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化粧/Make Up)의 기원, 서양 화장, 한국 화장(상고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개화기, 현대화장), 광고로 보는 한국화장(1960년대 이전-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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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화장(化粧/Make Up)의 기원, 서양 화장, 한국 화장(상고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개화기, 현대화장), 광고로 보는 한국화장(1960년대 이전-1990년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화장의 기원

2. 서양 화장

3. 한국 화장
 1) 상고시대
 2) 삼국시대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
  (4) 통일신라
 3) 고려시대
 4) 조선시대
 5) 개화기
 6) 현대화장(現代化粧)

4. 광고로 보는 한국화장
 1) 1960년대 이전
 2) 1970년대
 3) 1980년대
 4) 1990년대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 재래 화장품 혹은 화장법과 대치되거나 교체되는 국면을 맞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궁중에서는 재래식 화장품에 의한 화장법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궁궐 밖에서는 화장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활필수품이 상품화되지 못한 터에 외국의 갖가지 신상품이 유입되자 재래 상품들은 시장에서 밀리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외국에서 수입 혹은 밀수입된 화장품들이 재래 상품에 비하여 비교가 안될 만큼 포장이 화려하고 사용법 또한 간편하여 수입되자마자 대환영을 받았다. 개항 이후에, 개화 초기에는 주로 일본과 중국의 청나라로부터 화장품이 유입되었으나, 1920년대에는 수입선이 유럽(주로 프랑스)방면으로도 확대되었다. 외국에서 수입된 화장품들은 일상 화장에 사용되는 동시에 재래 화장품에 비하여 포장과 품질이 우수하고 사용법에 훨씬 간편하였기 때문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와 같은 수입화장품의 인기는 우리나라 화장품의 산업화를 촉진시키는 자극제 구실을하였다.
예를 들면 1916년에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서 가내수공업 규모로 제조되기 시작한 박가분은 원래 포목전문인 박승직 상점에서 덤으로 주던 것인데, 품질개량과 포장개선을 꾀하여 1922년에 정식으로 제조허가를 받았다. 이 박가분은 외제 백분에 비하여 품질이 다소 뒤졌지만, 재래 백분보다는 혁신적인 상품이어서 전국에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박가분이 성공하자 서가분, 장가분 등 유사상품 외에 미용 백분과 서울분, 설화분등이 제조 발매되고, 배달기름(머릿기름), 연부액(미백로션), 유액(밀크로션), 연향유, 밀기름 등도 잇따라 시판되었다. 이 화장품들은 제조 기술과 포장이 소위 신식 화장품을 모방한 것이어서 호평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 무렵의 화장품은 요즘처럼 화장품의 기능이 세분화되지 않았다.
6) 현대화장(現代化粧)
1945년의 815광목을 계기로 한국의 화장품산업은 전환기를 맞이한다. 화장품의 생산과 판매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했던 일본인들이 철수하게 됨으로써 화장품의 생산활동이 일시적이나마 위축된다.
더욱이 종전(終戰) 몇 년 전부터 물자의 부족을 겪은터라 타격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광복 이후 화장품 원료의 생산이 행해지지 않고, 수입도 용이하지 않아 일시적으로는 퇴보현상을 보였다.
1950년 625동란으로 또 다시 화장품 산업이 위축되었다. 반면에 수입화장품, 밀수화장품, PX유출품의 범람이 가속되었다. 우리나라의 화장품 생산활동은 이 때문에 1960년에 이르러서야 본격화되었다.
화장법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화장법의 변화보다는 옷, 장신구, 두발형, 신발 등 차례의 변화가 더 많았다. 왜냐하면, 일제 치하에서 창간된 신문, 잡지 들이 근대화 제창이 일환으로 이미 1920-30년대부터 서구식 화장법 소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화장품의 변화는, 화장품이 기능이 세분화되고, 1960년 이후에는 바니싱 타입이 크림과 백분의 소비량이 격감한 반면에, 액상 색분(液狀色粉, 파운데이션)의 수요가 급증하였다. 아울러, 연지도 고형(스틱)으로 변모하였으며 소비량이 증가하였다.
4. 광고로 보는 한국화장 광고로 보는 한국 화장의 문화사 (신인섭 교수)
한국일보, 매일신보 기사에서 발췌
한국화장품 광고의 발전사를 보면 한국의 문화변천사가 보인다. 화장문화는 크게 1960년대 이전 / 1970년대의 MAKE UP 개시 시대 / 1980년대의 건강에 대한 관심 대두 / 1990년대의 개성미 추구의 시대로 나누어 질 듯 싶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1) 1960년대 이전
1920년대 선보인 박가분은 일제 화장품이 판치던 시절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국산화장품, “살빛이 고와지고 주근깨 없어지는 박가분을 화장할 때 있지 마시옵”이라는 카피가 돋보였는데 피부에 대한 당시 여성들의 고민을 알 수 있다. 1940년대 전쟁이 본격화 되면서 물자부족으로 화장품 광고도 당연히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광고 카피도 전쟁과 관련한 문구들로 채워졌다. "언제나 명랑하고 씩씩하게 일합시다. 결전 하 근로 여성의 건강미에는 반드시 영양 크림으로. 멸사봉공 승리할 때까지는 각 직장에서 일체 멸사봉공하여 복구(원수를 갚음)증산에 힘씁시다. 정신감투(挺身敢鬪) 담당한 직장을 끝까지 생산사명을 완수!"
2) 1970년대
처음으로 KBS 탤런트로 뽑힌 한혜숙이 나오는 1971년 봄의 ‘Oh My Love' 캠페인과 그 해 당시 한국 최고이던 조선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개최된 이른바 MAKE UP 행사를 계기로 화장의 영역이 넓어진다. 이 캠페인으로 눈과 입술이 여성미의 대상으로 부상하게 되었는데 화장업계에서 말하는 T―ZONE이 추가된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안보의식 강화를 위해 신문광고에 "아빠는 안보역군 엄마는 방첩주부" "부정 외래품 몰아내어 명랑사회 이룩하자" 따위의 슬로건이 삽입됐다.
3) 1980년대
컬러 티브이가 보급되면서 “봄꽃의 화사함, 그대 입술에! 꽃잎의 싱그러움 그대 눈위에!” 등의 카피가 등장했고, 광고의 색상도 화려해졌다. 1983년을 기점으로 화장품에서도 건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여 광고표현에 자연, EVERGREEN, BIO, 생명공학, 무색, 무향, 무알콜이라는 말들이 나타난다. 이제는 결코 화장은 사치가 아니라 상식이 된다. 가장 아름다운 모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거의 철칙처럼 되어있던 시절이라 할 수 있다.
4) 1990년대
화장품의 기능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나만의 화장품을 찾게 되는데 이러한 추세는 태평양의 아이오페 이니스프리로 나타난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남과 다른 자기를 가장 적절히 표현할 수 있으며 된다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성들이 능동적 외향적으로 변해 화장품도 나의 세계를 뜻하는 마몽드가 큰 인기를 모았으며, 중반 이후에는 X세대의 등장이 핵심 개인주의, 다원주의적 사고 방식을 가졌으며 이기적이면서도 남의 아픔에 눈물 흘릴 줄 아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그들을 타깃으로 한 제품과 광고가 쏟아졌다.
참고문헌
한국화장문화사 (전완길)
광고로 보는 한국 화장의 문화사 (신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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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4.06.02
  • 저작시기2014.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2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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