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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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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요산 김정한 소설가의 연혁

Ⅲ. 요산 김정한 소설가의 수라도
1. 등장인물
1) 가야 부인
2) 오봉 선생
3) 박서방
4) 이와모도 참봉
5) 허 진사(가야부인의 시조부), 명호 양반, 시숙, 옥이, 박 서방, 막내아들
2. 구성
1) 발단
2) 전개
3) 위기
4) 절정
5) 결말

Ⅳ. 요산 김정한 소설가의 삼별초

Ⅴ. 요산 김정한 소설가의 인가지

참고문헌

본문내용

‘국민정신총동원운동’ 과정에서 지역의 하부 실천도구로 만들어졌던 ‘愛國班’은 ‘국민총력운동’에 이르러서 한결 단단하게 조직화되고, 활동이 강화된다.
‘애국반’은 “町洞里部落聯盟과 各種聯盟 아래 10호로서 구성된 조직”이다. ‘常會’는 중요한 일정이었다. ‘大詔奉戴日’ 아침에 여는 ‘早期常會’ 말고도 달마다 10일 밤에 소집하는 ‘애국반상회’와 여러 ‘연맹’에서 여는 ‘상회’가 그것이다. ‘국민총력’을 꾀하기 위한 지침과 활동이 모두 이 조직을 빌어 이루어졌다. 나날살이 구석구석을 억누르고 지키는 기구며, 모든 ‘供出과 配給’의 기본조직이었다. 이를 벗어나서는 나라 안에서 살아남는 일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인가지”는 ‘이웃집’ 또는 ‘이웃집 이야기’ 쯤으로 읽힐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이웃’에 대한 관심은 ‘총후’ ‘決戰生活’을 떠맡았던 ‘애국반’ 조직, 그 강화 획책과 나란히 생각하지 않는다면 예사롭게 보이기 십상이다.
‘勤勞報國隊’ 활동 또한 ‘국민총력운동’의 실천 요목 가운데서 중심 자리를 차지한다. “결전의 현단계에 임하여 조선인이 勤勞總力을 최고도로 發揚하기 위하여 國民動員計劃을 원활하게 수행하고, 결전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國民皆勞運動’이었다. ‘내선일체’를 위한 ‘精神敎化’와 ‘전쟁수행’을 뒷받침하기 위한 ‘戰時協力’이 두 목표였던 셈이다. 만 열두 살부터 마흔 살까지에 걸친 모든 남녀가 참가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왜로는 이러한 ‘노력동원’을 지난날부터 있었던 나라 ‘부역’과 한 가지로 꾸며대면서, 노동력이 필요한 자리에 한국인을 밀어 넣었다. 보수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어질 경우에도, 고스란히 ‘헌금’, ‘출정군인위문’, ‘저금’, ‘지원병 환송비’들에 넣어 번 사람이 쓸 수 없도록 했다. ‘총력’을 다해 인력을 빼앗는 완전한 착취였다. 이러한 ‘노력동원’이 거듭되었던 나날살이는 침략전쟁 막바지에 이르면서 마침내 한국인에 대한 ‘徵用’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던 것이다.
銃後에 잇서서도 만일 皇國臣民으로서 구든 信念을 갓지 아니하고, 國家的인 立場을 생각하지 안코, 혹은 一身의 利害만을 重視하야, 國家에 奉仕하려는 意思가 업슴으로 銃後의 軍律을 깨뜨려서, 自己利益만을 생각하야 闇取引을 한다든지, 쓸데업시 國策을 非難한다든지, 流言을 퍼트린다든지, 또는 機密을 말해서 敵國의 謀略에 빠지는 일이 잇게된다면, 經濟戰, 思想戰, 其他의 謀略戰에서 勝利를 거두기는 到底히 어려울 것입니다.
‘국민총력운동’이 경제적인 쪽에서 ‘저축’과 ‘내핍생활’, ‘준법정신’을 강조할 뿐 아니라 ‘사상’ 쪽, 더 나아가 생존 조건까지 간섭하고 있었음을 잘 드러내는 보기다. ‘징병제’는 그러한 ‘총력동원’의 마지막 책략이었다. 왜냐하면 한국인이 왜로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황민화’ 되었음을 전제로 삼은 일인 까닭이다. ‘내선일체’의 궁극에 이른 단계이자, 그 상징적 표현이 ‘징병제 실시’였다.
