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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론
1.1 연구 배경 및 목적
1.2 논문 구성
2. 본 론
2.1 최서해에 대하여
2.1.1 최서해
2.1.2 최서해 소설의 시대적 배경
2.1.3 최서해 문학과 신경향파 문학
2.1.4 최서해 소설의 문체
2.1.5 최서해의 작품세계
2.2 최서해 소설
2.2.1 전반기 소설
2.2.2 중반기 소설
2.2.3 후반기 소설
2.2.4 탈빈궁계열의 소설
2.3 최서해의 소설 외 작품들
3. 결 론
1.1 연구 배경 및 목적
1.2 논문 구성
2. 본 론
2.1 최서해에 대하여
2.1.1 최서해
2.1.2 최서해 소설의 시대적 배경
2.1.3 최서해 문학과 신경향파 문학
2.1.4 최서해 소설의 문체
2.1.5 최서해의 작품세계
2.2 최서해 소설
2.2.1 전반기 소설
2.2.2 중반기 소설
2.2.3 후반기 소설
2.2.4 탈빈궁계열의 소설
2.3 최서해의 소설 외 작품들
3. 결 론
본문내용
신이 저주하던 부정적인 인간들이 밟아온 길을 택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자신과의 투쟁에서조차 패배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인간의 절대가치인 양심을 저버리는 깊은 파멸을 이루고 있기에 부의 계급을 파괴하고 재물을 쟁취하는 외면적 승리 이면에는 양시의 패배가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유미정, 최서해 작품개공, 1991, p.43-46
<큰물진 뒤>의 윤호는 나약하고 무책임한 성격으로 자기 가족의 비참한 죽음이라는 충격으로 무작정의 살인과 방화, 강도로 세상을 향한 분노를 터뜨렸다. 이것은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기보다 주인공들의 견딜 수 없는 자기분열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홍귀자, 최서해 소설개공, 1993, p.22
4) 의사
1926.2 문예운동에 발표
① 내용과 주제
주인공이 가난한 자에게 자신의 의술을 베풀 수 없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이 애써 마련한 병원에 불을 지르고 모스크바로 떠난다는 내용이다.
② 작품분석
가난한 자와 있는 자의 극단적인 일면을 목격하고 일순간에 감정의 변화를 일으켜 자신의 일을 정리하고 홀연히 떠나기 전 병원에 불을 지르는 것은 이전의 작품에서 보여준 신경향파의 소설의 도식적인 결말구조와 다를 바 없으나 여타의 작품이 피지배자의 시각에서 서술된 반면, 이 작품은 지식인 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객관성을 부여, 있는 자의 입장에 서서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특이한 작품이다.
계층 간의 빈부차를 그 자신의 직업에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 의사는 그가 처한 현실을 ‘감옥’이라고 부른다.
5) 홍염
1927.1 조선문단에 발표. 최서해의 두 번째 창작집 『홍염』에 실림
① 내용과 주제
문서방은 소작농으로, 빚 때문에 중국인 지주 인가에게 딸 용례를 빼앗긴다. 중국인 인가는 용례를 가두어 두고 문서방이 딸을 그리워하여 병이난 아내 때문에 4번이나 인가를 찾아가지만 쫓겨난다. 아내가 딸을 그리워하다가 피를 토하며 죽자 다음날 밤 문서방은 인가의 집에 불을 지르고 도끼로 인가를 찍어 죽이고 딸과 만나게 된다.
- 부당한 지주에 대한 반발과 복수
② 작품분석
최서해는 자평에서 <홍염>을 쓰게 된 동기와 자신의 창작태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의 소설 <홍염>이라는 것이 있다. 그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나의 장모되는 분이 <홍염>에 나오는 ‘달리소’라는 북간도의 궁벽한 산골에서 돌아가셨다. …(중략)…이와 같이 딸이나 사위가 죽을 때에조차 만나보지 못하게 되는 그 눈물겨운 원인이 어디 있느냐. 모두 빈곤때문이었다. 빈곤 때문에 그분은 간도에 가셨고 탈가여식을 만나지도 못하였고 빈곤 때문에 궁사하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어떤 전형을 발견하였다. 궁사하시는 장모를 통하여 일시대적 조선사람들의 전형을 바라보았다. 나의 소설가로의 상상은 이에 비약할 토대를 얻었다. 만일 장모가 딸을 사위에게 탈가시키지 않고 돈 때문에 도박이나 중국인 지주에게 팔아버렸다 하자. 그러면 이 사실은 어떤 결말을 가져오고 말 것인가. 여기에서 도끼를 들고 살인 즉 복수의 길에까지 미칠 것을 나는 보았다. 이 소설은 이리하여 생긴 것이니 사실3공상7 이라 할 것이다. 곽근편, 『최서해 작품 자료집』, 국학자료원, 1997, p.19-20
위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궁사한 장모는 조선 사람들의 전형이다. 따라서 장모의 죽음은 그로 하여금 당시 사회제도의 모순을 이야기하게 하고 있다. 빈곤으로 인한 인신매매가 비일비재하던 당시 사회현상을 최서해는 받아들이기 거부했다.
