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문화적 차이를 경험함
1. 문화의 개념
2. 문화적 차이
Ⅱ. 문화 내에서의 복음 전달
1. 상황화
2. 세계관
3. 문화의 하부 조직
Ⅲ. 타문화 의사 전달
1. 타문화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는 두 가지 기본적 장애물
2. 복음 전달에서의 문화적 민감성
Ⅳ. 구속적 유사 (Redemptive Anology)
V. 상황화와 문화적 변화
1. 선교사들에게 복음과 문화를 분류하라
2. 새로운 교회 지도자들에게 문화적 형식들을 거부하거나 구속하라
3. 선교사들에게 책임과 하나님을 의지함
Ⅵ. 세계관과 문화의 변화
1. 왜곡된 의미
2. 혼합주의
Ⅶ. 하나님께로 돌아섬 : 충성과 능력
1. 철저하게 돌아섬
2. 변혁시키시는 그리스도
3. 해방시키는 능력
Ⅷ. 완전한 대결
Ⅸ. 회심 : 한 종족을 위한 과정
참고문헌
1. 문화의 개념
2. 문화적 차이
Ⅱ. 문화 내에서의 복음 전달
1. 상황화
2. 세계관
3. 문화의 하부 조직
Ⅲ. 타문화 의사 전달
1. 타문화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는 두 가지 기본적 장애물
2. 복음 전달에서의 문화적 민감성
Ⅳ. 구속적 유사 (Redemptive Anology)
V. 상황화와 문화적 변화
1. 선교사들에게 복음과 문화를 분류하라
2. 새로운 교회 지도자들에게 문화적 형식들을 거부하거나 구속하라
3. 선교사들에게 책임과 하나님을 의지함
Ⅵ. 세계관과 문화의 변화
1. 왜곡된 의미
2. 혼합주의
Ⅶ. 하나님께로 돌아섬 : 충성과 능력
1. 철저하게 돌아섬
2. 변혁시키시는 그리스도
3. 해방시키는 능력
Ⅷ. 완전한 대결
Ⅸ. 회심 : 한 종족을 위한 과정
참고문헌
본문내용
의 산물임을 뚜렷이 나타내게 해서는 안 된다. 복음은 씨로 심어서 받는 사람들의 문화적 토양 내에서 싹을 틔우고, 그곳의 비와 영양분에 의해 길러져야 한다. 참된 복음의 씨에서 나오는 싹들은 땅 위쪽을 보면 그것을 전해 준 사회와는 상당히 다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땅 밑 곧 세계관의 차원에서 보면 뿌리는 같으며 생명은 같은 근원에서 나온다. 진정으로 상황화 된 교회에서는 표면적 차원의 ‘나무’는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메시지는 같으며 우리가 믿는 중심 교리들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같은 성경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왜곡된 의미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에 의해 문화들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도록 하신다. 선교사들이 표면적으로 변화를 이루었는데, 깊은 차원에서는 그 변화에 대해 다른 의미가 적용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흔한 실수이다. 복음의 메시지가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다. 복음을 전하는 더 나은 방법은 세계관의 가정이라는 차원에서 복음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교사들은 선교지의 신자들과 함께 하나님이 어떻게 표면적 차원의 행동문화를 바꾸실 수 있는지 찾아낼 수 있다. 복음을 나무처럼 싹이 트고 자라는 것에 비유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그 나무는 표면적으로는 선교사의 본국 문화와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동일한 영적 생명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일 수 있다. “역동적 등가교회 (dynamic equivalent church)"라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특징들을 지니고 있지만 , 성경적 메시지가 의미하는 것을 표현하는 ‘교회운동’을 의미한다.
