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라는 결론적을 내린다. 결론적 권고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바울은 결론을 이끄는 접속사 ‘στε’로 본 절을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위로하라’로 번역된 ‘παρακαλετε’의 원형‘παρακαλω’는 ‘권면하다’는 의미이다. 본 절에서 이는 부활에 관한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고 권면하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이미 죽은 자들로 인해 슬퍼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바울의 이러한 위로는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이 죽음 후에도 소망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확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성도들도 예수의 재림 시에는 썩지 않을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살아있는 성도들과 함께 구원의 축복에 참여하게 될 것이란 사실은 잘못된 재림 관으로 죽은 자를 먼저 떠나보내 슬퍼하고 있던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1. 휴거의 시기에 대한 논의
휴거의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으며, 아직도 전천년설자들 사이에서 논란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휴거의 시기에 대한 견해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교회가 대 환난에 앞서 휴거되어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 다는 견해인 환난 전 휴거설(Pretribulationism), 교회가 하나님의 보호 아래 환난을 통과한 후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휴거 된다는 환난 후 휴거설(Possttribulationism), 앞서 두 견해가 지닌 난점을 피하고 양자를 중재하려는 환난 중 휴거설(Midtribulati-
onism)과 부분 휴거설(Partial rapture view)이다.
1) 환난 전 휴거설(Pretribulationism)
환난 전 휴거설은 예수그리스도가 대 환난에 앞서 교회를 세상으로 휴거하기 위해 공중 재림할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교회는 대 환난을 겪지 않고 피하게 되는 것이다. 사도 시대부터 3세기까지 초대 교회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인 견해가 전천년 왕국설이었으나 그 일부라고 할 수 있는 환난 전 휴거설에 대한 명확한 지술은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그 중심 요소인 그리스도의 재림의 긴박성에 대한 신앙만이 발견될 뿐이다. 환난 전 휴거설자들은 초기 교부들의 저서에서 그 이론에 대한 명확한 진술이 발견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인정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대 환난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겪어야 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2세기 초 저술된 『디다케(Didache)』는 임박한 환난을 준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깨어 있으라. 너의 등불을 끄지 말며 허리띠를 풀지 말고 준비하라. 이는 네가 주께서 언제 오시는지 알지 못함이라” C. C. Richardson, Early Christian Fathers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Inc.,1979), 178.
『바나바의 서신』역시 교회가 환난을 겪고 그 끝에 그리스도가 재림 할 것을 기대했다. G. Ladd, The Blessed Hope, 이현식 역, 『재림과 휴거』 (서울: 도서출판, 영문, 1993), 21.
이레네우스(Irenaeus, 13-220)는 철저한 전 천년 주의자였으나 환난 전 휴거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가 적그리스도를 멸하고 교회를 구원하기 위해 환난 끝에 재림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Irenaeus, Againt Heresies, Book V, 30:4, The Ante-Nicene Fathers, vol 1(Grands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79), 560.
4세기 어거스틴 이후 17세기까지 무천년설적인 천년 왕국설이 교회의 지배적인 입장이었으므로, 환난 전 휴거설이 발전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중세와 종교개혁 시대에 일반적으로 채택된 계시록 해석은 역사적 해석방법이었다. Ladd, 『재림과 휴거』 op. cit. 34.
그것은 종말론적 사건들을 교회 역사 내에서 일어난 것으로 이해한다. 환난 역시 역사 내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적그리스도로 인해 단 기간의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미래주의적 해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19세기 들어 성서의 예언적 진리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면서 그에 대한 두 가지 새로운 해석이 제시되었다. 미래주의(Futurism)와 다비이즘(Darbysim) 또는 세대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미래주의는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대환난기 동안 교회를 박해하지만, 환난 끝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교회를 구원하고 적그리스도를 멸함으로써 천년 왕국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다비이즘 또는 세대주의는 천년 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는 교회를 휴거시키기 위해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Ibid., 42.
따라서 환난전 휴거설의 분명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다비(J. N. Darby)에 의해서 였다.
다비는 살전4:16-17에 근거하여 환난 전 휴거설을 주장하였다. 교회는 대환난을 통과하지 않고 환난 직전 공중으로 휴거되며, 그 동안 이스라엘과 세상 국가들은 지상에서 대 환난을 당한다고 주장한다. Ibid., 37.
이런 다비의 환난 전 휴거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개최되었던 예언대회, 스코필드 관주 성경 그리고 성서 학원 운동을 통하여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근본주의 신학계에서 수용되어진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브룩스(J. H. Brookes), 피어슨(A. T. Pierson), 스코필드(C. I. Scofield), 게블라인(A. C. Gaebelein), 토레이(R. A. Torrey, 아이언사이드(H.A. Ironside)등이 있다. 환난 전 휴거설의 강조점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환난 전 휴거설은 대환난의 독특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일반적인 환난과 비교될 수 없는 대환난이다. 세 종류 사람들이 이런 환난을 겪게 되는데, 이스라엘 민족, 불신자, 환난 때에 살아있는 성도이다. J. F. Walvoord, The Rapture Question (Findly, Ohio: Dunham, 1957), 43.
