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시대의 음악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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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opo da Bologna), 지오반니 다 캇치아(Giovanni da Cascia), 프란체스코 란디니(Francesco Landini)등이 마드리갈 작품을 낳았다. 성부의 수는 2성 악곡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3성 악곡이였다. 그러나 얼마뒤 발라타(ballata)가 유행하게 되자, 14세기 중엽에 이르러 마드리갈은 쇠퇴해 버렸다.
[16세기 마드리갈]은 14세기 마드리갈과는 무관한 것이다. 15세기 말부터 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 각지의 궁정을 중심으로 인문주의적 교양이 있는 음악가들 사이에서 그 당시 유행하던 플로톨라(frottola)를 보다 예술적으로 세련되게 하고자 하는 기운이 높아지고 있었다. 초기의 마드리갈은 플로톨라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활약하던 플랑드르악파 작곡가들이 이 새로운 마드리갈에 착안하고, 폴리포닉한 기법을 도입하여 귀족사회에 적응되는 예술적 통작형식으로 작곡했다.
15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마드리갈은 3성내지 4성이 많았고 모방수법과 단성(호모포니)기법이 절충되어 있었다. 16세기 후반까지는 5성부의 기법이 중심이 되고 음악은 더욱 폴리포닉하게 되었다. 이 시기 마드리갈 작곡의 주도권은 플랑드르인으로부터 차츰 이탈리아인에게로 옮겨지게 되었다. 16세기말 부터 17세기 초에는 가사의 극적인 표출과 주관적인 표현효과를 노려서 반음계적기법 같은 것이 한층 교묘하게 행하여져 16세기말에 원숙함을 보여주고 있다. 16세기말 부터 17세기 초에 마드리갈은 성악 폴리포니의 틀에서 벗어나 상성부와 통주저음부를 무시한 새로운 표현양식이 채택되어 콘체르타트양식 (stile concertate), 표출양식(stilereppresentativo)가 시도되게 된다. 이와같은 변천은 몬테베르디 한 사람의 작품가운데서도 그 변화가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한편 16세기 이탈리아의 마드리갈은 엘리자베드 1세, 제임스 1세 통치하의 영국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미 1550년대의 영국에는 이탈리아의 기법을 채택한 약간의 마드리갈 작품이 작곡되었으나 본격적인 영국 마드리갈 예술의 개화에 자극되어 1588년 출판된 <무지카 트란살피나>(Musica Transalpina)로써, 우리말도 번역하면 “알프스를 넘은 음악”이란 뜻이다. 즉 이탈리아 마드리갈의 명곡이 영역되고,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 마드리갈의 번역과 영국의 독자적인 마드리갈이 활발하게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영국의 마드리갈은 본질적으로는 이탈리아 특히 마렌치오의 영향이 컸으나, 영어 고유의 악센트와 영국적 기질이 반영되고, 선율, 리듬, 화성의 모든 면에서 범국민적인 예술로 자라났다.
◐초기오페라(Opera)
[오페라의 탄생] 후기르네상스의 큰 음악적 특징 중 하나는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오페라의 탄생이다. 서양 음악의 역사에서 오페라만큼 그 시작이 분명한 음악양식은 없다. 오페라가 처음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바르디 (Bardi, Giovanni : 1534-1612)백작의 궁정이며, 때는 1597년 즉 르네상스 말기였다. 당시 돈 많은 음악애호가였던 바르디 백작의 저택에 모인 일군의 음악가와 시인들은 고대 그리이스의 음악극을 재연하려는 시도를 했다. 시인 리눗치니(O.Rinuccini, 1563-1621)가 고대 그리이스의 신화를 각색한 대본에 작곡가 야코포 페리(J.Peri : 1561-1633) 및 캇치니(G.Caccini :1550-1618)등이 협동해서 다프네 Dafne 란 음악극을 만든 것이 오페라의 탄생이다. 이 오페라는 현재 악보가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현재 악보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는 1602년에 카치니가 리놋치니의 대본에 의해 작곡한 <에우리디체 (Euridice)>이다. 피렌체에서 시작된 오페라는 이탈리아 전지역으로 퍼지면서 그 중심지가 베네치아로 옮겨 번영했는데, 베네치아 악파의 최대의 작곡가는 몬테베르디는 오르페오를 1607년 만토바에서 초연했다. 이 오페라는 대규모 관현악단을 사용한 오페라로서 관중 동원면에서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오페라는 이제 시민들이 즐기는 예술이 되었으며 17세기 말 베네치아에는 오페라를 위해 약 15개의 극장이 생길 정도로 번창했다.
고대 그리이스 문화의 재건이라는 서양 르네상스 예술에 있어 다른 예술쟝르와는 달리 모방할만한 고대 그리이스의 실제적 유산이 전혀없었던 음악은 오페라를 통해 시도되었던 것이다. 초기 오페라의 대본은 그 소재를 고대 그리이스 신화에서 가져온 것이 대부분이었고, 음악은 극의 내용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사의 운율을 살린 레시타티보(stile recitativo)가 초기 오페라극을 이끌어 갔다. 오페라를 창시한 일군의 예술가들은 고대 그리이스의 연극이 시와 음악, 무용이 함께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었고, 시에다 단선율의 곡조를 붙이고 간단한 악기 반주를 곁들인 노래가 극의 내용을 전개해 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초창기의 오페라의 역사적 의의는 (1)독창 중심이며, (2) 르네상스의 현세적 성향을 대표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작곡되었기에 그 내용이 처음부터 현세적, 세속적이었고, (3) 노래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발생했으며, (4) 일군의 지식인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내용적으로나 이론적으로는 여러가지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등이다.
서양문화사의 찬란했던 시기인 르네상스 시기의 특징과 분위기(Mood)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유분방한 예술적 독창성"을 지녔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중세시대의 복(神)중심의 예술 양식으로 인해 작가의 창작성의 배제와 소재의 정형화, 일률적인 표현기법을 탈피하고 새로운 예술양식의 태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예술의 종교적 색채에서 예술에 대한 관심의 대중화가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전 시기인 중세 시대와 비교해 볼 때 엄격하고 성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서민적이고 평민적인 성격을 표현하고자 한 부분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시대라 하면 미술작품을 많이 떠올릴 수 있는데, 그 못지 않게 음악에 있어서도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던 시대이며 그것에 대해 의의를 부여할 만한 가치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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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4.02
  • 저작시기2005.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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