2. 혼합주의
선교사들이 관습을 변화시키기 위해 의미를 변화시킬 때마다 혼합주의의 위험이 따른다. 혼합주의는 보통 외국의 종교적 관행들은 채택하지만 깊은 차원의 세계관은 변하지 않은 상황을 가리킨다. 즉 기독교적 가정들을 기독교와는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 가정들을 섞어서 그 결과 성경적인 기독교가 아닌 다른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혼합주의에 이르게 되는 두 가지 길 1) 믿음에 대한 외국의 표현들을 수입해서 수용자들이 선교사들의 지도를 혹은 거의 전혀 받지 않고 자신들의 세계관적 가정 속에서 이런 관행들을 시행하는 것 2) 수용자들이 기독교를 실천하는 것을 너무 간섭하는 나머지, 표면적 차원의 관행들과 깊은 차원의 가정들을 모두 수입하는 것. 그 결과 완전히 외국적이면서 선교지 문화에 순응되지 못한 기독교가 생겨난다. 혼합주의는 선교 사역에서 끊임없는 위험 요소이다. 그 위험을 피하려 애쓰는 것보다는 거기 대처해 나가는 것이 더 낫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변화를 일으키실 때, 신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성경을 사용하도록 도움으로써 혼합주의의 위험을 대처해 나갈 수 있다.
Ⅶ. 하나님께로 돌아섬 : 충성과 능력
복음을 전달하는 것은 단지 메시지를 이해시키는 과업 이상이다. 복음은 단지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하는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따르라는 초청이다.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시대에는 회심이라는 개념이 억압적인 종교적 정복의 여파처럼 보이게 되었다. 사실상 하나님은 피상적인 회심을 추진하는 일에는 우리보다도 더 관심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하나님 자신께로 이끌고 계시다. 그것은 실제적인 일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해 새로이 확고하게 충성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 이루어진다.
1. 철저하게 돌아섬
회심의 근본적인 의미는 충성의 대상이 바뀌는 것이다. 회심은 죽음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2. 변혁시키시는 그리스도
회심은 세 가지 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세계관, 행동, 관계(새로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됨->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새로이 헌신하게 됨)들이다. 그러나 회심이 회심자를 ‘탈문화화’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회심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개조하는 것이다.
3. 해방시키는 능력
요술이나 마술, 마술사의 축복이나 저주, 그리고 악령들의 악의보다는 예수님의 능력이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구원이 악한 세력과 죽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충성하게 된다. 능력대결이란 하나님의 능력이 그 지역의 이교신의 능력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이는 대결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그들을 어두움의 영적 권세들의 손아귀에서 자유케 하는 하나님의 극적인 행동들을 말한다.
Ⅷ. 완전한 대결
찰스 크래프트가 말하는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대결 ‘진리 대결’ 이해를 다루며 행동수단은 가르침 (무지 혹은 오류에 대항) ‘충성 대결’ 관계를 다루며 행동수단은 증거 (잘못에서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함.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닮아 감) ‘능력 대결’ 자유를 다루며 행동 수단은 영적 전쟁 (사단의 속박에서 해방) 이 세 가지 대결은 서로 다른 순서로 전개될 수 있다. 보통 세 가지 모두 복음이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이다. 충성과 진리의 대결에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능력 대결만 주창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균형 잡히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동안 능력을 보이는 사건을 보았거나 체험한 사람들 중에도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즉, 능력 대결만으로는 총력적 복음 전도 전략으로 부적합 하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Ⅸ. 회심 : 한 종족을 위한 과정
북미 및 다른 서구 사람들은 자신을 본질적으로 개인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세계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보다 공동적이거나 통합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한 집단의 구성원 개개인이 회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전체 과정의 일부로서 집단적 차원의 회심도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참고문헌
랄프 윈터 저, 정옥배 역, 미션 퍼스펙티브, 예수전도단 2000
1. 왜곡된 의미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에 의해 문화들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도록 하신다. 선교사들이 표면적으로 변화를 이루었는데, 깊은 차원에서는 그 변화에 대해 다른 의미가 적용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흔한 실수이다. 복음의 메시지가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다. 복음을 전하는 더 나은 방법은 세계관의 가정이라는 차원에서 복음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교사들은 선교지의 신자들과 함께 하나님이 어떻게 표면적 차원의 행동문화를 바꾸실 수 있는지 찾아낼 수 있다. 복음을 나무처럼 싹이 트고 자라는 것에 비유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그 나무는 표면적으로는 선교사의 본국 문화와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동일한 영적 생명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일 수 있다. “역동적 등가교회 (dynamic equivalent church)"라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특징들을 지니고 있지만 , 성경적 메시지가 의미하는 것을 표현하는 ‘교회운동’을 의미한다.
