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 공통] 우리나라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교육사상가 및 실천가 중 1명을 선정하여 그의 생애와 교육사상의 특징을 설명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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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육사 공통] 우리나라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교육사상가 및 실천가 중 1명을 선정하여 그의 생애와 교육사상의 특징을 설명하시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 율곡 이이 선택 이유

Ⅱ. 본론
1. 율곡 이이의 생애
1) 생애
2) 주요 철학이론
(1) 이기지묘(理氣之妙)
(2) 기발이승(氣發理乘)
(3) 이통기국(理通氣局)
2. 율곡 이이의 교육사상의 특징
1) 교육의 목표
2) 교육의 동기
3) 교육적 인간상
4) 교육의 가능성
5) 교육의 과정
6) 교육의 방법
7) 교사론

Ⅲ. 결론
- 나의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현재 오늘날에도 그의 사상, 철학은 우리에게 회자되고 있다. 무엇보다 율곡 이이를 선택한 이유는 십만양병설에 가려진 그의 위대한 업적과 사상들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의 다양한 업적과 사상들 중 교육사상에 대해서 논하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율곡 이이의 생애
1) 생애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1536년(중종 31년) 12월 26일에 강원도 강릉 북평촌 오죽헌(烏竹軒)에 있는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덕수 이씨로 부친 이원수 공과 모친 사임당 신씨의 4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신사임당이 아이를 낳기 전에 꿈속에서 용을 보았다고 해서 그의 자를 현룡(見龍)이라 했고 그의 고향이 경기도 파주 율곡촌이므로 ‘율곡’을 그의 호로 삼았다. 율곡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서너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깊은 생각과 문학적 자질을 익혀나갔다. 하지만 스승이자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죽음은 소년 율곡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1551년 5월, 그의 나이 16살에 어머니를 잃게 되었다. 19살의 율곡은 모친의 죽음을 계기로 인생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직면했으며 율곡은 불서를 보게 되어 불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율곡의 이러한 불교에 대한 공부는 학자들에게 비난을 받으나 훗날 율곡이 임금에게 말했던 것과 같이 자신은 불교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결연히 뛰쳐나왔다고 말한다. 율곡이 23살이 되던 해 봄, 그는 당대 석학으로 존경받던 퇴계 선생을 예안(안동) 도산(陶山)으로 찾아가 뵙는다. 이때 23살인 율곡은 장래가 촉망되는 철학도요, 퇴계는 58세의 원로 유학자였다. 마치 오늘날 대학생 율곡이 존경하는 철학교수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모습 같다. 이황은 그의 제자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무개가 찾아왔는데 그 사람됨이 명랑하고 시원스러우며 지식과 견문도 많고 또 우리 학문에 뜻이 있으니 ‘후배가 가히 두렵다.’는 공자의 말씀이 참으로 나를 속지이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퇴계의 말대로 율곡은 훗날 퇴계의 학설을 정식으로 비판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조선조 유학의 쌍벽으로 우뚝 선 것이다. 시간이 지나 율곡은 29살에 명경과에 급제해 호조좌랑으로 첫 관직을 시작한 이래 여러 주요 요직을 두루 섭렵하였으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을 아낌없이 희생했으며 임금에게 목숨을 걸고 바른 말을 했고 국가 경영의 미래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율곡은 평생 105편의 소차(疏箚), 계(啓), 의(議)를 올렸다. 또한 동서붕당의 조짐이 보이자 이를 조화하고 화합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동서’ 두 글자는 곧 망국의 화근이라 하고 동서의 구별을 씻어버리고 오직 능력에 따라 현인재사만 등용하라고 했다. 율곡은 평생 나라와 백성을 위한 우국충정에 불탔고 그의 마음을 임금에게 바치는 상소문으로 표현했다. 이렇듯 그의 정신과 철학, 사상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2) 주요 철학이론
(1) 이기지묘(理氣之妙)
이기지묘란 리와 기가 오묘하게 합해 있다는 말로, 이기묘합과 같은 말이다. 율곡이 처음 사용한 말은 아니고 이미 중국 당나라 아부구 공이 풍수지리를 설명하는 가운데 썼으며 조선조 초에 정여창, 조광조, 송기수, 서경덕 등이 간헐적으로 사용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기지묘를 자신의 철학 핵심으로 삼고 이를 철학 체계로 삼은 이는 율곡이다. 율곡은 이 세계의 만사만물은 모두 리와 기가 오묘하게 합해 있다고 보았다. 형이상자와 형이하자가 하나의 존재양태라는 말이다. 특히 율곡은 리와 기가 어느 시간적 계기로 합해진 것이 아니라, 본래 합한 상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리와 기는 시간의 선후가 없고 공간의 간극도 없다는 것이다. 리는 형이상자고 기는 형이하자로 서로 다른 둘이지만, 하나의 양상으로 존재한다. 바꿔 말하면 하나의 존재양상으로 있지만 그 속에서는 리고 기는 기로서 구별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논리를 그는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라고 불렀다. 존재 자체로 보면 리와 기는 구별할 수 없는 하나지만, 그것을 개념이나 가치로 나누어 보면 리와 기는 엄연히 구별된다는 것이다. 율곡은 이러한 존재의 오묘한 비밀을 통찰한 것이다.
(2) 기발이승(氣發理乘)
‘발(작용)하는 기 위에 리가 올라타 있는 존재 자체’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은 본래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 논변에서 퇴계가 만년 정론으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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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09.05
  • 저작시기2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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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62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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