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의 특성][공포영화의 역사][공포영화에서 공포를 주는 요인][공포영화의 사례]공포영화의 특성과 공포영화의 역사 및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주는 요인 그리고 공포영화의 사례에 관한 심층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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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의 특성][공포영화의 역사][공포영화에서 공포를 주는 요인][공포영화의 사례]공포영화의 특성과 공포영화의 역사 및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주는 요인 그리고 공포영화의 사례에 관한 심층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공포영화의 특성

Ⅲ. 공포영화의 역사

Ⅳ.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주는 요인

Ⅴ. 공포영화의 사례
1. 여고괴담
1) 여고괴담 분석
2) 여고괴담에서 공포를 주는 요인
3) 고전적 공포 영화와의 차이점
2. 식스센스의 분석
3. 령의 분석
4. 장미의 이름 분석

Ⅵ.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나 과학이 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행여 앗아갈까 조바심을 쳤다. 이러한 조바심은 13세기에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중 일부와 그 주석서들에 대한 금지령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어느 체제이든 그 체제가 꺼리는 지식들이 있기 마련이다. 심한 경우, 힘을 가진 자가 그 지식의 유포를 ‘금지’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 최근까지도 반공 이데올로기를 방패삼아 접근은커녕 입에 올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책들이 이러한 ‘금지’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어느 정도 지각이 잇는 원로 수도사가 ‘웃음’이라는 것에 왜 그렇게 집착을 했던가 하는 점이었다. 인간에게 웃음을 허용하다 보면 하나님까지 비웃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이 혼돈에 빠질 것이라는 그에게는 일품이라 여겨졌던 그 논리 때문에 살인까지 감수해가면서 희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2권을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그의 집념 또한 내게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 비논리적인 논리를 믿었다는 건 사회여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치더라도 잘못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오도된 이상추구가 충분히 숭고해 질 수도 잇는 인간의 집념을 한순간에 쓸모없는 집착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 신앙과 광신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대사도 나오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방향설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영화의 배경인 14세기는 우리가 과학혁명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진 17세기와는 시간적으로 거리가 있다. 하지만 과학혁명을 준비하는 많은 조짐들이 이때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에선 장서관이 불타고 번역사와 필경사들이 죽어 나가지만 장서관과 번역승들은 금지된 지식을 유포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실제로 14세기는 수도원에 보관된 옛 지식들이 서서히 복원되고 아랍으로 흘러 들어갔던 과학 지식들이 대규모 번역 사업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자연에 대한 관심의 복원이 사회경제적인 변화들, 예컨대 지리상의 발견, 경제의 팽창 등과 중첩되면서 지금까지 계속되어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근대를 구성하는 원리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중세에 드리워진 기독교의 장막을 암흑이라 부른다면 그것을 걷어낼 근대과학, 근대정신이 한줄기 빛으로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쓰고 보니,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끝으로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본다. 예비 수도사 앗소는 우연한 기회에 식량을 훔치러 왔던 가난한 여인을 알게 되고 그녀에 대한 야릇한 감정이 마음속에 자리잡는걸 느낀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그에게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을 뿐 아니라, 그런 경험은 금기시되고 있는 영역이었기 때문에 잠시 혼란을 느낀다. 더욱이 사랑과 욕정에 대한 윌리엄 신부의 냉정한 가르침에 아직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간직한 앗소는 반발감을 느끼고 마녀사냥, 이단처형이라는 허울로 희생양이 되는 무고한 사람들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수수방관적 태도를 취하는 윌리엄 신부에게 일말의 연민도 느끼지 않느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앗소가 느꼈던 감정은 그가 말했던 대로 연민 그 이상도 이해도 아니었음을 스스로 인정했던 것일까. 수도원을 떠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그 여인의 애절한 눈망울을 뒤로 한 채 그는 스승을 따라간다.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그녀를 생각하여 우리 인간은 모두 신으로부터 아무런 이름도 지어 받지 못한 장미라고 말하며 회상의 종지부를 찍는다. 사실, 그 여인의 그러한 행동 역시 사랑이라기보다는 당장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보여지긴 하지만 앗소도 최종적으로는 수수방관적인 입장을 받아들인 건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진정한 신앙도, 진정한 삶도 타인에 대한, 세상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 이르러서야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도 있듯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 속에서 비로소 개개인이 들이나 정원에 무리 지어 피어나는 장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고 오직 신에 의해서만 규정 지워지는 존재 이상이 될 수 있는 거라 믿는다. 여기서 또 한번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기 위해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 의미에까지 고민하고 현실의 장벽을 넘기 위해 애썼던 인류의 역동적인 힘에 숭고함을 느낀다.
Ⅵ. 결론
우리는 왜 공포영화를 보는 것일까? 공포영화 속의 공포의 요인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공포 영화를 보면서 공포를 느끼고, 그 공포를 즐기기도 하는 것일까? 공포란 괴로운 사태가 다가옴을 예기할 때나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때 일어나는 불쾌한 감정으로 그 괴로운 사태에 적절히 처리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든지 또는 처리하기가 곤란할 때 공포가 일어난다. 특정대상과 결부되지 않는 두려움은 불안이라 하며, 이것이 특정대상에 결부되었을 때의 감정이 바로 공포이다.
공포영화가 시작된 이래, 다른 영화들과 같이, 공포영화도 장르를 다양화하며 발달하여 왔다. 우리 나라 같은 경우, 1930년대, <장화, 홍련 전>을 시작으로 하여 70년대와 80년대의 하얀 소복에 머리를 풀어헤친, 여성의 한을 주제로 하는 전통적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들과 사이코 스릴러물이 있었다. 그리고 점차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는 사라져 가고, 공포 영화가 시들해지다가 90년대에는 70년대와 80년대의 사이코 스릴러 공포영화를 계승한 <손톱>, <올가미>등의 영화가 나왔다. IMF 이후에는 <여고괴담>, <조용한 가족>, <링> 등등의 다양한 공포 영화가 등장하고 있다. 외국의 공포 영화도 변화를 거듭하며, 영화의 모양새나 내용물이 바뀌어가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1. 공포영화의 모든 것, 2003
2. 김정호 외, 영화 따라잡기, 평민사, 2004
3. 남인영, 여고괴담에 얽힌 공포의 내력, 사회평론 길, 1998
4. 유현목, 한국영화 발달사-한국 공포영화 역사
5. 영화정보 사이트 무비라인, Movie Line : www.movieline.co.kr
6. 정성일·김용관 평론, 공포영화의 정의·요소 등
7. 한국영화 비평 웹진 뿔 www.kofilm.com/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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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08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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