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역사(The History of Sugar) - 설탕이란(설탕의 역사, 설탕의 종류, 설탕의 제조법, 설탕의 용도), 설탕과 제국주의(설탕과 권력), 우리나라의 설탕 이야기(전래과정과 설탕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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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탕의 역사(The History of Sugar) - 설탕이란(설탕의 역사, 설탕의 종류, 설탕의 제조법, 설탕의 용도), 설탕과 제국주의(설탕과 권력), 우리나라의 설탕 이야기(전래과정과 설탕산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
 ⅰ) 설탕의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Ⅱ.본론
 ⅰ) 설탕이란?
   - 설탕의 역사
   - 설탕의 종류
   - 설탕의 제조법
   - 설탕(자당)의 용도(5가지)

 ⅱ) 설탕과 제국주의
   - 전 세계적인 음식이 되기까지 [사치품에서 필수품으로]
   - 설탕과 권력

 ⅲ) 우리나라의 설탕 이야기
   - 우리나라의 전례 과정
   - 삼백산업과 관계
   - 설탕 만드는 회사들

Ⅲ.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 따라서 이득을 얻고, 설탕이 제공하는 국고수입들이 증가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견했던 자들로서 왕과 의회로 하여금 농장주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설탕과 그 부산물(당밀과 럼)을 많이 먹도록 하는 일을 지지하고 도와주도록 이런저런 권력을 행사한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권력과 권력의 행사는 “외적인 의미”, 즉 여러 가지 형태의 자당들을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그러한 권력은 식사패턴을 바꾸고(설탕으로 감미한 차를 마시고 잼을 바르고 등), 식사에 대한 정의를 바꾸고, 식사시간까지 바꾸었다.
설탕과 다른 자극제 식품들은 농장 노동자들과 공장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고 충족시킴으로써 본토의 프롤레타리아들을 창출해내고 재생산해 내는 전체적인 비용을 급격하게 감소시켰다. 제국의 지휘 아래에서 그 두 집단들이 서로에게 생산품들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부터 엄청난 이익을 얻게 만들었던 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 설탕을 영국인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단순히 상징 만들기와 의미부여의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조직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작업들의 과정에 의한 것이었음을 민츠는 보여주고 있다. 노예와 프롤레타리아는 함께 대영제국의 경제체제에 힘을 주었다. 그 경제체제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수갑을 공급하고, 노예들은 설탕을 공급하였지만, 그들 둘은 경제체제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선택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선택이 이루어질 때 선택을 제한하는 한정적인 요건이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어떤 세력들이 제시해놓은 가능성의 영역 안에서의 자유를 의미한다. 점점 신장되는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는 단편적인 자유였지 전적인 자유는 아니었던 것이다. 시드니 민츠, 《설탕과 권력》, 자호출판사, 1998년, p.314~322
ⅲ) 우리나라의 설탕 이야기
- 우리나라의 전례 과정 :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에 설탕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나, 설탕에 관한 문헌상의 최초 기록은 고려 명종 때 이인로의 <파한집>에서 비로소 찾아볼 수 있다. 설탕은 중국 송나라부터 후추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학자들은 집작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약재로만 쓰였던 것이 차츰 일부 상류층의 기호품으로 바뀌어갔다. 한국에서 사탕무가 제당원료로 사용된 것은 10세기 초로, 당시 제당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본격화 되었으나 그 뒤 경제성의 결핍으로 생산은 거의 중단 되었다. 설탕이 대중으로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50년대 중반 제당공장 설립 이후이며, 그 뒤 식품산업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것이 삼백산업을 시작한 이후부터다.
- 삼백산업과 관계
삼백산업이란『195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는 원조경제시대라 불릴 만큼 미국의 원조와 매우 긴밀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6 25전쟁으로 우리나라의 산업시설은 커다란 타격을 받았고, 이와 더불어 전후(戰後) 악성인플레이션, 생활필수품의 기근(饑饉), 실업대중(失業大衆)의 속출은 우리나라 사회에 전반적인 불안요인으로 되었으며 이에 사회적 안정과 경제재건을 위해서는 원조물자의 대량유입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되었다. 원조는 1948년부터 1962년까지 약 30억불에 달하고 있었던 바, 이는 국민총생산의 12%에 해당하며, 특히 1956년과 1957년의 원조는 국민총생산의 17%를 상회하는 것으로서 대외적으로는 무역수지(貿易收支)의 적자(赤字)를 보충하기 위하여, 대내적으로는 재정적자를 메우는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원조의 대량유입과 함께 이를 배경으로 정치권력과 밀착한 독점자본으로서 재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니 이 무렵 대표적인 재벌(財閥)로서 삼성(이병철) 삼호(정재호) 락희(구인회) 대한(설경동) 개풍(이정림 이회림) 동양(이상구) 금성(현 쌍용:김성곤) 등은 이른바「삼백산업(三白産業)」이라고 하는 면공업(綿工業) 제분업(製粉業) 제당업(製糖業) 등의 소비재산업을 기반으로 급성장하였다. 』 이며 이후로 제당기업들이 생겨나며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설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 설탕 만드는 회사들
삼백산업을 시작한 후 1950년대에 설립된 설탕(제당)회사인 3사가 있는데, 우선 삼양사, 제일제당(현 CJ), 대한제당이 있다. 이 기업들은 모두 삼백산업을 시작 할 때 설립이 되었으며 현재는 약간의 설탕에 대한 브랜드 이름을 바꿔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여기서 설탕에 역사가 깊은 삼양사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면, 삼양사의 설탕의 브랜드은 ‘큐원(Q1)’입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어 더욱 친숙하게 제품을 전달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품종과 규격으로 가정은 물론 제과, 제빵, 음료, 제약업계 등에 실수요처에 공급되어 호평을 받고 있으며, 홍콩중국 등 해외에 많은 수출을 하면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또한 삼양사에서 말하는 설탕의 장점은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된 천연탄수화물로서 인체의 에너지원이 되며, 용해성이 우수하며, 이스트의 먹이로 빵을 부풀게 하며, 냄새를 없애며 쓴맛과 신맛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삼양사의 역사관TOUR를 하시면 삼양사의 설립부터 지금까지의 설탕의 변천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자세한 것은 삼양사 홈피를 참조하기바랍니다.
Ⅲ.결론
설탕의 필수품화와 연동해서 이후에 나타난 생활양식들의 변화를 보았는데, 이 자그만 식품하나의 변화가 여러 국가의 생활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식풍이란 것이 소비되는 상왕을 기호화하는 기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대에 들어선 설탕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데, 그 이유는 설탕의 섭취에 따른 질병으로 당뇨병, 비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 인해 설탕이 들어간 제품들을 많이 기피하는 성향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생활이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 버린 식품이 되었기에 한 번쯤 진지하게 설탕의 유해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설탕의 섭취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기시 바랍니다.
※ 참고문헌
시드니 민츠, 《설탕과 권력》, 자호출판사,
소피D.코 외, 《초콜릿(신들의 산책)》, 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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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5.26
  • 저작시기2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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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1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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