또한 이 작품은 장모의 죽음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결말의 극단적인 살인과 방화행위는 그의 ‘공상’ 속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공상은 그의 가치관과 인식체계속에서 나온 것이다. 사회적 모순은 인식하지만 그들을 계급적 자각으로 이끌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속에서 자각되지 않은 민중이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복수는 살인과 방화와 같은 감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최서해느 억압받는 자들의 정당한 투쟁으로 보고 있다. 그는 <홍염>을 통해 그러한 인식을 구체화하고 있다.
‘작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 라는 문서방의 심정은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집약해내고 있다. 이 묘사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자기 자신의 무기력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문서방이 실행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커다란 힘에 대한 자각보다도 자기의 힘을 스스로 부정했었다는 바로 거기에 커다란 의의가 있음을 최서해는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 역시 자포자기 상태에서의 충동적 행위는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문제가 남는다. 그의 이러한 현실대응 방식은 <홍염>이전이나 이후 작품에서도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도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가 전망의 제시를 하지 못한 것은 그의 ‘빈궁문학’이 목적의식적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그는 이시기 박영희의 권유로 카프에 가입했으나 29년 탈퇴를 한다. 그가 국내외로 가난하고 궁핍했던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다 보니 최서해를 프로작가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는 분명히 자신이 프로 작가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자기는 작가이지 결코 프로 작가가 아니다. 자기의 경험은 방랑과 빈인뿐이었으나 자기의 작품주제가 그 방면으로 될 것은 무론이나 자기는 결코 프로작가라는 의식 아래서 창작하지 않는다” 김동인, 『춘원연구』, 춘조사, 1959, p198.
따라서 그의 작품이 프로 문학과는 대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망의 부재와 개인적 복수차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사회현실에 대한 인식이 사회현상과 이론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가난의 경험 속에서 체득한 자연 발생적인 것으로 사상적 기반이 없다는 데 있다. 둘째, 그가 지향했던 항일무장투쟁 운동의 계열(광정단)이 민족주의 계열로써 집단투쟁보다 저격이나 폭파 등의 테러활동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 셋째, “세상에는 나 밖에 믿을 놈이 없다” 최서해, 「전아사」,《동광》, 1927.1, p42.
는 <전아사>의 ‘나’의
<큰물진 뒤>의 윤호는 나약하고 무책임한 성격으로 자기 가족의 비참한 죽음이라는 충격으로 무작정의 살인과 방화, 강도로 세상을 향한 분노를 터뜨렸다. 이것은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기보다 주인공들의 견딜 수 없는 자기분열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홍귀자, 최서해 소설개공, 1993, p.22
4) 의사
1926.2 문예운동에 발표
① 내용과 주제
주인공이 가난한 자에게 자신의 의술을 베풀 수 없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이 애써 마련한 병원에 불을 지르고 모스크바로 떠난다는 내용이다.
② 작품분석
가난한 자와 있는 자의 극단적인 일면을 목격하고 일순간에 감정의 변화를 일으켜 자신의 일을 정리하고 홀연히 떠나기 전 병원에 불을 지르는 것은 이전의 작품에서 보여준 신경향파의 소설의 도식적인 결말구조와 다를 바 없으나 여타의 작품이 피지배자의 시각에서 서술된 반면, 이 작품은 지식인 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객관성을 부여, 있는 자의 입장에 서서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특이한 작품이다.
계층 간의 빈부차를 그 자신의 직업에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 의사는 그가 처한 현실을 ‘감옥’이라고 부른다.
