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대공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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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 경제 대공황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세계 경제 대공황의 경과
2. 세계 경제 대공황의 발생
2. 세계 경제 대공황의 원인
 (1)󰡐캐인지언들󰡑의 해석
 (2)󰡐통화론자들󰡑의 주장
 (3) 인플레이션보다 더 무서운 디플레이션(테민논쟁 종합)
4. 세계 경제 대공황의 영향과 결과

참고문헌 및 참고 사이트

본문내용

효과인 부정적 효과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물가가 하락하여 돈의 가치가 높아지면 실질소득이 증가할 뿐 아니라 실질부채도 증가한다. 컴퓨터 한 대의 가격에 맞먹는 1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컴퓨터 가격이 50만원으로 떨어지게 되면 이제 컴퓨터 두 대 가격에 상당하는 정도로 빚이 늘어나는 것이다.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나는 데도 소비를 늘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따라서 실질부채의 증가는 소비감소를 통해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특히 케인스는 이 같은 투자의 감소가 대공황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그렇게 보면 물가하락의 투자감소 효과가 상당히 컸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대공황기 미국의 민간투자는 1929년 162억달러 수준에서 1932년 10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
대공황 당시 물가하락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는 어느 것이 더 컸을까. 미국은 1920년대 전후 복구의 붐을 타고, 주택건설과 내구소비재의 판매가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의 경우가 모기지론(주택금융)이나 할부금융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당시 가계부채의 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 상당한 수준에 있었으며, 투자감소라는 부정적 효과와 더불어 물가하락의 부정적 효과가 매우 컸을 것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이러한 물가하락은 왜 발생했던 것일까. 이 부분에서 통화론자들의 설명을 들을 필요가 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년대 말 증시의 활황이 거품의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는 통화증발을 억제하는 긴축정책을 시행했고 이것이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일단 물가하락이 발생하자 위에서 설명한 부정적 효과의 누적으로 공황이 심화되었고 여기에 정부가 공황을 되돌릴 만한 강력한 통화정책, 재정정책을 시행하지 못함으로써 대공황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4. 세계 경제 대공황의 영향과 결과
1933년 3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에 취임한 루스벨트는 곧바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했다. 뉴딜정책의 기본정신은 이른바 3R라고 불리는 구제, 회복, 개혁으로 우선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을 도와주고, 경제 전체를 공황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린 다음,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뉴딜정책은 금융 농업 공업 정부지출 등 크게 4개 부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 정책의 공통점은 물가 하락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정책은 먼저 달러화를 평가절하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종전에 금 1온스당 20.67달러였던 것을 31.26달러로 달러 가치를 낮추었다. 또한 은화의 무제한 주조, 달러화의 신규 발행 증대 등을 통해 물가 상승을 꾀하고자 했다. 동시에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창설하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만들어 독립적 통화정책을 수립·시행하도록 했다. 농업정책은 농산물 공급을 축소함으로써 가격 상승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정부에서는 곡물과 면화 낙농제품 등 농산물에 대해 전체 생산 규모를 정해두고 이를 농민들에게 할당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제한했고, 그 대신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렇게 되면 농민들의 소득이 증가하고 구매력이 회복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공업정책은 1차대전 이후 복구과정에서 기업들의 지나친 경쟁이 불필요한 위험을 증대시키고 기업의 도산과 실업 증대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 기업 간의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 자율 규제를 도입한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업에서도 생산의 억제를 통해 균형가격을 회복시킴으로써 기업의 적정이윤을 보장해 주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1932년 당시의 세계적 불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영국이 영연방경제회의(오타와 협정)를 개최하여 영국 본국과 자치령 ·속령 국가들을 특혜관세로써 하나의 블록으로 결합시킨 이후 이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 후 아메리카 블록·독일 블록·프랑스 블록 등이 형성되었다. 특징은 선진자본주의국가가 식민지 및 자기 세력권 안의 국가들을 자국 공업품의 판매시장·자본수출시장으로서 또는 원료·식량 공급지로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래 블록경제는 세계 전체를 평등한 시장으로 보는 견해와는 대립되는 것으로서, 앞서 설명한 블록경제도 세계경제와의 연관을 부정하는 폐쇄적인 것이었다. 이에 대비하여 제2차 세계대전 후의 EEC(유럽경제공동체) 결성은 지역적 결합을 토대로 하여 세계적인 다면경제로 진출하려는 개방적 성격의 블록경제라고 할 수 있다.
대공황은 첫째, 세계경제 전체를 휘말리게 한 역사상 가장 격심한 사건이고, 둘째, 케인스 경제학을 생성시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경제정책의 틀을 크게 지배하게 한 사건이며, 셋째, 경제적으로는 블록화(블록경제)를 초래, 자유무역체제를 분단시켰고, 정치적으로는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에 파시즘을 낳게 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케인스 경제학은 전후 1950~1960년대에 선진국에게 비교적 안정된 높은 경제성장률을 지속시켜 거의 완전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하였으나 1970년대에 이르러 인플레이션율이 높아지면서 그의 이론은 비판을 받고 1980년대부터는 많은 나라가 케인스정책 채용을 기피하였다. 그리고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무역을 통한 세계 자원의 분배를 왜곡, 경제효율을 현저히 저하시킴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길을 열어 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참고문헌 및 참고 사이트
양동휴,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양동휴, 『세계대공황의 원인, 경과, 회복과정』, 1992.
권영선, 『대공황의 습격』, 모색, 1998.
찰스 킨들버거, 『대공황의 세계』, 부키, 1998.
디트마르 로터문트 저, 양동휴 외 옮김, 『대공황의 세계적 충격』, 예지, 2003.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푸른나무, 2004.
매일경제신문, http://www.mk.co.kr/
서울경제신문, http://economy.hankooki.com/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section-004000000/home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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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12.29
  • 저작시기2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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