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디아워스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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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디아워스 원작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영화 ‘The hours’ 이해
- 세 여자의 어느 단 하루 동안에 벌어지는 이야기
- 그녀들의 동성애적 성향에 관하여
- 자신의 삶에 선택권이 없었다
- 삶에 맞서는 방식의 차이
- 두 작가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

II. 상호 텍스트성
- 상호 텍스트성이란?
- 상호 텍스트 관점에서 바라본 소설‘세월’과 영화‘The hours’
- ‘댈러웨이 부인’과 ‘디 아워스’의 상호텍스트성

III. 포스트 모더니즘
-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
- 포스트 모더니즘 측면에서 바라본 ‘The hours’

IV. ‘The hours’에 대한 조원 각자의 새로운 감상

본문내용

을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던지고 있는 셈이다.
디아워스는 ‘-로부터의 자유’와 ‘-로의 자유’가 교차되면서 스스로 선택의 삶(실존적 삶)을 찾아나가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영화다. 비록 주인공 대부분이 자신들의 삶을 헤매면서 실제 현실과는 유리된 자신만의 현실 속으로 함몰해 갔지만 말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측면에서 바라본 ‘The hours’
The hours에 대한 조원의 새로운 감상
디아워스는 삶에 대한 의지를 죽음으로 역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버지니아에게 남편이 “왜 소설에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하지?”라고 묻자 버지니아는 “그래야 뒤에 남은 사람들이 삶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테니까”라고 대답하는 것에서 버지니아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와 다른 방법으로 삶을 얘기하고 있는 영화도 있을 것이다. 패왕별희(覇王別姬)는 \'패왕\'이 \'희\'와 이별한다는 뜻으로 초나라의 패왕이 한나라 유방의 계략에 말려 사면초가의 지경에 이르게 되자 애첩인 우희가 절개를 지키기 위해 검으로 자결한다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극의 제목이다. 영화 <패왕별희>는 동명의 경극 속의 패왕과 우희를 각각 연기하는 샬로(시토, 장풍의 분)과 데이(도즈, 장국영 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창녀 출신의 당찬 여성인 쥬산(공리 분)과 주변 인물들이 이 두 남자와 질긴 악연으로 얽혀 함께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살아간다.
쥬산은 창녀 출신이고 홍등가에서 샬로와 만난다. 더러운 요구에 화가 난 쥬산은 난간에 다리를 걸치고 뛰어내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뛰어내리라는 조롱 사이에서 아래에 있던 샬로와 눈이 마주치고 샬로의 손짓에 그대로 아래로 뛰어내린다. 거기다가 샬로는 그 무리들 사이에서 오늘이 우리의 약혼날이라며 약혼주를 마심으로써 쥬산을 구해주는데 나중에 데이에게 말하길 장난으로 구해준거라고 하지만 쥬산은 큰 감동을 받는다.
그 이후에 적극적인 행동이 없는 샬로를 기다리거나 상처받지 않고 쥬산은 홍등가에서 신발까지 벗어놓고 나와서 샬로를 찾아가 약혼한 여자는 나가라고 했다며 거짓으로 연기를 한다. 그래서 결국 그날 결혼까지 하게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끊임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그 후에도 경극을 그만두고 방황하던 샬로의 간접적인 폭력이나 충격으로 인한 유산, 그 외에 끊임없이 변하는 사회상황에서 맞닥뜨리는 많은 상황에서도 샬로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거기다가 자신을 연적으로 느끼고 적대시하는 데이까지 이해하고 포용하며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결국은 문화혁명 후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샬로가 쥬산이 창녀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뱉었을 때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삶이 무너져내린 것을 느낀 쥬산은 결혼식 때 입었던 빨간 옷을 입고 신발을 벗어놓은 후 목을 매어 자살한다.
디아워스는 삶에 대한 투쟁, 의지를 죽음으로 나타내었지만 쥬산은 삶은 대한 투쟁, 의지의 소멸을 죽음으로 표현한다. 패왕별희 자체의 내용은 그렇게 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쥬산의 삶에 집중해서 얘기한다면 두 영화는 다르지만 닮았다.
디 아워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그녀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이 중심 소재가 된 영화였다. 나오는 인물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에 슬픔이 가득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시종일관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 영화를 볼 땐 세 여자의 그 같은 우울함이 이해되지 않았다. 세 사람 모두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었고 또 그 자신들도 스스로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은 모두 죽음을 생각하거나 불행해했다. 지금까지 나는 사랑받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고 세상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다들 무엇이 부족했기에 이 영화는 이렇게 우울해야만 했던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조금 더 깊은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곧 그 심정을 내 나름대로 이해하게 됐다. 사랑을 받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받는 만큼 나 또한 누군가를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받는 일은 내게 행복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울프, 로라, 클래리사에게는 모두 공통적으로 자기 자신이 없었다. 울프와 로라에겐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자신이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없었고 클래리사는 자기 행복의 너무 많은 부분을 타인에게서 얻었다. 다른 사람에 의해 행복해진다는 것은 기쁘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것이다. 그렇게 얻어지는 행복은 그 사람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래리사는 한 사람에 의해 너무 쉽게 행복해지기도 했고 너무 쉽게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또 나는 영화 속 세 사람이 삶의 해결책으로 찾았던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죽음에 대한 선택권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은 때로는 최후의 도피처가 되어주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죽음만이 나를 그 불행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것에 대한 유혹과 환상이 너무 커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행복들을 놓치게 된다. 평범한 매일 매일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아무런 위로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진정으로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소소하고 일상적인 행복들임에도 죽음의 유혹에 눈이 멀면 그것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예술 작품이 결국 마찬가지일 테지만, 영화를 본 후 하나의 글을 써서 그것을 세상에 낸다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할 일이라 생각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작품이 앞으로 얼마나 긴 세월동안 살아남아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에,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1925년 쓰인 소설이 30년 후, 80년 후 각각 다른 시대,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간 여자들의 삶을 댈러웨이 부인으로 엮어주었듯이 문장의 집합체 곧 글이 가지는 힘은 너무나 크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그 영향력을 한 번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신성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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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3.10
  • 저작시기2016.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9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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