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영화시대의 개막
2. 유성 영화의 등장
3. 영화의 전성시대
※ 인물 소개
4. 네오리얼리즘 영화
5. 시네 노보
※ 영화들여다 보기 ;<IL POSTINO>, <Como agua para chocolate>, <Evita>/<Eva peron>
6. 1970년대 중남미 영화
7. 1980-90년대 중남미 영화
※ 90년대 쿠바 영화계를 되살려낸 문제작 '딸기와 초콜릿'
2. 유성 영화의 등장
3. 영화의 전성시대
※ 인물 소개
4. 네오리얼리즘 영화
5. 시네 노보
※ 영화들여다 보기 ;<IL POSTINO>, <Como agua para chocolate>, <Evita>/<Eva peron>
6. 1970년대 중남미 영화
7. 1980-90년대 중남미 영화
※ 90년대 쿠바 영화계를 되살려낸 문제작 '딸기와 초콜릿'
본문내용
에바 페론은 라틴아메리카 여성의 대표적인 ‘교양소설’의 전범이다. 페인만은 또한 에비타의 감정 세계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녀의 열정은 두개로 요약됩니다. 첫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반대세력의 입을 잠재우는 것이었습니다.”이런 두 가지 감정에 근거해 이 영화는 많은 사실을 보여준다.
앨런파커의 영화는 에바페론을 너무 인물 중심으로 다룸으로써 그녀의 신화를 등한시한다. 반면에 데산소 감독의 영화는 오로지 에비타의 신화를 합리화하는데 모든 정열을 바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에바 페론이 아르헨티나 정치의 선도적인 인물이 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녀는 사회주의자들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의 참정권을 획득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오래 전부터 참정권을 요구했으면서도, 그들의 적이 그런 것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처음으로 여섯 명의 여성 의원을 배출했다. 그리고 연금, 유급휴가제를 마련했으며 자선기관을 사회복지기관으로 전환하고 수없이 많은 공립학교를 창설했고, 병원과 양로원을 세웠다. 이런 모든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행해졌던 그녀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흔들리는 칠레의 모든 기억:다시 민중에게 권력을! - 제3세계 영화,<칠레전투>와의 토론
▶모네다궁 폭격 이후, 칠레의 30년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저는, 노동자 여러분께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역사적 전환점에서 민중의 신뢰에 목숨으로 보답하겠습니다......그들은 힘이 있고 나를 부술 수도 있지만 사회의 전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칠레 만세,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1973.9.11살바도르 아옌데」
1973년 9월 11일,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끈 민중 연합정부의 이른바 “사회주의 혁명의 새로운 길”은 기독교미주당과 파시스트 그룹 등의 반혁명 연합이 지지하는 피노체트의 군부쿠데타로 3년의 짧지만 혁명적인 시대의 좌절로 이어지게 된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73년 쿠데타 이후 1990년 까지 17년간 집권하고 1998년 초까지 군 총사령관으로 있다가 1998년 10월에야 비로소 납치와 고문과 학살 드의 혐의로 영국에서 체포되게 된다. 체포 당시 피노체트와 오랜 우정을 나눴던 마거릿 대처는 그를 석방하라고 망령을 부렸다는 얘기도 있고, 피노체트가 예전에 박정희를 흠모한 나머지 박정희가 죽었을 때 조기를 게양하고 조문사절단을 파견하려 했다고도한다. 독재자들간에고 모종의 연대가 필요한 것일 게다.
피노체트가 체포되고 지난 30여년의 역사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이루어지면서 2001년 1월 8일, 피노체트의 군부독재시절에 반체제 인사 520명이 바다에 수자오디거나 산 속에 버려졌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공개된바있다. 그러나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와 뒤이은 오랜 군부독재가 저지른 만행은 저와 같은 ‘학살’만이 아니다. 군부 쿠데타는 “칠레 민중의 사회주의 적 정부에 대한 지지와 열망”, 즉 민중 스스로의 지배가 가능하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각과 행동을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짓밟은 것이다. 외형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1990년대 들어와 우리나라의 ‘문민’정부 때와 같이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고는 하지만, 인권문제나 실제 민중들의 삶은 크게 나아진 것도 없어 대다수의 민중들은 아직도 첼레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 여러모로 칠레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어쨌든 칠레에서의 민주주의의 회복과 반독재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짓밟혔으되 결코 꺾여 스러질 생명은 아닌 것이다.
