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호석은 애정 불신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인 일 중독자였다. 호석은 남녀의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의 신뢰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호석이 유림을 같이 일할 파트너로 택한 것은, 가슴속에 박힌 누나가 준 상처를 누나와 같은 여자를 통해, 누나가 못다 이룬 꿈을 실현시킴으로서 풀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유림과 포옹하는 호석은 분명 그에게 애초에 없었던 인간미를 가지고 있다. 호석은 한 인간으로 유림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유림이 호석을 통해 받은 것은 많다. 애정 지상주의자로 인생에 사랑 외엔 없는 유림에게 사랑 외의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어준 건 호석이었다. 재능을 발견해주고, 개발해주고 혼자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호석은 유림이 그때까지 알고 있던 세계와는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고 여자를 일 파트너로 대등하게 대함으로써 유림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유림에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던 호석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유림과 눈 높이를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_ 전쟁터로 가는 건 내가 아니라, 그녀다. (호석의 대사 중에서)
앞으로 뭘 할 거냐는 유림의 질문에 호석은 새로 맡게된 디스플레이의 이미지를 위해 전쟁중인 소말리아로 떠날 거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호석은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유림에게 같이 이태리에서 공부하자고 한다. 유림은 호석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클 수 있었지만, 이제는 호석의 도움을 당당히 거절한다. 완전히 홀로서야 할 때인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할거라는 유림의 말을 듣고 호석은 '전쟁터로 가는 건 내가 아니라 그녀다.'라고 생각한다. 호석의 말은 우리의 현실이 여자가 일하는 데는 전쟁터 같을 수도 있다라는 의미로 비춰진다. 그러나 유림은 그 전쟁터에서 열심히 싸우는 훌륭한 전사가 될 듯하다.
_ 그가 내게 준 빛깔을 모두 돌려주고 간다. 내 빛깔은 내가 찾을 것이다.
(유림의 대사 중에서)
호석의 도움을 거절하며 돌아오는 유림은 호석에게서 받은 빛깔들을 그에게 모두 돌려주고 떠난다고 한다. 이제는 남이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빛깔로 홀로 서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노란색 환상 하나만 가지고 있던 그녀의 세계에 다채로운 여러 빛깔을 보여준 호석과 이제는 단절하고 자신만의 빛깔로 자신의 세계를 채워가려는 것이다. 호석과 단절하는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는 또 한 번 고정 관념을 깬다. 둘의 결말은 사랑도 아니었고, 유림에게 완전한 독립을 하게 함으로써, 유림에게 있어 변화의 시작은 남자가 해 준 것이지만, 그 끝은 자신의 것으로 하게 하려는 것이다. 유림은 이제 완전히 독립하여 홀로 선 인간이 되는 것이다. 돌아 온 유림은 남편과 이혼한다. 여성 영화나 페니미즘 문학에서 이혼을 자주 다룬다. 그것은 마치 이혼이 여성이 취할 수 있는 독립이고 자립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되는 데 꼭 필요한 절차인 것처럼 보이게 할 때가 있다. 유림의 이혼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유림의 이혼은 그녀가 다시 노란색으로 돌아가 일과 사랑 둘 다를 완벽하게 해내겠다고 선언했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과 사랑 둘 다를 성취해 내는 데 유림은 실패했다. 손의 마비가 왔던 것이다. 그 손의 마비는 정신적인 고통의 육체적인 표현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어떻게 했는가? 그녀는 일을 포기했었다. 그리고 다시 사랑으로 돌아가 가정에만 파묻혔다. 이제 영화의 끝 장면에서 일과 사랑 둘 다를 해내는 것도, 사랑만 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앞서 시도했던 두 가지 방법이 아닌 즉, 둘 다를 추구하는 것도 사랑만 추구하는 것도 아닌, 사랑을 버리고 일만 추구하려는 자세를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건 호석이 주장했던 바와 닮아 있다. 그러나 유림의 결론을 일반화시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다. 세상에는 일과 사랑 둘 다를 열심히 하는 여성도 있고, 일만 하는 여성도 있고, 사랑만 하는 여성도 있다. 사랑을 버리고 일만 추구하려고 하는 유림의 결론은 그녀만의 결론인 것이다.
