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고전시가론 > 해외 기행가사 연구 - 조선시대의 중국행 ․ 일본행 사행가사와 근대의 서양 기행가사 [사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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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한국고전시가론 > 해외 기행가사 연구 - 조선시대의 중국행 ․ 일본행 사행가사와 근대의 서양 기행가사 [사행가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사행가사


Ⅲ. 중국행 기행가사

 1. <서행록>
  1) 작품 구조와 내용
  2) 이국에서의 자아 인식

 2. <연행가>
  1) 작가
  2) 노정 및 구성
  3) 세계 인식 태도


Ⅳ. 일본행 기행가사

 1. <일동장유가>

 2. <대일본유람가>


Ⅴ. 해외 기행가사

 1. <셔유견문록>
  1) 전통 대중 시가의 표현형식 차용
  2) 견문 내용의 상세한 보여주기
  3) 변형된 화이관(華夷觀)

 2. <해유가>
  1) 여행의 동기
  2) 미국의 사회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


Ⅵ. 결론

본문내용

출신 선비 장 제량을 대해서는 극찬하고 잇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존주(尊周)하는 모화(慕華)사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겠다.
연기는 삼심인데/ 표연한 청수 골격 문장이 독보로다/ 향공에 뽑혀서/ 여덟 번 서울오니/
기안은 반월하고/ 의리는 정밀하며/강개하고 걸오하며/ 춘추가 삼엄한데/
분울한 장한 기운/ 은영이 드러나니/저러한 기남자가/ 아까울사 절통하다/
중원의 높은 선비/ 그 좇아 몇이런가?/
이 작품의 지은이는 한편으로는 비록 멸시의 대상이든 사모의 대상이든 청인과 한인을 막론하고, 그들의 질서 존중의 공중도덕 지키기에 익어진 모습을 보고 나를 반성하며 우리의 경우와 견주어 본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자기 인식을 꾀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국을 생각하면/ 동가를 하옵실 때/ 취군할 때 말소리/ 각 영문 호응소리/
관원의 벽제 소리/ 등롱 초롱 용지횃불/ 지껄이고 분주하기/ 오직하랴마는/
거머득한 가운데/ 인적이 난동 만동/ 희미한 철초롱에/ 조관들이 푸득푸득/
시위 군병 의장들도/ 항오 배립하련마는/ 아무것도 동정/ 없고 엄숙할 뿐이로다./
홀연히 정편소리/ 직각직각 세 번 나니/ 오문 구녕 캄캄한데/ 말발소리 나오더니/
사오십기 나온 후/ 황양산이 나오는고?/
이처럼 많은 군병/ 정제하고 조용하여 무인지경 같은지라/
이로써 헤아리면/기율이 끔찍하다/
라고 장황히 노래한 것은 지은이가 황제를 보려고 행차하는 길에 나갔다가 도열하였던 군병들의 모습과 거동하는 황제 자신이 요란스럽게 지나가지 않음을 우리의 경우와 견주어 살핀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의 지은이는 남에 비하여 나를 너무 낮추어 생각한 예가 많다.
대조회 아니라도/ 평일에 그러하니/ 아국에 비기건데/ 관원이 백배로다
태학은 그 서편에/ 제도가 굉대하니/ 우리나라 성균관이/ 모 떠다가 지었는데
대성전은 앞에 있고/ 명륜당은 그 뒤에니/ 중원 태학 지을 적에/ 지형대로 지은 것을
그대로 닮아오니/ 대국 사람 웃는다네
심지어는 음식과 짐승에게까지 연결시켜 내 것이 남의 것만 못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누른 해삼 흰 해삼을/ 국물있게 찜을 하되/ 아무 소도 아니 넣고/ 약념하여 익혀 내니
무르고 염담하여/ 안주하기 제일이라/우리나라 해삼찜은/ 찜이 아녀 지짐이라
그 다음 노새말이/ 담으로 뒤를 두고/ 외줄노 나리셔고/ 곱집어서 마조 세워
사람은 아조 업고/ 말말끼리 서로 매여/ 동의도 두 줄이요/ 서의도 두 줄인데
꼬리를 갓치 두고/ 천백말이 다야서고/ 머리를 마조 두어/ 겹으로 세워시나
요동들도 아니하고/ 아모소리 없었으니/ 우리 말 같게 되면/ 요란키 아닐손가?
2. 연행가
1) 작가
