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역사 에 나타난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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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뜻으로 본 한국역사 에 나타난 역사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시작하는 말

정체성 확립하기

패자를 위한 역사

기독교적 민족사관에서 탈 기독교적 보편사관

세계사의 맥락 안에서 민족사의 의미

역사란, 상대자 인간이 절대자 하느님을 찾아가고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가는 과정

반유물사관 그리고 철저한 유신사관

역사란,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대화

종교와 과학, 정치와 종교 그리고 동서양간의 대화

마치는 말

본문내용

결코 가난한 자의 종교가 아니다. 하늘나라 문을 교회당이 막았다! 예수는 분명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걸까? 예수의 종교는 빈자, 무소유자의 종교였다. 그야말로 살기 위한 필사의 투쟁이었다. 그러므로 막 돌격이었다. 혁명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는 재산보호운동, 고리대금운동, 보수운동, 외교운동의 선구자다."
함석헌 전집18, p.88
예수는 가난한 자의 친구였고, 그 자신을 사회적으로 억눌린 자, 죄인, 빼앗긴 자들과 동일시했다(누가복음 4장 18절). 기독교 역시 기득권층보다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종교였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누가복음 18장 25절)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의 본질을 상실한 종교인과 종교의 본질적 존재인 하느님과의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함석헌은 한국 기독교인이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함으로써 절대자 하느님과 함께 대화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에게 광범위한 역사의식이 없는 종교는, 삶의 단면만 보여줄 뿐 전체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무익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역사적인 존재이다. 동시에 그는 어떤 종교나 사상도 사회나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되려면 공적인 증언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었다. 이 공적인 증언은 산골짜기 속에서의 조용한 명상보다는 세속에서의 직접적인 행동이어야 했다.
함석헌 전집2, p.152
역사가 곧 하느님
그래서 그런지 그는 예수를 순진한 종교적 인물로만 파악하기보다는 예민한 역사의식을 겸비한 역사적 인물로 부각시켰다. 그리고 하느님을 총체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일체적인 존재로 이해하면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그의 역사관을 이렇게 펼쳐나갔다. "예수는 자기 말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를 보내신 이가 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 보내신 이란 보통 말로 하면 역사요, 종교적인 말로하면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 역사의 아들이라 하나 다른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 예수를 가지고 마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했고, 누가는 아담의 자손이라 하였고, 요한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 할 수 있는 말씀이라 하였다."
함석헌 전집1, p.32
함석헌에게 하느님이란 다른 표현으로는 역사이었던 듯하다. 이러한 함석헌의 역사관이 어떤 이에게는 그가 너무 결정론적 역사관에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함석헌은 인간이란 존재가 역사의 산물임과 동시에 역사의 창조자라고 역설한다.
함석헌 전집3, p.204
그는 씨알을 역사의 주인, 주체로 보았고 한국사를 성서와 관련하여 해석함으로써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가능한 대화의 맥(脈)을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통해 발견하고자 힘썼다. 그는 깊고 날카로운 역사의식을 갖고 그가 역사적으로 속했던 시대의 정신과 고민을 찾고자 애쓴 이상주의자였다.
마치는 말
함석헌의 역사관은 그가 자라고 살아온 시대환경, 즉 기독교와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흐름의 산물이었다. 중국과 한국은 모두 권위주의적인 역사를 가졌다. 그러나 함석헌은 끊임없이 탈권위, 탈도그마화와 더불어 날마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하는 역사 만들기를 추구했다. 게다가 역사진화론이나 과학주의에 대한 관심은 그의 사관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절대자와 상대자, 하느님과 인간, 동양과 서양, 정치와 종교, 패자와 승자 등 서로 다른 가치간의 대화가 역사라고 보고, 이 가치들 사이의 매개자가 되고자 힘썼다.
그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통해 인간역사에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원칙이 사라지고, 도덕에 기초한 건강한 사회가 등장할 것이라 예견했다. 그는 역사나 인간사에 있어서 도덕성의 유무를 가장 중요한 판단의 가치로 보았고, 이를 바탕으로 인류는 그 과거사는 물론이려니와 현재와 미래에도 도덕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인간을 역사적 존재로 보았다. 그에게 역사와 인간은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였다. 그는 역사의식 없는 인간의 삶이나 인간의 가치가 부여되지 않은 역사는 무익하다고 보았다.
함석헌이 그 영혼의 흔적을 남기고 간 20세기는 한국역사를 통해서 가장 급격한 사회·정치적 변동을 가져온 시기이다. 그래서 그러한 20세기의 다변적 시대의 고민에 응답하기 위해서 그는 시대를 통괄해서 보는 역사가의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삶의 처절한 실존적 현장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과 그 자신이 몸소 피땀 흘려 뒹굴어가면서 만들어졌고 단련되어갔다.
그는 역사가의 주된 임무란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고 보았다. 미래를 향해 그 가치의 재평가하려면 역사는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역사뿐만 아니라 우주, 종교, 하느님의 개념 등도 불완전한 인간의 자리에 고정된 어떤 것으로 붙박아두기보다는 영원한 불(不)완성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그가 이러한 인간의 영원한 불완성을 인식하면서도 역사적 낙관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계속적인 도덕 발전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어떠한 경우에도 역사는 후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고, 거기에 그의 희망의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해방 후 역사가 뒷걸음질칠 한 원인을 씨알이 깨닫지 못함에서 찾는 그의 사관은 또한 씨알의 책임의식, 깨어 있음의 절실함을 강조한다. 진리의 올바른 체득은 역사의 입장에서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란 언제나 현재와 끊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인간역사의 방향이 자유를 향한 전진이라고 그의 믿음은 또한 모든 역사적 사건에 자신의 책임의식을 느끼는 것이었다.
역사란 항상 변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말씀도 역사적 변화에 맞추어 다양하게 표현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는 계속되는 세태 변화에 따라 종교적 교리나 신조도 항상 새롭게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퀘이커 기독교인으로서 그가 역사적으로 속했던 시대, 그것은 정치적 압박의 시대였고 종교적 편견의 시대였다. 이 속에서 그는 올바른 사관으로 절대자의 모습, 즉 진리를 발견하고자 시도했다.

키워드

함석헌,   역사관,   독후감,   감상문,   비평,   기독교,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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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4.19
  • 저작시기2004.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6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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