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독일가곡”을 읽고 - 독일음악 19세기 독일음악의 특징과 역사 _ 로레인 고렐 지음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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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세기 독일가곡”을 읽고 - 독일음악 19세기 독일음악의 특징과 역사 _ 로레인 고렐 지음 [독후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제 1장 : 시와 음악 >

< 제 3장 : 피아노 >

< 제 4장 : 작곡가, 성악가, 그리고 공연들 >

본문내용

었다. 슈톡하우젠의 학생이었던 헤르미네 슈피즈는 브람스의 곡을 부름으로써 그녀의 명성을 굳혔다. 슈피즈에 대해 볼프는 “그녀는 호소하는 그리고 깊게 채색된 목소리로 노래를 즐기며, 고도의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다양한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의 아내인 콘트랄토 아멜리에 요하임은 자주 브람스의 곡을 불렀다. 요하임부인은 특히 브람스의 “알토 광시곡”을 좋아해서 여러번 그 곡을 불렀다.
때때로 작곡가와 성악가는 예술적인 친밀함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펠릭스 멘델스존과 스웨덴의 가수 제니 린트의 관계는 뭇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낭만적인 추측을 하게 만들었다. 멘델스존은 그녀의 목솔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녀의 재능이 발휘될 만한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어했다. 그들의 관계에 인간적인 따뜻함이 존재했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멘델스존이 세상을 떠난 후 제니린트는 그의 유산으로 음악 장학회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휴고 볼프 또한 성악가와 사랑에 빠진 작곡가이다. 그의 사랑의 대상은 메조소프라노 프리다 제르니였다. 볼프는 다름슈타트에서 있었던 공연에서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듣고 그녀에 대한 애타는 열정으로 발전시켰다. 프리다는 볼프의 노래의 보급만을 위해 살기위해서 무대를 포기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지만 볼프는 갑자기 프리다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렸다. 왜냐하면 볼프는 그의 창조력이 사라졌을 때, 프리다에게 영감을 얻으려 했지만 그들의 관계가 창조력에 불을 붙이는 데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또한 성악가 파울리네 드 아나와 결혼했다. 슈트라우스와 파울리네는 그녀가 1887년에 그의 제자가 됨으로써 처음 만났고 결혼 후 오랫동안 슈트라우스는 그녀의 공연에서 반주자로 활동했다. 슈트라우스는 부인의 높고, 서정적인 소프라노 목소리를 염두에 두고 많은 곡들을 썼고, 유럽과 미국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할 때 관현악적으로 편곡하여 아내와 함께 공연할 기회를 마련했다. 파울리네는 남편의 곡들에 몰두했고, 결혼한 후부터 은퇴할 때 까지 남편의 곡들만 부르는 많은 공연을 가졌다. 어떤 비평가는 “슈트라우스 부인은 남편의 노래를 너무나 훌륭하게 불러서 듣는 이로 하여금 그녀가 직접 그 곡들을 작곡하지 않았을까 의심하게 만든다. 정작 슈트라우스는 피아노에 앉아 다소 지루해 하니 말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작곡가와 성악가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ㅣ거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또한 그 곡들이 쓰이고 불렸던 시기와 상황들에 대해 말해주기도 한다. 작곡가와 성악가의 연대는 가끔 소원하고 사이가 좋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19세기 가곡의 발전에 있어서 흥미롭고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과제를 통해서 서정시의 의미와 가곡의 발전과정에 따른 악기와 성악가들의 역할변화 등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곡가와 성악가의 관계는 서로 필수 불가결하고 그 어느 한쪽도 경시 될 수 없는 사이인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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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8.27
  • 저작시기2014.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79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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