그러나 한국인을 바로 병역에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지원 대상에 대해 엄격한 자격 조건을 두었다. 1938년 2월 22일에 떠벌린 이른바 ‘육군특별지원병령’에 바탕을 두어, ‘帝國臣民인 조선인’ 가운데서 ‘보통학교’ 졸업 또는 그와 같은 ‘학력’을 보증 받은 열일곱 살 이상의 젊은이가 기본 자격자였다. 군경과 행정관서가 두루 나서서 그들을 맡았다. 대상자에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뜻이다. 그래도 ‘황민화’ 정도에 믿음을 갖지 못한 까닭에 ‘훈련소’의 ‘국민교육’은 필수 조건이었다.
이러한 ‘지원병제도’로는 태평양침략으로 커진 전쟁 병력과 노동력 문제 해결에 어림없었다. 왜로는 ‘국가총동원’ 단계를 나아가 ‘國民皆兵制度’, 곧 ‘徵兵制’를 꾀한 것이다. 1942년 드디어 식민지 한국에 대한 ‘징병제’ 실시가 발표되었다. 적극적인 ‘國語普及運動’을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국어’ 능력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그 무렵 사정으로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삼은 ‘징병제’ 실시는 무리였다. 다급했던 왜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隣家誌”가 발표될 한 달 앞인, 1943년 팔월에만도 ‘徵兵制實施感謝決意宣揚運動’과 ‘지원병’이나 ‘징병’의 대상이 될 젊은이를 상대로 ‘壯丁皆泳運動’을 벌이고 있다. 발표 다음 달인 시월에는 다시 ‘學徒特別支援兵應募 激勵’ 활동을 온 나라 안에서 저질렀다.
‘국민징용령’에 따른 ‘징용’도 ‘징병제 실시’와 함께 획책되었다. ‘징병’이 “천황폐하의 명령하시는대로 전선에 나가 싸우는 것”이라면, 징용은 “총후에서 국가가 명하는 총동원업무에 종사하는 것”이다. 제일 먼저 그 대상이 된 사람은 만 열여섯 이상부터 마흔 살까지 걸치는 남자로서 현재 ‘총동원’ 업무에 나서지 않고 있는 이였다. ‘징용’에서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 “나라에 중요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 곧 군인, 육해군 군속, 군인이 되는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나 “죄를 짓고 형무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다.
‘관리’나 ‘공무원’은 원칙적으로 징용 대상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식힐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여간한 경우가 아니면 징용하지 않았다.” ‘국가의 중직’을 맡은 까닭이다. 이와 달리 “직업이 없이 빈들빈들 노는 사람 또는 직업이 있더라도 그다지 긴급한 사무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우선 징용 대상”이었다. 이때 “긴급하지 않은 사무라는 것은 전시에는 있어도 그만이오 없어도 그만인 사무”를 일컬었다. 대상자로 뽑힌 예사사람과 그 가족뿐 아니라, 숱한 지식층지도층이 ‘징병’과 ‘징용’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었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시기에 어려웠을 여러 ‘검열’을 거쳐 발표된 김정한의 “인가지”가 놓인다.
참고문헌
김명석, 김정한 소설과 문학교육, 한국문학회, 2008
김택호, 김정한 소설의 저항의식과 유교적 세계관, 한국현대소설학회, 2007
이정옥, 김정한 초기 소설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2011
임지영, 김정한 중기소설의 작품세계와 그 교육적 고찰, 부산외국어대학교, 2004
최미진, 김정한 소설의 연구 현황과 과제, 한국문학회, 2010
최강민, 요산 김정한 소설에 나타난 타자성, 한국문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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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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