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역사 (개항이후, 일제, 해방후, 한국전쟁, 박정희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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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집의 역사 (개항이후, 일제, 해방후, 한국전쟁, 박정희 정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항이후

2. 일제시대
-문화주택
-도시형 한옥
-영단 주택
-토막

3. 해방후
-해방촌

4. 한국전쟁
-한국전쟁 이후

5. 박정희 정권
-새마을 운동
-아파트
-달동네
-광주 대단지 사건

본문내용

서 주도하는 여러 가지 사업으로 시행되었고, 이에 따라 농촌사회에 급속한 변화를 만들어 갔다. 이중에서도 마을 환경 개선사업이나 농촌주택 개량 사업은 마을과 주택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농촌생활을 근본적으로 바뀌게 하였다.
마을환경 개선사업은 마을로 들어오는 길을 확장하는 것으로부터 마을 하천의 보수, 상하 수도의 건설, 마을회관, 창고, 공동 세탁장 등 마을 공동시설의 건설, 그리고 전기 설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활동으로 나타났다. 도로의 확장이나 정비는 교통기관의 통행을 쉽게 하였고 이에 따라 이웃 마을이나 도시와의 교류가 빈번해지게 되었다. 상하수도 시설의 설 치는 가사 생활에 영향을 주었고, 특히 전기설비의 가설은 조명뿐만 아니라 가정용 가전제 품이 농촌 가구에 들어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전기풍로, 전기밥솥, 냉장고 등의 취사용품은 가사노동의 성격과 양을 바꾸게 하였으며, 라디오나 TV 등 전파매체는 정보의 전달을 빠르게 하여 근대화된 도시문화를 급속히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1972년부터 시작된 농촌주택 개량사업은 담장이나 지붕 등 부분적인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정부의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시멘트 기와나 슬레이트로 바꿀 것을 독려하여 이후로부터 농촌에서 초가지붕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초가지붕의 소실로 농촌에서는 울긋불긋한 원색이 지붕들이 만들어져 자연경관과 조화되지 않는 마을 풍경이 만들어 졌다. 또한 초가지붕이 가지고 있었던 단열기능이나 빗물처리 의 능력을 시멘트 기와나 슬레이트가 대신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비가 자주 새거나,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주거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지붕개량 만으로는 근본적이 주택의 개량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1978년부터 표준적인 농촌주택 설계안을 마련하게 되었고, 재정지원을 통하여 이를 권장하였다. 농촌형 표준주택은 15평, 18평, 20평, 25평형 등으로 해마다 약간씩 다른 안들이 마련되었는데, 대부분 현관이나 입식부엌, 화장실 등을 살림채 안에 두는 집중형 공간구성이었고 시멘트 블록의 벽체와 시멘트 기와지붕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표준주택들은 재정지원에 대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풍토와 생활관습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전체적인 농촌주택의 모습을 바꾸는 데에는 실패하였으며, 표준주택을 지은 가구들도 살아가면서 내부를 변경하는 사례가 많았다.

키워드

집의역사,   주택,   ,   역사,   개항,   일제,   전쟁,   집의 역사
  • 가격2,5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4.10.11
  • 저작시기2018.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40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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