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劉備)의 국가경영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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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유비(劉備)의 출신적 배경

Ⅲ. 유비(劉備)에 대한 역사적 평가

Ⅳ. 유비(劉備)의 인사경영
1. 인간적인 매력: 정의(情義)
2. 카리스마적 흡인력
3. 변함없는 초심
4. 최고의 자산: 인재(人才)
5. 신뢰(信賴)
6. 부하에 대한 애정(愛情)

Ⅴ. 유비의 인간관계학: 제갈공명 · 관우와 장비
1. 제갈공명(孔明)
2. 관우(關羽)와 장비(張飛)

Ⅵ. 조직의 미래: 차기 지도자 선택

Ⅶ. 맺는 말

본문내용

없었다. 관우에게는 자신이야말로 '천하의 호걸'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마초에 대해 궁금했다. 그래서 관우는 승상인 제갈공명에게 편지를 보내 마초란 인물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관우의 편지에 대해 제갈공명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마초는 문무에 뛰어나며 참으로 남아다운 인물이다. 일대의 영웅호걸이라고 할 만하다. 장비와 비교하면 당장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겠지만, 그대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마초는 그대를 따르지 못한다 하겠다.'
관우는 제갈공명의 이 편지를 읽고 좋아서, 번객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이곤 했다고 한다. 관우는 용맹하고 신의를 져버리지 않는 믿음직한 인물이였으나, 단순하기 때문에 칭찬에 약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관우는 정치적인 흥정이나 외교 전략에 매우 약했다. 게다가 그는 병졸은 중히 여겼지만 사대부(상급 문관)에 대해서는 거친 언행을 서슴치 않고 했다.
관우가 형주를 지키고 있으면서 오나라의 여몽(呂蒙)의 모략에 넘어가고, 자기 편 사대부가 배신하는 바람에 자멸한 것은 이러한 결점 때문이었다.
한편 장비는 관우와 달리 신분이 높은 인물에게는 경의를 표했으나 부하를 중히 여기지 않았다. 이 또한 조직의 리더로서 실격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유비는 항상 이 점을 걱정하면서 훈계했다. 아니나 다를까 장비는 부하의 칼에 어이없게 목이 베어졌다.
Ⅵ. 조직의 미래: 차기 지도자 선택
중국의 고사 가운데 '싸워서 이기기는 쉽지만, 지켜서 이기기는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 촉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유비는 숱한 시련과 고난을 이겨가며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세워진 촉나라를 지켜내는 것은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의 몫이었다.
유선은 촉나라를 지켜갈 만한 인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제갈공명은 최선을 다해 유선을 도왔다. 따라서 유비가 죽은 후에도 촉나라의 백성들은 평화로울 수 있었으며, 가끔씩 위나라를 공격하며 위엄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갈공명이 죽은 후 촉나라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공명이 죽은 후, 촉나라의 내정과 군사는 장완(蔣琬) · 비위(費褘) · 강유(姜維)가 담당하게 되었다. 이들은 당대의 일류 전략가와 정치가였으며, 특히 강유는 제갈공명의 유업을 계승하여 자주 위나라 영토로 출격해서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차기 지도자 유선은 이러한 훌륭한 인재들이 있음에도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263년 서부 국경이 촉나라의 강유에 의해 자주 위협 당하게 되자, 화가 난 사마소(司馬昭)는 강유가 버티고 있는 한중을 피해 우회하여 성도를 기습 공격했다. 갑작스런 위군의 공격에 군사력이 허술한 성도는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나약하고 아둔한 유선은 즉시 항복을 자청했다.
유선 일행은 포로가 되어 위나라로 끌려갔다. 사마소는 유선을 위로하기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유선의 부하들은 포로로 잡혀와 수모를 당하는 것에 치욕을 느껴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유선만은 혼자 기뻐서 연회를 즐겼다.
이것을 본 사마소는 한심해하며 측근인 가충(賈充)에게 '저 사람이 멍청하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래 가지고야 설사 제갈공명이 살아 있었던들 촉을 보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지리(地利)나 인재(人材)면에서 보더라도 당시의 촉나라는 비록 승상 제갈공명이 죽고 없었지만, 위나라와 오나라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차기의 지도자였던 유선이 현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촉나라는 망하고 만 것이다.
유비는 차기 지도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좀 더 냉철해야 했다. 유비는 스스로 유선의 자질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고, 이에 대한 판단을 공명에게 맡기고 숨을 거두고 만다. 유비는 유언을 통해 공명에게 유선이 황제의 자질이 있다면 돌보아 주고, 그렇지 않다면 공명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유비의 유언대로 제갈공명이 유선이 황제의 재목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공명 역시 황제를 보좌하는 신하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유비가 장기적인 안목에서 객관적으로 촉나라의 미래를 내다보고 차기 지도자를 지목했더라면 촉나라는 훨씬 더 오랫동안 강성했을 것이다.
Ⅶ. 맺는 말
흔히 사람들은 '역사에서 배운다'고 말한다. 그것은 역사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침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三國志)>의 유비를 통해 조직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몇 가지 인사전략을 배울 수 있다.
우선 리더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인재를 구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만약에 유비가 조조와 같은 지략가였다면 유비는 인재를 모으는 데 그토록 애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둘째 리더는 겸손하고 늘 한결같아야 한다. 유비는 부하들에게 많은 권한을 이양하고 그들의 야심과 포부대로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리더이다. 게다가 초심을 잊지 않고 늘 겸손한 자세로 부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셋째 리더는 부하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 특히나 열악한 상황속에 처한 조직에 있어서 부하들의 신뢰와 존경은 조직의 흥망(興亡)과 직결된다.
넷째 리더는 부하에게 계속적으로 애정과 관심을 보여야 한다. 리더가 모든 부하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현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권위만을 내세워서 부하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보이지 않는 다면 부하들을 리더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인사경영 전략은 유비 본인이 '정의(情義)로운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권모가'는 사람을 마음 속 깊이 사로잡지 못하기 때문에 부하를 완벽하게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 이에 반해 '정의로운 인간'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부하를 자신의 심복으로 만든다.
<삼국지>속의 영웅호걸은 우리와 동떨어진 아득한 존재가 아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들과 같은 고민거리를 안은 채 살았던 사람들이다. 기회를 잡고 올라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험난한 생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하들을 어떻게 통솔해야 효율을 높이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 등등. 그들이 직면했던 문제들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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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3.04
  • 저작시기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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