2. 혼합주의
선교사들이 관습을 변화시키기 위해 의미를 변화시킬 때마다 혼합주의의 위험이 따른다. 혼합주의는 보통 외국의 종교적 관행들은 채택하지만 깊은 차원의 세계관은 변하지 않은 상황을 가리킨다. 즉 기독교적 가정들을 기독교와는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 가정들을 섞어서 그 결과 성경적인 기독교가 아닌 다른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혼합주의에 이르게 되는 두 가지 길 1) 믿음에 대한 외국의 표현들을 수입해서 수용자들이 선교사들의 지도를 혹은 거의 전혀 받지 않고 자신들의 세계관적 가정 속에서 이런 관행들을 시행하는 것 2) 수용자들이 기독교를 실천하는 것을 너무 간섭하는 나머지, 표면적 차원의 관행들과 깊은 차원의 가정들을 모두 수입하는 것. 그 결과 완전히 외국적이면서 선교지 문화에 순응되지 못한 기독교가 생겨난다. 혼합주의는 선교 사역에서 끊임없는 위험 요소이다. 그 위험을 피하려 애쓰는 것보다는 거기 대처해 나가는 것이 더 낫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변화를 일으키실 때, 신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성경을 사용하도록 도움으로써 혼합주의의 위험을 대처해 나갈 수 있다.
Ⅶ. 하나님께로 돌아섬 : 충성과 능력
복음을 전달하는 것은 단지 메시지를 이해시키는 과업 이상이다. 복음은 단지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하는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따르라는 초청이다.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시대에는 회심이라는 개념이 억압적인 종교적 정복의 여파처럼 보이게 되었다. 사실상 하나님은 피상적인 회심을 추진하는 일에는 우리보다도 더 관심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하나님 자신께로 이끌고 계시다. 그것은 실제적인 일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해 새로이 확고하게 충성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 이루어진다.
1. 철저하게 돌아섬
회심의 근본적인 의미는 충성의 대상이 바뀌는 것이다. 회심은 죽음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2. 변혁시키시는 그리스도
회심은 세 가지 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세계관, 행동, 관계(새로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됨->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새로이 헌신하게 됨)들이다. 그러나 회심이 회심자를 ‘탈문화화’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회심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개조하는 것이다.
3. 해방시키는 능력
요술이나 마술, 마술사의 축복이나 저주, 그리고 악령들의 악의보다는 예수님의 능력이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구원이 악한 세력과 죽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충성하게 된다. 능력대결이란 하나님의 능력이 그 지역의 이교신의 능력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이는 대결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그들을 어두움의 영적 권세들의 손아귀에서 자유케 하는 하나님의 극적인 행동들을 말한다.
Ⅷ. 완전한 대결
찰스 크래프트가 말하는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대결 ‘진리 대결’ 이해를 다루며 행동수단은 가르침 (무지 혹은 오류에 대항) ‘충성 대결’ 관계를 다루며 행동수단은 증거 (잘못에서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함.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닮아 감) ‘능력 대결’ 자유를 다루며 행동 수단은 영적 전쟁 (사단의 속박에서 해방) 이 세 가지 대결은 서로 다른 순서로 전개될 수 있다. 보통 세 가지 모두 복음이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이다. 충성과 진리의 대결에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능력 대결만 주창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균형 잡히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동안 능력을 보이는 사건을 보았거나 체험한 사람들 중에도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즉, 능력 대결만으로는 총력적 복음 전도 전략으로 부적합 하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Ⅸ. 회심 : 한 종족을 위한 과정
북미 및 다른 서구 사람들은 자신을 본질적으로 개인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세계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보다 공동적이거나 통합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한 집단의 구성원 개개인이 회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전체 과정의 일부로서 집단적 차원의 회심도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참고문헌
랄프 윈터 저, 정옥배 역, 미션 퍼스펙티브, 예수전도단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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