대환난의 목적은 교회를 정화하거나 신자들을 연단시키는 것이 아닌 ‘이방인의
1. 휴거의 시기에 대한 논의
휴거의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으며, 아직도 전천년설자들 사이에서 논란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휴거의 시기에 대한 견해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교회가 대 환난에 앞서 휴거되어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 다는 견해인 환난 전 휴거설(Pretribulationism), 교회가 하나님의 보호 아래 환난을 통과한 후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휴거 된다는 환난 후 휴거설(Possttribulationism), 앞서 두 견해가 지닌 난점을 피하고 양자를 중재하려는 환난 중 휴거설(Midtribulati-
onism)과 부분 휴거설(Partial rapture view)이다.
1) 환난 전 휴거설(Pretribulationism)
환난 전 휴거설은 예수그리스도가 대 환난에 앞서 교회를 세상으로 휴거하기 위해 공중 재림할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교회는 대 환난을 겪지 않고 피하게 되는 것이다. 사도 시대부터 3세기까지 초대 교회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인 견해가 전천년 왕국설이었으나 그 일부라고 할 수 있는 환난 전 휴거설에 대한 명확한 지술은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그 중심 요소인 그리스도의 재림의 긴박성에 대한 신앙만이 발견될 뿐이다. 환난 전 휴거설자들은 초기 교부들의 저서에서 그 이론에 대한 명확한 진술이 발견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인정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대 환난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겪어야 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2세기 초 저술된 『디다케(Didache)』는 임박한 환난을 준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깨어 있으라. 너의 등불을 끄지 말며 허리띠를 풀지 말고 준비하라. 이는 네가 주께서 언제 오시는지 알지 못함이라” C. C. Richardson, Early Christian Fathers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Inc.,1979), 178.
『바나바의 서신』역시 교회가 환난을 겪고 그 끝에 그리스도가 재림 할 것을 기대했다. G. Ladd, The Blessed Hope, 이현식 역, 『재림과 휴거』 (서울: 도서출판, 영문, 1993), 21.
이레네우스(Irenaeus, 13-220)는 철저한 전 천년 주의자였으나 환난 전 휴거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가 적그리스도를 멸하고 교회를 구원하기 위해 환난 끝에 재림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Irenaeus, Againt Heresies, Book V, 30:4, The Ante-Nicene Fathers, vol 1(Grands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79), 560.
4세기 어거스틴 이후 17세기까지 무천년설적인 천년 왕국설이 교회의 지배적인 입장이었으므로, 환난 전 휴거설이 발전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중세와 종교개혁 시대에 일반적으로 채택된 계시록 해석은 역사적 해석방법이었다. Ladd, 『재림과 휴거』 op. cit. 34.
그것은 종말론적 사건들을 교회 역사 내에서 일어난 것으로 이해한다. 환난 역시 역사 내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적그리스도로 인해 단 기간의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미래주의적 해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19세기 들어 성서의 예언적 진리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면서 그에 대한 두 가지 새로운 해석이 제시되었다. 미래주의(Futurism)와 다비이즘(Darbysim) 또는 세대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미래주의는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대환난기 동안 교회를 박해하지만, 환난 끝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교회를 구원하고 적그리스도를 멸함으로써 천년 왕국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다비이즘 또는 세대주의는 천년 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는 교회를 휴거시키기 위해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Ibid., 42.
따라서 환난전 휴거설의 분명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다비(J. N. Darby)에 의해서 였다.
다비는 살전4:16-17에 근거하여 환난 전 휴거설을 주장하였다. 교회는 대환난을 통과하지 않고 환난 직전 공중으로 휴거되며, 그 동안 이스라엘과 세상 국가들은 지상에서 대 환난을 당한다고 주장한다. Ibid., 37.
이런 다비의 환난 전 휴거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개최되었던 예언대회, 스코필드 관주 성경 그리고 성서 학원 운동을 통하여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근본주의 신학계에서 수용되어진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브룩스(J. H. Brookes), 피어슨(A. T. Pierson), 스코필드(C. I. Scofield), 게블라인(A. C. Gaebelein), 토레이(R. A. Torrey, 아이언사이드(H.A. Ironside)등이 있다. 환난 전 휴거설의 강조점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환난 전 휴거설은 대환난의 독특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일반적인 환난과 비교될 수 없는 대환난이다. 세 종류 사람들이 이런 환난을 겪게 되는데, 이스라엘 민족, 불신자, 환난 때에 살아있는 성도이다. J. F. Walvoord, The Rapture Question (Findly, Ohio: Dunham, 1957), 43.
대환난의 목적은 교회를 정화하거나 신자들을 연단시키는 것이 아닌 ‘이방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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