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의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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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의 삼국유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II. 일연의 생애와 역사관

Ⅲ.삼국유사의 체제와 해석

IV.삼국유사의 간행, 유통 및 소장

V. 결론

본문내용

'바파암'은 초라한 비구 거처이다. '달'은 불(佛)이다. 불법을 상징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구(결구 : 結句)의 구름은 무명(無明)으로써 감통의 장애를 의미하며 '못'은 인간의 마음을 상징한 것이다.
전체적인 의미는 향을 피우고 불화를 보며 친구를 부르는 등 공양한다고 법석을 떤다. 그러나 왕과 귀족은 외세와 외양에 의지하여 내면을 바로 볼 수 없어서 즉 무명의 구름에 가려 자기가 스스로 부처임을 모르던가 늦게야 알게된다. 즉 진정한 부처는 가까이 있는 것이며 이것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입 : 효소왕이 망덕사를 세우다
효소왕 원년에 당나라 덕을 기리는 망덕사 창건, 64년 뒤 경덕왕 14년에 안사의 난이 일어나며 탑이 흔들림
망덕사 낙성회 때 효소왕 친림, 남루한 비구가 재에 참석 요청 및 말석 참석 허락
전개 : 효소왕이 진신석가를 몰라보다
재가 끝난 후 왕은 비구에게 "왕이 친림한 재에 갔었다는 말을 퍼트리지 말라"고 조롱하니
비구는 왕에게 "누구에게도 진신을 공양했었노라고 하지말라"하고 사라짐
결론 : 왕은 깨닫고 불전을 건립하다.
왕은 비구가 진신임을 깨닫고 비파암 밑에 석가사를 건립하고 사라진 곳에 불무사 창건
보조설명 : 대도지론(大度智論)소재 설화로 그 의미 설명
지론(智論)에서 말하기를 삼장법사가 절의 큰 모임에 참석하려하자 옷이 누추하다해서 문지기가 번번이 못 들어가게 했다. 그는 좋은 옷을 빌려 입고 가니 문지기가 들어가게 했다. 이렇게 참석하여 좋은 음식을 얻어 옷에 먼저 주니 여러 사람이 왜 그렇게 하느냐 물었다. 그의 대답은 '내가 여기에 들어오게 된 것은 이 옷 때문이니 이 옷에 음식을 주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요약정리 : 찬시
향사르고 부처님에 예배하며 새 불화를 볼제 燃香擇(拜)佛看新繪
공양하는 재승들은 옛친구나 부르네 辨供 僧喚舊知
이로부터 비파암 위의 달은 從此琵琶 上月
때때로 구름에 가려 못에 더디 비추네 時時雲掩到潭遲
*擇은 拜의 오기(誤記)인 듯함
IV.삼국유사의 간행, 유통 및 소장
삼국유사가 처음 간행된 시기를 명확히 알게 해주는 기록은 없다. 이 때문에 초간(初刊)에 대한 논의는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삼국유사 초간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대두되어 왔다. 그 하나는 일연에 의한 초간 가능성을 배제하고 그 제자 무극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설은 일연의 유사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노력에 비추어 볼 때 유사의 초간은 일연의 생존시에 이루어 졌을 것이라고 하는 설이다. 그러나 학계의 일반적 견해는 일연의 사후인 1289∼1322년으로 상정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 간행된 판본의 인본(印本)인 석남본(石南本)과 송은본(松隱本)이 현존한다. 보물 제419호로 지정된 송은본은 현재 곽영대(郭永大)가 소장하고 있다. 이 본은 3 4 5권만 있는 잔본이다. 석남본은 1940년부터 송석하(宋錫夏)가 소장하였던 것으로 왕력(王歷)과 제1권만 남은 잔본으로 현재 소장처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1512년(중종 7)에 경주부윤 이계복(李繼福)이 중간한 《삼국유사》는 중종임신본(中宗壬申本) 또는 정덕본(正德本)이라고 한다. 이계복이 중간한 책판은 19세기 중반까지 경주부에 보존되었지만,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중종임신본의 인본 몇 종이 현재 국내외에 전한다. 5권이 갖추어진 완본인 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은 이마니시(今西龍)가 1916년부터 소장하였는데(일인들은 흔히 今西本이라 칭한다.), 현재는 일본의 텐리대학(天理大學) 도서관의 귀중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서울대학교본은 완본이지만 약간의 가필이 있다.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본은 초기의 임신고인본으로 평가되고 가필과 가획이 없어 원형에 가까운 귀중본이다. 이밖에도 중종임신본은 몇 가지 더 전한다.
V. 결론
삼국유사는 승 일연의 사찬으로써 당시 고려시대에 팽배하던 관찬사서류와는 처음부터 성격을 달리하였으며, 책제목에서처럼 삼국사기를 보완하는 사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시대상황에 맞추어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하였으며, 유교의 합리주의 사관을 비판하였고, 지배자 중심의 역사서술에서도 벗어나 민중의 설화들을 끌어들였으며, 또한 신이한 기록들을 서술하고, 인용한 전거를 밝혀줌으로써 우리가 고대사를 보다 풍부하고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자료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책과 문장들을 통해 일연이 불교만이 아니라 유학과 역사, 시에도 대단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다양한 경전과 전적들이 인용되어 있고 그 문장은 풍부한 내용과 의미를 담고 있지만, 삼국유사를 제대로 읽어 내기는 쉽지 않다.
일연은 많은 자료를 모아 수록하고 인용된 사료와 자신의 견해를 구분하 서술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때로는 고증을 도입하기도 하여 객관적으로 밝히려고 노력하였다고 평가가 되기도 하지만, 그가 인용한 인용 내용 가운데 절반 가량이 그 전거를 밝히고 있지 않아 객관적 서술 태도가 일관되게 지켜 지지는 않았다는 점이 아쉽움으로 작용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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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익진, 『삼국유사 찬술 고』, 한국사 연구 38,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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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9.10
  • 저작시기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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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1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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