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신화(建國神話)와 지배의 정당화> 건국신화의 정치적 함의, 제천의식,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삼한의 기풍제와 추수감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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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건국신화(建國神話)와 지배의 정당화> 건국신화의 정치적 함의, 제천의식,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삼한의 기풍제와 추수감사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건국신화의 정치적 함의
2. 제천의식
 1) 부여의 영고
 2) 고구려의 동맹
 3) 동예의 무천
 4) 삼한의 기풍제와 추수감사제

본문내용

등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전해 주고 있으며, “요컨대 단군신화는 청동기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고조선의 건국과 함께 성립한 것이며, 따라서 고조선의 건국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신화”인 것이다. 이기백이기동, 앞의 책, 44쪽. 그리고 단군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서는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단군: 그 이해와 자료(서울대출판부, 1994)를 참조할 수 있다.
그러한 신화 속에는 아득히 먼 시점에서 고조선 성립에 이르기까지 각각 그 기원을 달리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거의 다 담겨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하늘’(天)에 다름 아니다. 삼국유사는 그에 대해 이렇게 전해 주고 있다: “고기(古記)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하여 구했다. 아버지[환인]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여, 이에 아들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그곳에] 가서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白山) 정상[태백은 곧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이르고 그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으로 불렀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을 맡아서 관장하고 인간 세상에 관한 360여 가지 일을 관장하면서 세상에 머물러 다스리며 교화했다.” 三國遺事 紀異篇 古朝鮮條.
하늘(天)은 우주만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애니미즘(animism)의 일환, 아니 그 최고봉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늘은 ‘태양’보다 훨씬 더 진보한 사유체계에서 볼 수 있다. 자신의 지배와 통치를 정당화합리화하기 위해 ‘하늘의 아들’ 혹은 ‘하늘이 보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김석근, 앞의 글(2002a)에서 자세하게 다룬 바 있다.
그 모티브는 그후의 건국설화에서 거의 예외 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고구려를 건국하게 되는 주몽 역시 자신을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라 했다. 그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는 신기하다. 주몽의 어머니 유화 부인에 의하면, “나는 하백(河伯)의 딸이고, 이름은 유화(柳花)이다. 여러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 놀았는데, 때마침 한 남자가 자칭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하면서 나를 웅심산(熊心山) 아래 압록강 가에 있는 집으로 유인해 사욕을 채우고, 그 길로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의 부모는 내가 중매도 없이 남자와 관계한 것을 꾸짖고, 마침내 우발수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했다”고 한다. 그녀를 데려온 부여왕 “금와가 이상하게 생각해 그녀를 방에 가두었는데, 그녀에게 햇빛이 비쳤고, 그녀가 몸을 피하면 햇빛이 또한 그녀를 따라가면서 비쳤다. 그로 인해 태기가 있어 다섯 되 들이만한 큰 알을 낳았다. 왕이 그 알을 버려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으며, 다시 길 가운데 버렸으나 소와 말이 피하고 밟지 않았다. 나중에는 들에 버렸으나 새가 날개로 그것을 덮어 주었다. 왕이 그것을 쪼개려 했으나 깨뜨릴 수가 없었으므로 마침내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그 어머니가 그것을 감싸서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왔다. 그의 골격과 외모가 뛰어났다. 그의 나이 7세에 보통 사람과 크게 달라서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 속담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했기 때문에 이로써 이름을 지었다 한다.” 三國史記 高句麗本紀 東明聖王條.
한참 훗날의 일이지만 ‘고대국가’로 웅비하게 되는 고구려의 경우, 실은 연맹왕국 부여의 영향권하에서 성장해 이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넌지시 말해 주고 있다. 실은 부여왕 금와 역시 예사롭지 않은 출생담을 가지고 있다. “부여왕 해부루(解夫婁)가 늙을 때까지 아들이 없었다. 그는 산천에 제사를 드려 아들 낳기를 기원했다. 하루는 그가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렀는데, 말이 그곳의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기고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려보니, 금빛 개구리[와(蛙)는 와(蝸)라고도 한다]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이 아이가 바로 하늘이 나에게 주신 아들이구나!”라고 말하고, 그를 데려와 기르며 금와(金蛙)라고 이름 지었다.” 三國史記 高句麗本紀 東明聖王條.
어쨌든 주몽은 금와의 일곱 아들, 특히 큰 아들 대소(帶素)의 견제와 핍박을 피해 도망가게 되고, 군사들이 그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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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6.30
  • 저작시기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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