▶이론이자 실천으로서의 다큐멘터리:<칠레전투>
사회변혁과 정치적 인식의 제고를 위한 핵심적 도구로서 다큐멘터리를 포용해온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은 <칠레전투>를 통해 새로운 질적 도약을 맞게 된다. 민중연합 정부의 마지막 해인 1973년 2월부터 촬영이 시작될때, 이미 구즈만과 ‘세번째해집단’은 이 영화를 선동적이고 전투적인 영화가 아니라 분석적인 영화로 기획하였다. 그 직전, 1972년 12월에 모인 그들은 당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건들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이라는 점에 모두가 동의하였다.
<칠레전투>를 포함하여 민중연합정부 시기 동안 10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들이 제작되었고 국가경제를 장악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투쟁, 사회정치적 개혁의 필요성, 천연자원 보존의 필요성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대부분이 당면한 정치적 유용성을 재현하였다. 수사나 픽의 평가에 따르면, <칠레전투>를 비롯한 이 시기의 영화들은 칠레의 다큐멘터리 운동이 다큐멘터리를 현실에 대한 기억이나 관찰로서 간주하는 사고를 극복하고, 분석적인 역사적 도구로서 실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칠레전투>가 그러한 분석적인 역사적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은 그 촬영방식에서 잘드러난다. 전투적 중남미 영화운동의 여느 영화들, 예를 들어 페르난도 솔라나스와 옥타비오 게티노의 <불타는 시간>에서 볼 수 있는 몽타주가 아니라, 가능한 길게 찍기 형식이 <칠레전투>에서는 주요한 표현기법으로 사용된다. 로페즈는 여갓적 사건들을 재현해내기 위한 독특한 다큐멘터리 전략으로 구즈만과 그 집단이 사용한 길게 찍기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시퀀스 숏은 영화와 영화 제작자들, 그리고 관객 사이의 전통적인 관계를 바꾸어놓는 것이다. 서사-극영화에서의 시퀀스 숏은 으레 이미지의 진실성과 간접적인 설득력을 증대시키는데, 다큐멘터리에서 이러한 촬영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다큐멘터리란 형태로 이미 확증된 사실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기록을 픽션의 영역에 가깝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억압된 과거의 미래
<칠레전투>는 민중연합정부르 거쳐 진정 민주적으로 구성될 혁명정부를 맞이한 칠레 민중들이 그 투쟁의 과정에 완성한
앨런파커의 영화는 에바페론을 너무 인물 중심으로 다룸으로써 그녀의 신화를 등한시한다. 반면에 데산소 감독의 영화는 오로지 에비타의 신화를 합리화하는데 모든 정열을 바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에바 페론이 아르헨티나 정치의 선도적인 인물이 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녀는 사회주의자들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의 참정권을 획득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오래 전부터 참정권을 요구했으면서도, 그들의 적이 그런 것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처음으로 여섯 명의 여성 의원을 배출했다. 그리고 연금, 유급휴가제를 마련했으며 자선기관을 사회복지기관으로 전환하고 수없이 많은 공립학교를 창설했고, 병원과 양로원을 세웠다. 이런 모든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행해졌던 그녀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흔들리는 칠레의 모든 기억:다시 민중에게 권력을! - 제3세계 영화,<칠레전투>와의 토론
▶모네다궁 폭격 이후, 칠레의 30년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저는, 노동자 여러분께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역사적 전환점에서 민중의 신뢰에 목숨으로 보답하겠습니다......그들은 힘이 있고 나를 부술 수도 있지만 사회의 전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칠레 만세,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1973.9.11살바도르 아옌데」
1973년 9월 11일,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끈 민중 연합정부의 이른바 “사회주의 혁명의 새로운 길”은 기독교미주당과 파시스트 그룹 등의 반혁명 연합이 지지하는 피노체트의 군부쿠데타로 3년의 짧지만 혁명적인 시대의 좌절로 이어지게 된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73년 쿠데타 이후 1990년 까지 17년간 집권하고 1998년 초까지 군 총사령관으로 있다가 1998년 10월에야 비로소 납치와 고문과 학살 드의 혐의로 영국에서 체포되게 된다. 체포 당시 피노체트와 오랜 우정을 나눴던 마거릿 대처는 그를 석방하라고 망령을 부렸다는 얘기도 있고, 피노체트가 예전에 박정희를 흠모한 나머지 박정희가 죽었을 때 조기를 게양하고 조문사절단을 파견하려 했다고도한다. 독재자들간에고 모종의 연대가 필요한 것일 게다.
