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사람, 존 번연 (존 버니언 / John Bun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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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난의 사람, 존 번연 (존 버니언 / John Bunyan)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목차……………………………………………………………………………………2



들어가는 말 …………………………………………………………………………3



본론


존 번연의 회심………………………………………………………………………4


존 번연의 설교………………………………………………………………………6


존 번연의 작품………………………………………………………………………8


존 번연의 죽음………………………………………………………………………10



결론……………………………………………………………………………………12


참고도서………………………………………………………………………………13

본문내용

고 싶으면 어머니에게로 간다. 하나님의 자녀들고 그리할 것이다. 마귀가 너희를 유혹하거든 하늘 아버지께로 달려 가 그 사연을 여쭈어라. 그것이 자녀들의 당연한 일이다. …… 만일 왕의 자녀들이 되려면 왕의 자녀들처럼 살라. 류형기 역, 『기독교 양서선 21. 요한 번연』 (서울: 한국기독교문화원, 1978), p. 119

번연이 강단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장차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평안히 보려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라는 말이었다. 존 파이퍼, 이용중 역, 『존 파이퍼의 영적 거장 특강 시리즈2 고난의 영웅들』(서울: 부흥과 개혁사, 2008), p. 70
설교 후 화요일부터 번연은 10일간의 고열이 계속되었다. 12일 후인 1688년 8월 31일 금요일 고요한 밤, 존 번연의 침상 주위에 친구들이 달려왔다. 잡화상인 존 스트러드윅과 레드크로스가의 집회소 목사인 조지 코카인과 찰스도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도 그의 침상을 지켰다. 하루길 밖에 있는 부인을 데려 오지 않은 것이 의아하나 아마 번연의 아내와 자식들이 번연의 병세를 알았을 때 이미 때가 늦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일생의 대부분 가정의 평안함을 누리지 못했던 번연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가족들의 위로를 받지 못했다.
번연은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곁에서 무릎을 꾼 친구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고 원하는 것이 있느냐, 무엇을 도와 드릴 것이 없겠느냐고 묻는 이들을 향해 “형제들이여,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며 숨은 만나와 생명수를 마시는 것 밖에는 원하는 것이 없으니 그것이 제일 좋은 일이요.”라고 답했다. 그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있을 수 있는 것 이상의 아무 욕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당신께로 가오니 나를 받으소서!”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류형기 역, 『기독교 양서선 21. 요한 번연』 (서울: 한국기독교문화원, 1978), p. 120존 브라운, 나길동 역, 『위인문고 죤. 번연의 생애』 (대구: 보문출판사, 1979), p. 209
9월 3일, 번연은 ‘시티 로드’에 있는 비국교도 묘지 Campo Santo에 장사되었다. 그 곳은 존 번연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구인 존 오웬이 묻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번연의 묘비에는 존 번연(John Bunyan) / 천로 역정 저자(Author of Pilgrims Progress) / 1688년 8/31 사망(Obt. 31 Aug. 1668) / 향년 60세(Aet 60)라고 기록되어 있다.
존 번연이 눈을 감을 뒤 그가 남긴 총 재산은 42파운드 19실링이었다. 이것은 땜장이들이 유산으로 남기는 평균적인 금액보다는 많은 액수이지만 『천로역정』의 저자인 번연의 유산으로는 턱 없이 부족해 보인다. 이러한 것으로 살펴보았을 때에 우리는 『천로역정』에서 나온 대부분의 이익금이 『천로역정』의 해적판을 찍어낸 출판업자들에게 돌아갔음을 알 수 있다.
번연은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집안에서 가난하게 자라났고, 『천로역정』이라는 어마어마한 작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단 한 번도 재산을 모은 적이 없었다.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번연은 죄의 무서움을 알고 인간을 죄에서 구출하려고 힘쓴 위대한 전도자였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앙 경험을 훌륭하게 표현해 낸 위대한 저술가이기도 했다. 비록 그는 정규교육이나 체계화 된 신학공부를 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마련하신 ‘고난의 학교’에서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성공적인 전도와 저술의 길을 닦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결론
우리는 존 번연의 생애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의 고난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는 어린 시절 사랑하는 어머니와 여동생 잃고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재혼 하는 아버지를 바라보아야 했다. 슬픔에 차 군대에 징집당해야 했고, 결혼을 해서는 앞을 못 보는 딸을 낳았다. 결혼 초 그의 영적상태는 엉망이었고, 위에서는 거론하지 않았지만 첫 아내는 어린 네 자녀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후에 재혼한 아내 엘리자베스는 매우 훌륭한 여성이었으나 번연은 12년의 감옥 생활을 겪었다. 삶은 어려웠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앞을 보지 못하는 딸 메리는 구두 수선을 해야 했다. 심지어 죽을 때조차 번연은 가족들의 위로를 받지 못하였다. 그는 가족들과 떨어진 곳에서 병으로 괴로워했다. 그 외에도 평생 그가 청교도로 살아가면서 겪었을 목회 사역과 논쟁과 비판에서 비롯된 온갖 중압감과 결혼 생활의 힘듦, 자녀양육, 그리고 감옥생활, 그리고 그에 따른 병마에 대한 고통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나 번연의 고난의 열매는 풍성했다. 번연은 고난으로 말미암아 고난 받는 이들을 위한 글을 쓸 수 있었다. 그의 저서는 오늘날까지도 훌륭한 유산으로 손꼽힌다. 고난의 냄새가 짙게 밴 책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에게 천 마디 위로와 만 마디 격려보다 더 위대한 효과를 낸다. 다음으로 번연은 성도들을 섬겼다. 그는 넘치는 사랑으로 어느 곳에서든지 성도들을 섬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평생 베드포드를 떠나지 않았다. 고난 받는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했으며 말씀을 전한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서도 감옥에 갇힌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다. 당시 고난 중에 있던 많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더한 고난 속에서도 자신들을 섬기며 말씀을 전한 번연의 삶은 큰 위로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번연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일생은 고난이다. 삶의 조각조각 마다 고통이 흠뻑 베여있으며, 삶의 모든 페이지가 눈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그는 회심 이후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욕되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책 『천로역정』에서 나온 크리스천과 같이 천성을 향한 갈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멸망의 도시를 떠날 수 있었다. 십자가 언덕의 자유로 고난의 산을 넘을 수 있었다. 전신갑주로 아볼루온과의 결투에서 승리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건널 수 있었다. 허영의 시장의 억울한 재판도, 재물 노인의 유혹도 이겼고, 절망 거인에게서도 탈출했다. 속이는 자의 꾐도 속히 이겨냈으며,

키워드

존번연,   천로역정,   청교도,   신학,   고난,   총신대,   번연,   오웬,   존 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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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5.29
  • 저작시기2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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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20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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