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 본론
Ⅰ. 율곡의 생애 및 그의 학파에 대하여
1. 율곡의 생애
2. 율곡과 우계의 논쟁
3. 율곡의 학파(율곡학)와 계승
Ⅱ. 율곡의 철학과 사상
1. 율곡의 주요 철학이론
2. 율곡의 주요 사상
☺ 결론
★ 참고 문헌
☺ 본론
Ⅰ. 율곡의 생애 및 그의 학파에 대하여
1. 율곡의 생애
2. 율곡과 우계의 논쟁
3. 율곡의 학파(율곡학)와 계승
Ⅱ. 율곡의 철학과 사상
1. 율곡의 주요 철학이론
2. 율곡의 주요 사상
☺ 결론
★ 참고 문헌
본문내용
되어 또 다시 유배되며, 1671년 보길도 부용동 낙서재에서 85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④ 송준길宋浚吉(1606~1672)
조선 17세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며 예학자로서 기호 유학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그는 이이, 김장생, 김집의 학문을 계승하였으며, 문하에는 민유중, 송규렴, 황세정, 남구만 등이 있었다. 그는 학문뿐만 아니라 인품도 훌륭하여 중망의 대상이었다. 그와 동문수학을 했고 동족으로 평생을 함께했던 송시열에 따르면, 그의 성품은 비록 너그롭고 온화하지만 악을 미워하기를 원수와 같이 하였다고 한다. 남이 혹 잘못이 있으면 크게 책망하고 거듭 훈계하여 성의를 다 하였고, 그 사람이 잘못을 고치면 또 칭찬하고 장려하여 용서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여 사람들이 모두 감복했다고 한다.
⑤ 송시열宋時烈(1607~1689)
기호 유학 내지 율곡학파의 적통으로서 17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며 경세가였다. 16세기가 조선 성리학의 융성기였다면 17세기는 새로운 역사적 현실 앞에 철학도 새로운 모습으로 전개되는 변화의 시기였다. 병자호란, 정묘호란이라는 외환과 함께 광해군의 폭정, 인조반정, 이괄의 난, 당쟁, 가뭄과 질병 등 내우가 겹친 위기의 시대에서 유학도 인물성동이론, 예학, 의리학, 양명학, 실학 등 다양한 모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송시열은 이러한 격동기의 한복판에서 역사의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맞아 당대 지성인의 역사적 사명에 충실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⑥ 이유태李惟泰(1607~1684)
17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김장생 문하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는 송준길, 송시열, 윤선거, 유계 등과 친밀하게 지냈는데, 특히 송준길, 송시열과는 연산에서 학문적 동지의 맹약을 하고 성현이 되기를 기약했으며 잘못이 있으면 서로 고쳐주고 좋은 일은 서로 권장하였다. 이들 세 사람은 학문적 동지로서 생사를 함께하고 혈육처럼 지내어, 김집도 이들을 가리켜 ‘세 사람은 한 몸이면서 다른 사람’이라 일컬었다. 그에 대한 김장생이나 김집의 기대와 신망 또한 매우 두터웠으며, 어떤 면에 있어서는 송준길이나 송시열보다 높이 평가되기도 했다.
⑦ 조성기趙聖期(1638~1689)
17세기 조선의 뛰어난 유학자로서 기호학파에 속하면서도 스승 없이 독학으로 자득하였다. 그는 매우 박학하여 섭렵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많은 독서를 하였고, 30년 공부의 근본이 사색이라 할 만큼 깊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체득했다고 한다.
⑧ 전우田愚(1841~1922)
한말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중의 한 명으로서 임헌회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서세동점과 일제침략 앞에서도 꿋꿋이 성리 연구에 전념하였던 그는 급격한 변화와 근원적인 동요 속에서도 전통 도학의 정통을 확고한 신념으로 재확인하고 엄격한 순수성을 추구하던 학자였다. 그는 이이를 동방의 공자로, 송시열을 동방의 주자로 칭송하며 이이, 송시열의 학문적 계승을 목표로 하였고, 이들의 성리학에 근거하여 자기 철학의 체계를 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Ⅱ. 율곡의 철학과 사상
1. 율곡의 주요 철학이론
① 이기지묘理氣之妙
이기지묘란 리와 기가 오묘하게 합해 있다는 말로, 이기묘합과 같은 말이다. 율곡이 처음 사용한 말은 아니고, 이미 중국 당나라 아부구 공이 풍수지리를 설명하는 가운데 썼으며, 조선조 초에 정여창, 조광조, 송기수, 서경덕 등이 간헐적으로 사용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기지묘를 자신의 철학 핵심으로 삼고 이를 철학 체계로 삼은 이는 율곡이다. 율곡은 이 세계의 만사만물은 모두 리와 기가 오묘하게 합해 있다고 보았다. 형이상자와 형이하자가 하나의 존재양태라는 말이다. 특히 율곡은 리와 기가 어느 시간적 계기로 합해진 것이 아니라, 본래 합한 상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리와 기는 시간의 선후가 없고 공간의 간극도 없다는 것이다. 리는 형이상자고 기는 형이하자로 서로 다른 둘이지만, 하나의 양상으로 존재한다. 바꿔 말하면 하나의 존재양상으로 있지만 그 속에서는 리고 기는 기로서 구별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논리를 그는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라고 불렀다. 존재 자체로 보면 리와 기는 구별할 수 없는 하나지만, 그것을 개념이나 가치로 나누어 보면 리와 기는 엄연히 구별된다는 것이다. 율곡은 이러한 존재의 오묘한 비밀을 통찰한 것이다.