피노체트가 체포되고 지난 30여년의 역사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이루어지면서 2001년 1월 8일, 피노체트의 군부독재시절에 반체제 인사 520명이 바다에 수자오디거나 산 속에 버려졌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공개된바있다. 그러나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와 뒤이은 오랜 군부독재가 저지른 만행은 저와 같은 ‘학살’만이 아니다. 군부 쿠데타는 “칠레 민중의 사회주의 적 정부에 대한 지지와 열망”, 즉 민중 스스로의 지배가 가능하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각과 행동을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짓밟은 것이다. 외형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1990년대 들어와 우리나라의 ‘문민’정부 때와 같이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고는 하지만, 인권문제나 실제 민중들의 삶은 크게 나아진 것도 없어 대다수의 민중들은 아직도 첼레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 여러모로 칠레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어쨌든 칠레에서의 민주주의의 회복과 반독재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짓밟혔으되 결코 꺾여 스러질 생명은 아닌 것이다.
▶이론이자 실천으로서의 다큐멘터리:<칠레전투>
사회변혁과 정치적 인식의 제고를 위한 핵심적 도구로서 다큐멘터리를 포용해온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은 <칠레전투>를 통해 새로운 질적 도약을 맞게 된다. 민중연합 정부의 마지막 해인 1973년 2월부터 촬영이 시작될때, 이미 구즈만과 ‘세번째해집단’은 이 영화를 선동적이고 전투적인 영화가 아니라 분석적인 영화로 기획하였다. 그 직전, 1972년 12월에 모인 그들은 당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건들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이라는 점에 모두가 동의하였다.
<칠레전투>를 포함하여 민중연합정부 시기 동안 10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들이 제작되었고 국가경제를 장악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투쟁, 사회정치적 개혁의 필요성, 천연자원 보존의 필요성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대부분이 당면한 정치적 유용성을 재현하였다. 수사나 픽의 평가에 따르면, <칠레전투>를 비롯한 이 시기의 영화들은 칠레의 다큐멘터리 운동이 다큐멘터리를 현실에 대한 기억이나 관찰로서 간주하는 사고를 극복하고, 분석적인 역사적 도구로서 실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칠레전투>가 그러한 분석적인 역사적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은 그 촬영방식에서 잘드러난다. 전투적 중남미 영화운동의 여느 영화들, 예를 들어 페르난도 솔라나스와 옥타비오 게티노의 <불타는 시간>에서 볼 수 있는 몽타주가 아니라, 가능한 길게 찍기 형식이 <칠레전투>에서는 주요한 표현기법으로 사용된다. 로페즈는 여갓적 사건들을 재현해내기 위한 독특한 다큐멘터리 전략으로 구즈만과 그 집단이 사용한 길게 찍기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시퀀스 숏은 영화와 영화 제작자들, 그리고 관객 사이의 전통적인 관계를 바꾸어놓는 것이다. 서사-극영화에서의 시퀀스 숏은 으레 이미지의 진실성과 간접적인 설득력을 증대시키는데, 다큐멘터리에서 이러한 촬영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다큐멘터리란 형태로 이미 확증된 사실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기록을 픽션의 영역에 가깝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억압된 과거의 미래
<칠레전투>는 민중연합정부르 거쳐 진정 민주적으로 구성될 혁명정부를 맞이한 칠레 민중들이 그 투쟁의 과정에 완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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