5) 홍염
1927.1 조선문단에 발표. 최서해의 두 번째 창작집 『홍염』에 실림
① 내용과 주제
문서방은 소작농으로, 빚 때문에 중국인 지주 인가에게 딸 용례를 빼앗긴다. 중국인 인가는 용례를 가두어 두고 문서방이 딸을 그리워하여 병이난 아내 때문에 4번이나 인가를 찾아가지만 쫓겨난다. 아내가 딸을 그리워하다가 피를 토하며 죽자 다음날 밤 문서방은 인가의 집에 불을 지르고 도끼로 인가를 찍어 죽이고 딸과 만나게 된다.
- 부당한 지주에 대한 반발과 복수
② 작품분석
최서해는 자평에서 <홍염>을 쓰게 된 동기와 자신의 창작태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의 소설 <홍염>이라는 것이 있다. 그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나의 장모되는 분이 <홍염>에 나오는 ‘달리소’라는 북간도의 궁벽한 산골에서 돌아가셨다. …(중략)…이와 같이 딸이나 사위가 죽을 때에조차 만나보지 못하게 되는 그 눈물겨운 원인이 어디 있느냐. 모두 빈곤때문이었다. 빈곤 때문에 그분은 간도에 가셨고 탈가여식을 만나지도 못하였고 빈곤 때문에 궁사하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어떤 전형을 발견하였다. 궁사하시는 장모를 통하여 일시대적 조선사람들의 전형을 바라보았다. 나의 소설가로의 상상은 이에 비약할 토대를 얻었다. 만일 장모가 딸을 사위에게 탈가시키지 않고 돈 때문에 도박이나 중국인 지주에게 팔아버렸다 하자. 그러면 이 사실은 어떤 결말을 가져오고 말 것인가. 여기에서 도끼를 들고 살인 즉 복수의 길에까지 미칠 것을 나는 보았다. 이 소설은 이리하여 생긴 것이니 사실3공상7 이라 할 것이다. 곽근편, 『최서해 작품 자료집』, 국학자료원, 1997, p.19-20
위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궁사한 장모는 조선 사람들의 전형이다. 따라서 장모의 죽음은 그로 하여금 당시 사회제도의 모순을 이야기하게 하고 있다. 빈곤으로 인한 인신매매가 비일비재하던 당시 사회현상을 최서해는 받아들이기 거부했다.
또한 이 작품은 장모의 죽음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결말의 극단적인 살인과 방화행위는 그의 ‘공상’ 속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공상은 그의 가치관과 인식체계속에서 나온 것이다. 사회적 모순은 인식하지만 그들을 계급적 자각으로 이끌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속에서 자각되지 않은 민중이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복수는 살인과 방화와 같은 감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최서해느 억압받는 자들의 정당한 투쟁으로 보고 있다. 그는 <홍염>을 통해 그러한 인식을 구체화하고 있다.
‘작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 라는 문서방의 심정은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집약해내고 있다. 이 묘사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자기 자신의 무기력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문서방이 실행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커다란 힘에 대한 자각보다도 자기의 힘을 스스로 부정했었다는 바로 거기에 커다란 의의가 있음을 최서해는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 역시 자포자기 상태에서의 충동적 행위는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문제가 남는다. 그의 이러한 현실대응 방식은 <홍염>이전이나 이후 작품에서도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도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가 전망의 제시를 하지 못한 것은 그의 ‘빈궁문학’이 목적의식적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그는 이시기 박영희의 권유로 카프에 가입했으나 29년 탈퇴를 한다. 그가 국내외로 가난하고 궁핍했던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다 보니 최서해를 프로작가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는 분명히 자신이 프로 작가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자기는 작가이지 결코 프로 작가가 아니다. 자기의 경험은 방랑과 빈인뿐이었으나 자기의 작품주제가 그 방면으로 될 것은 무론이나 자기는 결코 프로작가라는 의식 아래서 창작하지 않는다” 김동인, 『춘원연구』, 춘조사, 1959, p198.
따라서 그의 작품이 프로 문학과는 대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망의 부재와 개인적 복수차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사회현실에 대한 인식이 사회현상과 이론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가난의 경험 속에서 체득한 자연 발생적인 것으로 사상적 기반이 없다는 데 있다. 둘째, 그가 지향했던 항일무장투쟁 운동의 계열(광정단)이 민족주의 계열로써 집단투쟁보다 저격이나 폭파 등의 테러활동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 셋째, “세상에는 나 밖에 믿을 놈이 없다” 최서해, 「전아사」,《동광》, 1927.1, p42.
는 <전아사>의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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