② 기발이승氣發理乘
‘발(작용)하는 기 위에 리가 올라타 있는 존재 자체’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은 본래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 논변에서 퇴계가 만년 정론으로 내
④ 송준길宋浚吉(1606~1672)
조선 17세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며 예학자로서 기호 유학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그는 이이, 김장생, 김집의 학문을 계승하였으며, 문하에는 민유중, 송규렴, 황세정, 남구만 등이 있었다. 그는 학문뿐만 아니라 인품도 훌륭하여 중망의 대상이었다. 그와 동문수학을 했고 동족으로 평생을 함께했던 송시열에 따르면, 그의 성품은 비록 너그롭고 온화하지만 악을 미워하기를 원수와 같이 하였다고 한다. 남이 혹 잘못이 있으면 크게 책망하고 거듭 훈계하여 성의를 다 하였고, 그 사람이 잘못을 고치면 또 칭찬하고 장려하여 용서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여 사람들이 모두 감복했다고 한다.
⑤ 송시열宋時烈(1607~1689)
기호 유학 내지 율곡학파의 적통으로서 17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며 경세가였다. 16세기가 조선 성리학의 융성기였다면 17세기는 새로운 역사적 현실 앞에 철학도 새로운 모습으로 전개되는 변화의 시기였다. 병자호란, 정묘호란이라는 외환과 함께 광해군의 폭정, 인조반정, 이괄의 난, 당쟁, 가뭄과 질병 등 내우가 겹친 위기의 시대에서 유학도 인물성동이론, 예학, 의리학, 양명학, 실학 등 다양한 모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송시열은 이러한 격동기의 한복판에서 역사의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맞아 당대 지성인의 역사적 사명에 충실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⑥ 이유태李惟泰(1607~1684)
17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김장생 문하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는 송준길, 송시열, 윤선거, 유계 등과 친밀하게 지냈는데, 특히 송준길, 송시열과는 연산에서 학문적 동지의 맹약을 하고 성현이 되기를 기약했으며 잘못이 있으면 서로 고쳐주고 좋은 일은 서로 권장하였다. 이들 세 사람은 학문적 동지로서 생사를 함께하고 혈육처럼 지내어, 김집도 이들을 가리켜 ‘세 사람은 한 몸이면서 다른 사람’이라 일컬었다. 그에 대한 김장생이나 김집의 기대와 신망 또한 매우 두터웠으며, 어떤 면에 있어서는 송준길이나 송시열보다 높이 평가되기도 했다.
⑦ 조성기趙聖期(1638~1689)
17세기 조선의 뛰어난 유학자로서 기호학파에 속하면서도 스승 없이 독학으로 자득하였다. 그는 매우 박학하여 섭렵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많은 독서를 하였고, 30년 공부의 근본이 사색이라 할 만큼 깊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체득했다고 한다.
⑧ 전우田愚(1841~1922)
한말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중의 한 명으로서 임헌회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서세동점과 일제침략 앞에서도 꿋꿋이 성리 연구에 전념하였던 그는 급격한 변화와 근원적인 동요 속에서도 전통 도학의 정통을 확고한 신념으로 재확인하고 엄격한 순수성을 추구하던 학자였다. 그는 이이를 동방의 공자로, 송시열을 동방의 주자로 칭송하며 이이, 송시열의 학문적 계승을 목표로 하였고, 이들의 성리학에 근거하여 자기 철학의 체계를 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Ⅱ. 율곡의 철학과 사상
1. 율곡의 주요 철학이론
① 이기지묘理氣之妙
이기지묘란 리와 기가 오묘하게 합해 있다는 말로, 이기묘합과 같은 말이다. 율곡이 처음 사용한 말은 아니고, 이미 중국 당나라 아부구 공이 풍수지리를 설명하는 가운데 썼으며, 조선조 초에 정여창, 조광조, 송기수, 서경덕 등이 간헐적으로 사용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기지묘를 자신의 철학 핵심으로 삼고 이를 철학 체계로 삼은 이는 율곡이다. 율곡은 이 세계의 만사만물은 모두 리와 기가 오묘하게 합해 있다고 보았다. 형이상자와 형이하자가 하나의 존재양태라는 말이다. 특히 율곡은 리와 기가 어느 시간적 계기로 합해진 것이 아니라, 본래 합한 상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리와 기는 시간의 선후가 없고 공간의 간극도 없다는 것이다. 리는 형이상자고 기는 형이하자로 서로 다른 둘이지만, 하나의 양상으로 존재한다. 바꿔 말하면 하나의 존재양상으로 있지만 그 속에서는 리고 기는 기로서 구별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논리를 그는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라고 불렀다. 존재 자체로 보면 리와 기는 구별할 수 없는 하나지만, 그것을 개념이나 가치로 나누어 보면 리와 기는 엄연히 구별된다는 것이다. 율곡은 이러한 존재의 오묘한 비밀을 통찰한 것이다.
② 기발이승氣發理乘
‘발(작용)하는 기 위에 리가 올라타 있는 존재 자체’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은 본래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 논변에서 퇴계가 만년 정론으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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