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의 성찬 축소에 대한 역사적고찰과 한국교회의 성찬에 대한 새로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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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교도의 성찬 축소에 대한 역사적고찰과 한국교회의 성찬에 대한 새로운 의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Ⅰ.성찬의 의미
Ⅱ. 성찬논쟁에 대한 역사적 고찰
Ⅲ. 성찬 축소에 대한 청교도 입장
Ⅵ. 성찬에 대한 청교도의 자세
결론

본문내용

직인다든지, 무릎을 꿇는다든지 하는 몸짓의 움직임뿐이라면, 세상에 예배만큼 쉬운 일이 있겠는가! 하루 종일 묵주알이나 헤아리고 어떤 문구, 기도문이나 암송하는 것이 예배라면, 참으로 쉬운 일이 예배 아니겠는가! 그러나 예배는 이런 일과는 원천적으로 다른 힘든 절차인 것이다.”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찬을 받을 때 무릎을 꿇는 행위를 거부한 것이다.
5. 성경의 귄위를 우위에 두는 입장
카트라이트는 카톨릭교회와 영국 교회의 복식 제도와 외식에 가까운 의식을 전면 거부하였는데 이는 교회의 성경적 권위를 최우선에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성경 외적인 전통을 교회의 관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카톨릭교회와 영국교회의 제의적인 성찬 또한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6. 거룩한 안식일 준수를 위한 입장
윌리엄 구지는 토요일 저녁에는 성찬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는 집안의 하인들이 준비를 하느라 늦게까지 집에 남아 있는 일을 막으려는 생각에서였다고 말한다. 청교도-이세상의 성자들. 리랜드 라이큰 / 생명의 말씀사. 2000 p265
당시 중상위층에 속했던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고용인들과 집안의 하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위한 주일에 구별된 삶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성찬의 준비가 그들에게는 어쩌면 주일의 안식을 막는 도구로 보였을 수 도 있다.
Ⅵ 성찬에 대한 청교도의 자세
1. 의식이 아닌 삶의 실천적 기쁨
청교도들에게 성찬은 제의적인 요소를 제거한 단순명확한 하나님의 축제였다. 한 청교도 귀족의 결혼식에서 러셀 부인이라는 여성은 으레 갖는 무도회를 열지 않고 손님들의 기쁨을 위해 ‘설교와 만찬’으로 대체했다. 이처럼 청교도들에게 성찬은 제의적이고 형식적인 예배의 한 요소가 아니라 그들 삶 속에 전체로 퍼져있는 생활의 모습이었다. 청교도-이세상의 성자들. 리랜드 라이큰 / 생명의 말씀사. 2000 p266
2. 성찬대의 위치 변경
청교도들은 성찬에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부속실, 곧 카톨릭교회의 감실이라고 불리던 곳에 들어가 있던 성찬상을 꺼내서 회중 가까이에 놓았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예배 전과정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회중 전체가 예배에 참석하게 만들어 놓았다. 사제의 전유물이었던 성찬의 전 과정에 회중이 동참하여 의식적인 행동으로 죄를 사함받는 성찬의 모습을 바꾸게 된 것이다. 청교도-이세상의 성자들. 리랜드 라이큰 / 생명의 말씀사. 2000 p253
3. 말씀의 성례 우위
그들은 말씀이 육신이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눈이 아닌 마음 가운데서 육신이 된다는 것이다. 떡이나 포도주처럼 맛을 볼 수 없고 향기처럼 냄새를 맡을 수는 없지만, 들음으로써 인간 안에 거하는 육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말씀은 진정한 성찬이었던 것이다. 청교도-이세상의 성자들. 리랜드 라이큰 / 생명의 말씀사. 2000 p255
윌리암 카트라이트는 성찬의 생명은 말씀 선포에 달려 있기 때문에 단순 낭독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해 선포되는 말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두둘리 페너는 성찬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설교가 반드시 필요하고 설교가 생략된다면 성찬의 의미가 반감된다고 했다 청교도-이세상의 성자들. 리랜드 라이큰 / 생명의 말씀사. 2000 p258
. 이처럼 청교도들에게는 말씀의 위치가 격상되어 성찬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또한 실천했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권세있는 말씀으로 지극히 존중하였고, 그 말씀을 언어로 매개되는 성찬으로 경험하였으며, 그 성찬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갔다.
4. 참다운 주일 의무 중의 하나
존 필드는 주일 의무에 대해 밝히기를 말씀청종, 기도, 성례 참여, 그분이 행하신 놀라운 역사를 묵상함, 그리고 거룩한 의무실천에 전심전력 하는 것이라고 했다. 청교도에게 있어 성찬은 무겁고 번거로운 예배의식이 아닌 그들이 참다운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의무였던 것이다.
5. 성령의 강력한 역사
무명의 청교도가 쓴 성만찬 기도를 보면 ‘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나의 몸에 양분을 공급하는 것과 같이 내가 더 이상 굶주리며 목마르지 아니하고 예수님과 함께 그의 천국 만찬에 참여하는 그 날까지 당신의 내주하는 성령으로 나의 영혼에 활기를 부어주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리며 주의 성령에 충만한 삶을 간구하는 것이다. 또한 성례 전의 목회자의 기도라는 기도를 보면, ‘내가 성찬에 임할 때에 나 자신, 나의 가족, 교회, 친구들을 향하여 가르치지 못하고, 권면하지 못하고, 본이 되지 못함으로 내가 의무를 태만히 한 사실을 상기하도록 나를 도우소서’라고 간구함으로써 성찬을 통해 성령의 조명을 받아 자신의 죄과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다시 나아가는 담대함을 얻게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그동안 오해해온 것처럼 청교도들이 현대 교회의 성찬 축소의 모든 원인을 제공한 것과는 달리 그들은 삶의 진정성을 통해 바른 성찬을 주께 드리고자 했던 것이다. 청교도들이 생각한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셔서 교회에 주신 은혜의 방편이었다. 성찬이 표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하려 했으며, 성찬을 통해 그들은 실제적인 유익을 누렸던 것이다. 그들은 성찬이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고백의 표지였으며 설교와 성례를 분리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성찬은 성찬일 뿐이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사모했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성찬에서 은혜를 기대하며 누렸던 것이다. 그들은 성찬을 통해 십자가 사건을 경험하였고, 성찬을 통해 주의 고난을 기리고 기념했던 것이다. 그들이 성찬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살기로 서약하는 것과 같았다. 이러한 성찬을 통해 그들은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었음을 알게되었다.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회개하였으며, 또한 용서하였다. 곧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성찬에 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성찬 예식의 거룩한 감회가 그들의 삶에 그대로 투영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성찬 축소에 대한 오명을 벗기고 바른 성찬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한국교회에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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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9.03
  • 저작시기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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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36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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