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레신학_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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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18세기 존 웨슬리와 부흥운동
 1. 웨슬리 부흥운동의 전개
  1) 영국의 상황
  2) 부흥운동의 발전과정
 2. 웨슬리 부흥운동의 특징
 3. 웨슬리 신학의 특징
  1) 웨슬리의 구원과 성화

Ⅲ. 19세기 웨슬리안 성결운동
 1. 19세기 성결운동
  1) 만국성경연맹과 기도동맹
  2) 기독교인과 선교사동맹
 2. 19세기 성결운동 신학적 특징 - 심슨의 사중복음
  1) 인간의 죄와 중생
  2) 성화와 믿음
  3) 신유의 신학
  4) 재림

Ⅳ. 웨슬리 신학과 19세기말 성결운동의 동일성과 상이성

Ⅴ. 결론

본문내용

3. 5): 106.
신유에는 웨슬리안적인 성결의 체험이 보다 확장된 외연을 갖는다는 의미가 있다. 신유는 신자의 구원이 단순히 영적인 부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영역까지 하나님께서 지배하심을 체험하는 사건이다. 신유(divine healing)는 신유(faith healing)라는 심리적인 차원의 체험을 넘어선 절대자의 구체적인 간섭을 고백하는 사건이다. 웨슬리안에게 있어 구원의 이상은 성결이요, 성결의 이상은 ‘완전한 성화’였다. 그런데 신자에게 있어 완전성은 단순히 영적, 심리적, 윤리적 영역에서의 변화와 온전함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19세기 성결운동의 현장에는 신자들의 육신의 연약함이 치유되고, 고침 받고, 온전케 되는 신유의 은혜가 체험되었고, 이 구체적인 체험이 신학으로 정착되었다. 서울신학대학교 성결교회신학연구위원회, 『성결교회신학』, 151.
- 재림 -
웨슬리 신학에 있어 재림론은 다음과 같은 입장이었다.
종말에 대한 웨슬레의 견해는 당시 영국 국교회가 지니고 있던 전통적인 교리를 대부분 수용하였다. 또한 그의 신학의 중심과제인 구원론이나 성화론은 근본적으로 종말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저술 가운데 많은 부분에서 죽음, 중간상태,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 심판 그리고 천국과 지옥의 종말론적인 주제를 다루었다. 이현갑, 『기독교 사중복음』 (서울: 도서출판 청파, 1995), 30.
즉 웨슬리신학에서는 동양선교회-한국성결교회 사중교리에 나타난 전천년설이 전체적으로 볼 때 주장되고 있지 않다. 김응조는 후천년설을 성경으로 증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학설에 불과한 이단설로 성결교회는 천 년 전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전천년설의 믿음을 말하고 있다. 김응조, 『성서적 정통신학』 (서울: 성청사, 1996), 329.
이것을 달리 말하자면 한국성결교회의 재림론은 흔히 세대주의라 불리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라 말할 수 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다비(John N. Darby)에 의해 발전되었는데, 그 특생중의 하나는 휴거(rapture)이론이다. 웨슬리신학은 후천년설적 전통에 머무는데 반하여, 한국성결교회는 웨슬리로부터 이탈된 휴거론을 주창한 19세기 산물인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받아들였다. 목창균은 동양선교회-한국성결교회의 재림론 유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성신학정립 편찬위원회, 『예성신학의 이해와 신조 해설』, 68-69.
한국성결교회의 재림론은 심슨이나 만국성결교회 중 한 근원으로부터 유래했다기보다 오히려 그들 모두를 포함한 여러 근원으로부터 유래했다. 동양선교회 창립자들이 전천년설적 재림신앙을 강조하게 된 것은 심슨, 무디성서학원, 만국성결교회의 영향이었다. 한편 한국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 창립자들뿐 아니라 블레스톤과 왓슨의 재림론으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다. 이 근원들을 관통하고 있던 공통적 흐름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었다. 따라서 세대주의는 이들을 통해 성결교 재림론에 유입되었다. 목창균, “성결교회 재림론 연구”, 신덕성결교회, 「신덕교회 창립 70주년 기념 학술 논문집」(1997.4): 67.
이처럼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을 사중복음 중심으로 웨슬리 신학과 19세기 성결부흥운동을 비교하여 보게 되면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은 웨슬리 신학을 일부 계승한 부분도 있으나 많은 부분 웨슬리 신학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성결교회의 중생론과 성결론은 웨슬리의 교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한국성결교회는 19세기 미국 근대 복음주의 성결운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재림론과 신유론에 있어서는 강조점이나 교리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부분이 다른 면이 있다. 그래서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은 성결론의 신학적 맥락에서는 18세기 웨슬리 신학을 계승하고 있으나, 신유론과 재림론에서는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성결론에서도 약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웨슬리는 성화를 성령의 역사라고 보았으나, 성화를 성결세례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결을 오순절의 성령세례와 연관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의 웨슬리의 성화론이 아니라 19세기 북미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결과 김택진, “한국성결교회의 신학 형성과정 연구 - 1961년 분립이후 Wesley 신학과 사중복음의 쟁론을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성결대학교 대학원, 2007), 12-13.
이다.
웨슬리 신학은 중생, 성결을 강조하면서 특히 성결을 강조하였지만 19세기 성결운동에서는 여기에 더 나아가 성령의 불세례, 성령세례를 강조하였다. 또한 이러한 운동 속에서 자연히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면서 특히 신유가 강조되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세기 당시에 자유주의 신학에 기초한 낙관적인 종말론 대신에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낙원-천년왕국을 이루신다는 전천년설을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Ⅴ. 결론
성결교회의 신학이라고 하면 곧 웨슬리의 신학이며 그것이 곧 중생, 성결, 신유, 재림 즉, 사중복음 신학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중복음은 19세기 중엽 이래 성결파 운동에서 주장되었고, 심슨(A. B. Simpson)에 의해서 신학적으로 정리되어 동양선교회 신조에 도입된 것이다. 서울신학대학교, 성결교회신학연구위원회 공저, 『성결교회신학』(서울 : 기독교대한성결교회출판부, 2007), 251.
초기에 웨슬리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하며, 모든 신자는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조종남, 301.
이러한 신학은 당연히 성령운동으로 이어졌고, 이들은 성령의 신령한 은혜와 은사를 증거하며 신유의 복음을 말하게 되었다. 또한 이런 운동은 당시 교회가 말하고 있는 지상천국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확신케 되었다. 성서가 약속하고 있는 천년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믿어 예수님의 재림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후에 일어난 성결-오순절 운동에서 웨슬리가 말하였던 구원과 성령세례뿐만 아니라 신유와 재림까지 네 가지 모두를 강조하게 되었고 이것을 심슨이 사중복음이라고 부른 것이다. 조종남, 301.
따라서 한국 성결교회의 신학적 배경에 있어서의 웨슬리 신학은 사중복음이라기 보다는 중생과 성결의 신학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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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3.31
  • 저작시기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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