정하고 베트남 전토를 통일하였다. 그는 1802년에 통일 월남의 嘉隆 황제(1802~20)임을 자칭하면서, 1945년까지 지속된 완 왕조를 창건하고 국호를 안남에서 월남(베트남)으로 고쳤다. 이것은 남부의 메콩강 델타 지역이 중부와 북부까지 함께 지배하는 정권의 치하로 들어가게 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완조는 가륭제와 그의 아들인 明命帝(1820~40) 시기에 청의 문물을 도입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문화의 발전을 꾀하는 한편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을 속국화하여 베트남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과시했다. 그러나 완조는 중국 문화에 경도되어 유교를 존중하여 명명제 이후가 되면 여러 차례 기독교 박해 사건을 일으켰으므로, 프랑스는 1858년부터 기독교 옹호를 구실로 베트남을 침략했다. 그리고 완조는 1883년 프랑스에 굴복하여 보호국화되고 청불전쟁을 통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됨으로써 괴뢰 왕조로 존속되었다. 최초 프랑스에 대한 독립 운동은 완조의 관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나, 점차 베트남 국민당, 이어서는 공산당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1945년 8월혁명에 의해 保大帝(바오다이)가 퇴위함으로써 완조는 완전히 멸망하여, 10세기 이래 계속된 베트남 왕조들의 역사도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Ⅶ. 아시아국가 우즈베키스탄의 문화
중앙 아시아 중부에 있는 나라.
1. 위치
: 중앙 아시아 중부
2. 면적
: 44만 7400㎢
3. 인구
: 2444만 9000명(1999)
4. 인구밀도
: 54.6명/㎢(1999)
5. 수도
: 타슈켄트
6. 정체
: 공화제
7. 공용어
: 우즈베크어
8. 통화
: 솜(Som)
9. 환율
: 625Som = 1달러(1999.10)
10. 1인당 국민총생산
: 1,020달러(1997)
11. 역사
우즈베키스탄은 4,000년 전에 청동기 문화가 출현하였으며, 이때 인공 관개에 의한 농경이 보급되었다. 3,000년 전에 박트리아, 소그디아나의 일부였고, BC 6세기에는 고대 페르시아의 영토였다. BC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 정복되고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8세기에 아랍의 침공을 받은 이후 이슬람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사마르칸트, 타슈켄트, 코칸트, 부하라 등지가 종교의 중심지나 동서무역의 중계지로 번성하였다. 8세기 중엽 고구려 출신의 고선지(高仙芝)장군이 이끄는 당 위구르연합군과 아랍 투르크동맹군간에 무력충돌이 있었다. 11세기에는 셀주크투르크제국의 일부였고, 13세기에 몽골의 침략을 받아 차카타이한국(汗國)에 이어 16세기 초까지 티무르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4세기 이후 우즈베칸과 같은 강력한 통치자에 의해 부족들이 통합되면서 민족집단으로 등장하였다. 16세기 이후 부하라, 히바 및 코칸트한국이 건국되고 여러 부족의 정착화가 진행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제정러시아가 영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막고, 시장확보를 위해 진출하였다. 러시아는 1868년에 부하라 한국, 1873년에 히바 한국, 1876년에 코칸트 한국을 병합하였다. 1917년 12월 공산화되고 1918년 4월 투르크스탄자치공화국이 되었다. 1920년 부하라와 히바지역이 독립인민공화국이 되었으나, 1924년 투르크멘공화국에 병합되었다. 1924년 10월 우즈베크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되고, 1925년 5월 소련의 일원이 되었다. 1929년 타지키스탄이 분리되었으며, 1936년 러시아로부터 카라칼팍자치공화국이 편입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소련의 개방과 개혁정책으로 경제난관과 환경문제가 노출되고, 민족주의운동과 이슬람부흥운동이 전개되었다. 1990년 주권을 선포하고, 1991년 9월 완전한 자주독립국이 되었으며 독립국가연합의 일원이 되었다.
참고문헌
김평수, 문화와 예술의 해석 : 한국의 문화코드와 문화콘텐츠, 한국해석학회, 2011
김상욱, 중국의 문화산업의 부문별 생산성 비교, 한중경상학회, 2011
먀그마르 아마르타이방, 한국과 몽골의 문화상징 비교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2011
양승윤, 인도네시아의 인도문화 영향에 대한 역사적 고찰 , 한국인도학회, 2008
최호림, 베트남의 문화정책 담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2007
최철호, 일본의 문화입법과 문화정책, 한국입법정책학회, 2008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