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6 군사정변과 박정희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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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5. 16 군사정변과 박정희 정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박정희의 출신
Ⅱ 군사정권의 등장
Ⅲ 한일회담과 베트남 파병
Ⅳ 굴욕외교 반대투쟁과 3선개헌 반대투쟁

본문내용

발휘하여 경제 개발을 담당할 만한 많은 인재를 양성했다. 1960년대로 오면서 6.25의 피해를 딛고 한 단계 높은 경제 건설을 추진할 준비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때문에 4.19 후의 민주당은 7.29 총선거의 공약으로 부정 축재 회수, 특혜와 독점의 배제, 국민 소득의 공정한 분배, 실업자 구제, 농어촌 부흥, 중소기업 육성, 금융의 대중화 등을 내세웠다. 선거 결과 성립된 장면 정권도 총투자액 400억 원 규모의 "국토건설사업"을 계획하는 한편, "중소기업육성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경제 개발 개혁을 세워 자립 경제 수립의 기초를 마련하려 했다. 그러나 극심한 정쟁 때문에 미처 착수하지 못하다가 5.16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경제 개발은 결코 집권자 개인의 능력이나 추진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1950년대 전쟁의 시기를 겪고 1960년대의 우리 사회에 되살아나고 있었던 건설 의욕과 그 가능성에 박정희라는 개인의 추진력 등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의 경제 개발은 특정인 박정희가 아니라도 다른 지휘자에 의해서도 추진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의욕과 능력이, 일본 제국주의 교육을 받은 그 괴뢰 만주군 출신으로서 일본과의 유착에 의한 경제 건설에반 몰두했던 박정희라는 군인 출신 지휘자에 의해 급진적으로 또는 졸속적으로 개발되고 이끌려짐으로써, 점진적 자립 경제 수립의 길이 아닌 급격한 외채 경제 체제 수립의 길로, 또 민주당 정권이 의도했던 중소기업 중심 체제가 아닌 재벌 경제 중심 체제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재벌 중심 경제 체제로 간 결과 정경유착이 고질화되어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자들인 전두환, 노태우 등 두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 비자금을 낳게 했고, 문민 김영삼 정권에 와서도 그 후유증 때문에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되었다. 우리 경제가 언제쯤에나 재벌 중심의 경제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문민 정권까지를 마구 뒤흔든 재벌 경제 체제와 독재 권력 결합의 산물인 정경유착의 원조가 바로 박정희 전대통령이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 참고문헌 +
류승렬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현대』솔 출판 2004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역사』 역사비평사 199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정희시대 연구> 백산서당 200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면. 윤보선. 박정희> 백산서당 2002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3.10.05
  • 저작시기201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4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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