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학] 『김일성 사상과 북한 정권, 625전쟁, 항일무장투쟁 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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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학] 『김일성 사상과 북한 정권, 625전쟁, 항일무장투쟁 등』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김일성의 생애
- 인물의 간단한 소개
- 유소년 시절
2. 항일무장투쟁
3. 북한정권의 성립
4. 6·25 전쟁
- 의의
- 결과와 성격
5. 독자노선의 표방과 주체사상
6.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김일성의 사망

Ⅲ. 결론

본문내용

히 구별되는 대남정책을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분단문제 해결방식에서 단일 통합형 모델(연방제)보다는 공존형 모델(연합)에 더 관심을 두는 조짐들을 보인 것이다. 즉 북한은 기존의 연방제방안을 수정하여 국가연합적 방안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현실변화에 대응하여 연방 초기에는 잠정적으로 외교, 국방권을 지역정부가 보유할 수 있다고 하는 등 기존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통일방안에 대해서도 부분적인 손질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김일성 사망후 북한지도자들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통일의 첫 단계를 `수십 년 동안이나 유지될 수 있는' 국가연합이 되어야 함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고려민주연방제를 주창하고 있으나 이미 내용적으로 북한의 통일방안은 국가연합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사실은 6·15공동선언에서 확인되었으며, 다시 10월 6일 안경호의 연설에서 재확인 된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북한은 강력한 후원세력이었던 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붕괴, 김일성의 사망, 심각한 경제난, 그리고 사회 통합력의 약화 등으로 인하여 위기상황을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북한은 체제생존을 위해 '우리식대로의' 사회체제를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신하고 있으며, 사회개방은 필연적으로 체제붕괴와 직결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근본적인 체제개방이나 개혁보다는 주민들의 기대를 억압함으로써 불만의 생성을 방지하고 체제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폐쇄적. 고립적. 자급자족인 독재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 요인이다. 이렇게 볼 때 그들로서는 자신의 체제를 위협하는 결정적 요소는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한국의 존재] 그 자체인 것이다. 즉, 한국이 존재하는 한 북한은 언제나 붕괴위협에 직면해 있는 까닭에 자신의 존립을 위해서는 한국이라는 국가는 반드시 소멸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는 곧 그들의 최대명제인 한반도의 적화통일과 일맥상통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김일성이 죽고 난 후 미국과 핵협상을 타결하는 등 대외적인 면에서 다소 신축성을 보이고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교적 고립감과 심각한 경제난을 탈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또한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북한은 체제유지와 생존을 위해 미국과 일본 등의 서구 선진국가들 및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해야만 했다. 북한은 1993년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계기로 미국과 직접협상을 시도했다. 그동안 제국주의를 반대하면서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하던 북한이 탈냉전과 함께 가장 우선적으로 미국과 직접협상을 추진하게 된 데에는 사회주의의 전반적 위기 속에서 그들의 체제유지와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기대와 희망대로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경제난 그리고 지난 반 세기동안 북한을 지배해 왔던 김일성의 사망 등의 국내외적인 난관에도 불구하고 탈냉전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지루한 줄다리기를 지속한 한 끝에 1994년 10월 제네바 북-미기본합의문을 통해서 핵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체제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
Ⅲ. 결론
1949년 9월 9일 북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1994년 사망할 때까지 국가 주석, 조선노동당 국방위원장 등 모든 국가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김일성은 일제 때부터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경력을 포함 사실상 국가의 건국 대부로 절대적인 권력행사를 한 인물이다. 이런 김일성은 오늘날 동시대인에게 다양하게 인식되고 평가 받아온 인물이다. 북한 주민 에게는 만능의 존재로서 최상의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대부분 그는 '가짜 김일성' 과 한국 전쟁의 주범이라는 것으로만 비춰져 왔다. 따라서 그는 우리사회에서 악마와 동격의 지극히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김일성은 위에서 알아봤듯이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이 보천보 습격사건이다. 그리고 김일성은 반미운동가이기도 했다. 수령의 의사가 잘 반영된 북한에서 일본타도의 감정이 심한 것을 봤듯이 공산주의 역시 역사 관념 때문에 일본을 용납하지 않았다. 실제로 북한고위층인사들은 거의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실제로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은 남조선의 간부가 되었고 만주에서 독립활동을 했던 이들이 북조선의 간부가 된 셈이다. 하지만 남쪽정부의 간부 중에서는 친일파가 많이 있어서 북조선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렇듯 무조건 북쪽이 잘 못했고 우리는 피해자라는 식의 역사는 바뀌어야한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독립운동을 무조건적으로 김일성덕분에 김일성 혼자 하였다는 왜곡된 역사도 잘 못 됐지만 김일성이 독립운동가 라는 사실이 가짜라고 하는 왜곡된 역사도 잘 못됐다. 김일성의 항일투쟁은 비록 좌파운동이기는 하였으나 조국광복을 목적으로 하는 애국투쟁의 성격을 강하가 띠고 있었다. 따라서 구체적 사료에 의해 뒷받침되는 사실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북한을 객관적 근거 위에서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김일성 연구가 심화되면 이 같은 오해들이 서서히 불식되겠지만, 김일성과 관련하여 해명해야할 주제들이 아직도 많이 쌓여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좀 더 객관적인 역사를 통해 인물을 통해 사실을 알아서 '가짜김일성론' 같은 왜곡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 참고문헌
ㆍ 유영익 외. 『한국과 6·25전쟁』. 연세대학교출판부, 2002.
ㆍ 이태섭. 『김일성 리더십 연구』. 들녘, 2001
ㆍ 하루끼와다지음, 이종석 옮김. 『김일성과 민주항일전쟁』. 창비, 1992
ㆍ 서대숙. 『현대북한의 지도자』. 을유문화사. 2000
ㆍ 임영태 정진화 박현희. 『거꾸로 읽는 한국사』. 푸른나무, 2002.
ㆍ 정인영『북한의 정치』. 을유문화사, 1990
ㆍ 웹진 한국현대사
ㆍ http://hisedu.x-y.net/modern-class-4-3-1.htm
ㆍ http://my.dreamwiz.com/arysu/work/juch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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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1.02
  • 저작시기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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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5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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