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의 귀거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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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해석 도움말

2. 현대어 해석

3. 무릉도원에 얽힌 도연명(陶淵明)의 설화

4. 시의 감상

5. 느낀점

본문내용

힘들어한다. 조선조 관료 사회는 특히 사람의 인품의 등급을 평가하는 객관적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아주 큰 사회였다. 뜻 있는 선비들은 끊임없이 중앙정계를 벗어나 지방근무를 원했거나 아예 정치권을 떠나고자 했다. 달리 직업이 없어 떠날 수 없었던 사대부들도 마음은 늘 사람이 사람을 재단하지 않는 전원, 즉 ‘자연’을 노래하고 꿈꾸었다. 몸은 관직에 있으면서 마음은 산림(山林)에 있었고, 공식적으로는 유학자이면서 비공식적으로는 도가를 흠모했던 것이다. 우리네 선인들의 문학 작품 가운데 반절너머 자연시와 풍류의 글이 차지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시의 감상>
도연명(陶淵明)은 중국 동진(東晋), 송(宋)의 시인으로 평택현 현령(縣令)이었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인간 속의 약점들이 불거지게 마련이라, 그가 살던 시대는 권모와 술수, 살기 위한 몸부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도 추할 수 있을까 하는 환멸에 전율하면서 이 예민한 시인은 그같은 오탁(汚濁: 더럽고 탁함)을 벗어난 세계를 누구보다 진하게 꿈꾸게 되었다.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한 그는 41세 때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사임한 후 재차 관계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의 퇴관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사전(史傳)에는 상관의 순시 때에 출영(出迎)을 거절하고, “나는 5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라고 개탄하였다고 적혀 있다. 향리의 전원에 퇴거하여 스스로 괭이를 들고 농경생활을 영위하여 가난과 병의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62세에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그 생애를 마쳤다. 후에 그의 시호를 정절선생(靖節先生)이라 칭하였다. 그의 시는 4언체(四言體) 9편과 그때에 유행하던 5언체(五言體) 47편이 전해지고 있지만, 기교를 그다지 부리지 않고, 평담(平淡)한 시풍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로부터는 경시를 받았지만, 당대 이후는 6조(六朝) 최고의 시인으로서 그 이름이 높아졌다.
그는 평생의 거의 대부분을 민간인으로 보냈기 때문에, 그의 시는 생활로부터 스며나온 마음의 부르짖음이었으며, 당시 유행하던 귀족적 생활에서 풍겨나온 여유 있는 유희문학(遊戱文學)이 아니라 민간생활 그 자체를 노래한 문학이었다. 따라서 그의 시는 따스한 인간미가 있으며, 고담(枯淡)의 풍이 서려 있다. 형식면으로는 대구적 기교(對句的技巧)나 전거(典據) 있는 표현은 별로 쓰지 않았으므로, 같은 시대 시인인 사영운(謝靈運)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양(梁)나라의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서는 “고금 은일시인(隱逸詩人)의 종(宗)”이라 평가하였으며, 후세에도 똑같이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풍은 당대(唐代)의 맹호연(孟浩然) ·왕유(王維) ·저광희(儲光羲) ·위응물(韋應物) ·유종원(柳宗元) 등을 비롯하여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쳐, 문학사상으로 남긴 업적은 매우 크다. 그리고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는 《문선(文選)》에다 9 편을 수록하여 전집을 편집하였다. 이후 판본(版本) 및 주석서가 나왔다. 시 외에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도화원기(桃花源記)》 등 산문에도 뛰어났으며, 또 지괴소설집(志怪小說集) 《수신후기(搜神後記)》의 작자로도 알려져 있다.
이 시는 주자의 사상을 기준으로 해서 해석, 감상해야 되는 시이다. 사람의 진리 탐구와 윤리 도덕적 삶을 결정지어 주는 능력, 그것은 바로 사람의 양지, 양능이라는 것이다. 물이 깨끗하려면 깨끗한 물이 수원지로부터 계속 흘러와서 물갈이 해 줘야 하는 것과 같이 진리탐구, 윤리 도덕적인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양지, 양능, 양심의 능력이 끊임없이 자기 반성에 의해 솟아나도록 해야한다.
天光雲影共徘徊의 천광운영은 유명한 말이 되었다. 도산서원 입구에 천광운영대가 있고 경주 박물관 마당에 있는 石盆 가장자리에도 천광운영 네 글자가 있다. 그리고 김삿갓의 시에도 있다. 김삿갓의 시는 일종의 패러디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시인 도연명 그가 41세 때, 최후의 관직인 팽택현(彭澤縣)의 지사(知事) 자리를 버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라고 한다. 난 이 시를 읽는 데 '중국시' 라고 해서 우리나라와 다른게 아니라는걸 느꼈다. 정겨운 느낌이라고 할까. 나의 표현으로 하자면 한마디로 '안빈낙도(安貧樂道)'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빈낙도는 가난하게 살면서도 마음을 편안히 여기며 즐겁게 사는 태도이다. 이 시는 안빈낙도와 안분지족, 즉 마음을 편히 여기며 지금 생활에 만족하며 즐기는 태도로 나타난다. 시의 배경에는 자연에 인생을 맡겨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도교적 인생관까지 깔려 있다. 전 4장으로 되어 있으며 제 1장은 관리 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정신 해방으로 간주하여 음었고, 제 2장은 그리운 고향집에 도착하여 자녀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그렸으며, 제 3장은 세속과의 절연 선언을 포함, 전원 생활의 즐거움을 담았으며, 제 4장은 전원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벼슬에서 물러나 전원에서 생활하는 즐거움을 담고있다고 보면 되겠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안빈낙도에 관련된 시를 많이 배워서 그런지 시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시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연군지정(충신연주지사)을 담은 듯한 느낌. 박인로 가사 <누항사> , 정극인 가사 <상춘곡> 결사부분의 삶의 태도가 <귀거래사>많이 닮았다. 이들 모두 안빈낙도와 연군지정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관직을 떠나오면서도 임금에 대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만 보더라도 온갖 부귀를 다 거머쥐고 있으면서도 권세를 지키기 위해 갖은 일을 다하고 욕심만 내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한 숨이 쉬어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관직을 떠나보내고 자연 전원생활을 즐거워한다는 도연명 시인에게 난 고개가 숙여짐을 느꼈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시였다. 도연명, 그는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 같은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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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4.07.01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8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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