홍순학은 헌종8년(1842)~고종29년(1892), 조선 말기 때의 문인으로 본관은 남양, 자는 덕오이다. 족숙 석종에게 입양되어 과거 급제시까지 경기도의 적성에서 자랐다. 철종8년(1857) 친림춘당대 대왕대비전 보령 장체칠순(親臨春塘臺大王大妃殿寶齡裝蹄七旬)왕대비 보령 흡만오순(王大妃寶齡恰滿五旬) 합이경경과정시문과(合異慶慶科庭試文科)에 16세의 나이로 급제하여 정언수찬대사헌대사간예조참의를 지냈고, 고종21년(1884) 그의 나이 42세에 감리 인천항 통상사무가 되었다. 이듬해에 인천부사를 겸임하고 그 뒤 협관교섭통상사무 등을 역임하였으며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연행가>는 홍순학이 25세에 주청사의 서장관으로서 연경을 왕복하던 1866년 4월 9일에서 8월 28일까지의 모든 견문을 읊은 기행가사로 전체가 3924구로 이루어진 장편가사이다.
2) 작품의 구조와 내용
이 작품은 고종 3년(1866) 4월 9일 한양을 출발 → 5월 7일 압록강에서 도강 → 6월 6일에 연경의 해동관에 도착(35일 체류)→ 7월 11일 회환 → 8월 6일 도강하여 고국에 도착 → 8월 23일 인정전에 도착하여 임금님을 뵙고 귀가하는 순서로 이루어진 노정을 담고 있는데, 인정전에 도착해서 집으로 귀가하기까지 총 237곳을 거쳐서 134일의 모든 견문과 여정을 기록하였다.
위와 같은 노정을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은 5단계로 내용을 구성하였다.
① 연행의 배경과 일행의 모습
② 출발과 노정
③ 연경의 견문과 감상
④ 왕정과 회정
⑤ 귀경과 재회
①에서 고종이 왕비를 책정한 일로 삼사신(三使臣)이 연경에 가게 된 사실과 작가가 25세의 나이로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어 연경을 가게 되는 경위를 적고 있다. ②에서는 떠나기 전 여러 재상들과 명사, 친구들의 송별식 모습을 소개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나타내고, 연경까지의 노정과 도중의 견문에 대한 느낌과 주관적 평가, 여수에 젖은 감상적 심회를 기술하고 있다. ③에서는 처음 보는 호인들의 모습과 새로운 문물을 관찰하고 명소들을 자세하게 묘사하였다. ④에서는 관리로서의 업무와 개인적인 견문을 통해 연경 민중의 생활상을 본 느낌을 노래하였는데, 연경에서의 공식적인 일정은 천자를 만나 표문을 전달하는 외교적 절차이며 그 외에는 관광이나 그곳 문사와 교유하는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⑤의 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회정은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므로 간략히 소개하며 건강히 귀가해서 임금님을 뵙고 가족과 재회한 기쁨을 표출한다.
3) 세계인식
(1) 문화적 충격과 자아의 인식
작가는 사행을 통해 선진의 문화를 접하면서 충격을 받고 견문이 확대됨으로써 자아를 재인식하게 된다. 작가의 의식 속에는 기본적으로 조선의 문화와 사대부로서의 자신의 학식에 대한 자존과 긍지가 있으나 호화롭고 발전된 세계를 보면서 자신의 문화적 왜소를 깨닫게 된다. 그러한 모습이 투영된 몇 가지 장면을 통해 짚어본다.
을 가셔/ 셩뎐의 고/ 젼를 봉심니/ 불근위 모셔노코
셩지경 공신위/ 금로 여요/…/
동문안 셕고잇셔/ 좌우의 열 개로다/쥬션왕의 돌북/ 지금가지 뉴전여
삭인젼 박남이/ 고젼이 긔이다/ 동문밧 가온/ 쥬류륭 셧비
식년마다 과거보고/ 진방을 삭인비라/ 몃식년을 지난더냐/ 몃인지 모르겠다/…/
동셔월랑 길게짓고/ 웃둑웃둑 셰인비/ 시젼셔젼 주역이며/ 논어 듕용학
좌젼츈츄 듀역예긔/ 십삼경을 삭인비라/ 일부러 혜여보니/ 이팔십 도합일세
북편의 놉혼집은/ 이륜당이 현판이라/ 아국으로 니로라면/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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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3.10
  • 저작시기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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