_ 그의 결론, 그녀의 결론, 그리고 나의 결론
영화의 초반부의 호석과 유림을 한 마디 말로 규정하라고 한다면, 호석은 애정 불신주의자이고 유림은 애정 지상주의자였다. 그 둘의 상태는 극단적이어서 호석은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었고 유림은 꿈을 꾸는 환상주의자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영화의 종반부에서 호석과 유림은 서로를 통해 극단이 아닌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를 겪게 되는 데, 호석은 좀 더 인간미를 갖추게 된 것이고 유림은 사랑이 아닌 다른 삶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나는 <그대 안의 블루>가 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가 아니라, 남녀의 동지적 가능성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높이 산다. 왜 영화 속의 남녀의 결론은 늘 사랑이어야 하는가? 영화가 환상이듯, 영화 속의 사랑도 환상일 수 있다. 물론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영화가 비현실적이기만 하다면 아무도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의 어느 한 부분, 우리 모습의 어느 한 부분을 닮아 있기에 우리는 영화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의 사랑은 이 작품 속의 두 주인공 유림과 호석이 가진 생각처럼 때로는 노란색의 환상일 수도 있고, 때로는 우울하고 어두운 블루의 빛깔을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사랑 말고도 할 일이 많다. 이 영화 <그대 안의 블루>에서 처럼 서로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돕고 도와주는 그런 관계가 될 수도 있다.
호석을 통해 내면의 변화와 성숙을 겪게 됐지만 유림은 결말에서 호석이 준 빛깔을 돌려주고 자신의 빛깔을 찾겠다고 한다. 그녀가 자신의 빛깔을 고집하며 살게 될 세상은 호석의 표현처럼 전쟁터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깨어났고 고통스럽더라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 삶은 노란색만 있었던 이전의 그녀의 삶보다는 훨씬 다채로울 것이다. 유림은 호석과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말한다.
"더 이상 남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고 싶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호석씨도 예왼 아니죠." (유림의 대사 중에서)
_ 전쟁터로 가는 건 내가 아니라, 그녀다. (호석의 대사 중에서)
앞으로 뭘 할 거냐는 유림의 질문에 호석은 새로 맡게된 디스플레이의 이미지를 위해 전쟁중인 소말리아로 떠날 거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호석은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유림에게 같이 이태리에서 공부하자고 한다. 유림은 호석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클 수 있었지만, 이제는 호석의 도움을 당당히 거절한다. 완전히 홀로서야 할 때인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할거라는 유림의 말을 듣고 호석은 '전쟁터로 가는 건 내가 아니라 그녀다.'라고 생각한다. 호석의 말은 우리의 현실이 여자가 일하는 데는 전쟁터 같을 수도 있다라는 의미로 비춰진다. 그러나 유림은 그 전쟁터에서 열심히 싸우는 훌륭한 전사가 될 듯하다.
_ 그가 내게 준 빛깔을 모두 돌려주고 간다. 내 빛깔은 내가 찾을 것이다.
