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4대미인-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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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의4대미인-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서시(중국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인계의 주인공)
(2)왕소군(흉노로 시집간 화친의 미녀사절)
(3)초선(삼국지 국면전환의 주역)
(4)양귀비(시아버지 당 현종을 홀린 경국지색)

본문내용

길에 공주와 부마의 행렬과 마주쳤는데, 서로 길을 양보하지 않다가 큰 싸움이 일어나고 말았다. 마침내 이 사실을 알게 된 현종은 평소 공주에게 주었던 물건들을 모두 빼앗고 부마의 관직마저 박탈하였다. 궁궐 내에서 그들의 위치가 공주나 부마보다도 위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양귀비의 품속에서 환락에 빠져 유희와 쾌락에 정신을 잃은 현종에게서 더 이상 지난날 성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현종은 전기에는 두 명의 명재상의 보좌로 '개원성세'를 이루어냈지만, 후기에는 두 명의 간신 이림보와 양국충의 전횡으로 '천보대란'을 맞이하였다. '천보대란'이란 바로 당나라를 쇠망의 길로 이끌고 양귀비를 죽음의 길로 데려간 '안록산의 난'을 말한다.
영주유역의 호인출신인 안록산은 처음에는 변방의 일개 군졸에 불과했으나, 후에는 세 지역을 다스리는 절도사로 승승장구하면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게 되었다. 안록산이 이렇게 세력을 얻게 된 것은 순전히 양귀비 때문이었다.
원래 양국충은 안록산과 연합하여 이림보를 제거하려 하였으나, 이림보가 먼저 죽자 그들 사이에 세력 다툼이 일어났다. 안록산에게 위협을 느낀 양국충은 현종 앞에서 자주 안록산을 비방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안록산은 양국충에게 반감을 가지고 그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현종은 안록산이 반역을 꾀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마다 양귀비가 안록산을 변호해 주어 아무런 손을 쓰지 못했다. 양귀비는 조정의 일마저도 마음대로 주물렀던 것이다.
755년 마침내 안록산은 간신 양국충의 타도를 명분으로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이 소식을 접한 현종은 승상 위견소, 양국충, 양귀비 자매와 소수의 호위병을 거느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장안성 연추문을 벗어나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일행은 마외파에 이르렀으나, 병사들이 현종에게 양국충과 양귀비를 비롯한 양씨 일족들을 모두 죽이기를 강요했다. 결국 양씨 일족들의 목이 잘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양귀비도 어쩔 수 없이 마외역관 앞의 배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결하였다. 이때 양귀비의 나이 38세였다.
양귀비의 죽음에 관해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안록산의 난 때 양귀비가 죽지 않고 일본 상인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가서 30년간을 활동하다가 68세에 죽었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양귀비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그녀의 유물과 사당, 무덤 등이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 <중국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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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0.03.19
  • 저작시기201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9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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