(유림의 대사 중에서)
호석의 도움을 거절하며 돌아오는 유림은 호석에게서 받은 빛깔들을 그에게 모두 돌려주고 떠난다고 한다. 이제는 남이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빛깔로 홀로 서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노란색 환상 하나만 가지고 있던 그녀의 세계에 다채로운 여러 빛깔을 보여준 호석과 이제는 단절하고 자신만의 빛깔로 자신의 세계를 채워가려는 것이다. 호석과 단절하는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는 또 한 번 고정 관념을 깬다. 둘의 결말은 사랑도 아니었고, 유림에게 완전한 독립을 하게 함으로써, 유림에게 있어 변화의 시작은 남자가 해 준 것이지만, 그 끝은 자신의 것으로 하게 하려는 것이다. 유림은 이제 완전히 독립하여 홀로 선 인간이 되는 것이다. 돌아 온 유림은 남편과 이혼한다. 여성 영화나 페니미즘 문학에서 이혼을 자주 다룬다. 그것은 마치 이혼이 여성이 취할 수 있는 독립이고 자립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되는 데 꼭 필요한 절차인 것처럼 보이게 할 때가 있다. 유림의 이혼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유림의 이혼은 그녀가 다시 노란색으로 돌아가 일과 사랑 둘 다를 완벽하게 해내겠다고 선언했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과 사랑 둘 다를 성취해 내는 데 유림은 실패했다. 손의 마비가 왔던 것이다. 그 손의 마비는 정신적인 고통의 육체적인 표현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어떻게 했는가? 그녀는 일을 포기했었다. 그리고 다시 사랑으로 돌아가 가정에만 파묻혔다. 이제 영화의 끝 장면에서 일과 사랑 둘 다를 해내는 것도, 사랑만 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앞서 시도했던 두 가지 방법이 아닌 즉, 둘 다를 추구하는 것도 사랑만 추구하는 것도 아닌, 사랑을 버리고 일만 추구하려는 자세를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건 호석이 주장했던 바와 닮아 있다. 그러나 유림의 결론을 일반화시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다. 세상에는 일과 사랑 둘 다를 열심히 하는 여성도 있고, 일만 하는 여성도 있고, 사랑만 하는 여성도 있다. 사랑을 버리고 일만 추구하려고 하는 유림의 결론은 그녀만의 결론인 것이다.
_ 그의 결론, 그녀의 결론, 그리고 나의 결론
영화의 초반부의 호석과 유림을 한 마디 말로 규정하라고 한다면, 호석은 애정 불신주의자이고 유림은 애정 지상주의자였다. 그 둘의 상태는 극단적이어서 호석은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었고 유림은 꿈을 꾸는 환상주의자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영화의 종반부에서 호석과 유림은 서로를 통해 극단이 아닌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를 겪게 되는 데, 호석은 좀 더 인간미를 갖추게 된 것이고 유림은 사랑이 아닌 다른 삶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나는 <그대 안의 블루>가 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가 아니라, 남녀의 동지적 가능성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높이 산다. 왜 영화 속의 남녀의 결론은 늘 사랑이어야 하는가? 영화가 환상이듯, 영화 속의 사랑도 환상일 수 있다. 물론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영화가 비현실적이기만 하다면 아무도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의 어느 한 부분, 우리 모습의 어느 한 부분을 닮아 있기에 우리는 영화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의 사랑은 이 작품 속의 두 주인공 유림과 호석이 가진 생각처럼 때로는 노란색의 환상일 수도 있고, 때로는 우울하고 어두운 블루의 빛깔을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사랑 말고도 할 일이 많다. 이 영화 <그대 안의 블루>에서 처럼 서로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돕고 도와주는 그런 관계가 될 수도 있다.
호석을 통해 내면의 변화와 성숙을 겪게 됐지만 유림은 결말에서 호석이 준 빛깔을 돌려주고 자신의 빛깔을 찾겠다고 한다. 그녀가 자신의 빛깔을 고집하며 살게 될 세상은 호석의 표현처럼 전쟁터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깨어났고 고통스럽더라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 삶은 노란색만 있었던 이전의 그녀의 삶보다는 훨씬 다채로울 것이다. 유림은 호석과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말한다.
"더 이상 남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고 싶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호석씨도 예왼 아니죠." (유림의 대사 중에서)
추천자료
- 루터저작선
- 그리스신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 시와 같은 노래가사/ 노래가사와 시의 경계
- [국어작문] 여성 성억압의 실태 및 문제점과 대안문화의 연구
-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
- 태평광기 52 진복휴 은천상 여구자 장탁
- (바가바드기타)동서양고전요약
- 과학탐구실험 붉은단풍잎으로시약만들기, 과학탐구실험 유리병을들어올리는물풍선, 과학탐구...
- 아프니까 청춘이다
- 스틱(STICK)!을 읽고...
- 루가의 복음서
- 애송시 한편의 분석적 해설과 감상 : 여인숙 _ 잘랄루딘 루미(Jalal ud-din Muhammad Rumi) /...
- [한국어 문법 교육론] 한국어 이인칭대명사의 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