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세례의 정의
2. 세례의 어원
3. 세례의 신학적 의미
4. 세례의식의 기원
5. 예수와 사도들의 세례
1) 예수의 세례
2)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세례
6. 세례의 요소
7. 유아세례
1) 성경적 근거
2) 역사적 이해
3) 결론
Ⅲ. 결론
※ 참고문헌
Ⅱ. 본론
1. 세례의 정의
2. 세례의 어원
3. 세례의 신학적 의미
4. 세례의식의 기원
5. 예수와 사도들의 세례
1) 예수의 세례
2)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세례
6. 세례의 요소
7. 유아세례
1) 성경적 근거
2) 역사적 이해
3) 결론
Ⅲ.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3. 세례의 신학적 의미
첫째,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데 필요한 결정적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공적으로 시인하고 그와의 연합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성례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로운 몸으로서의 출발이 다짐되고 공포되는 예전으로서의 세례는 수세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는 방편이요, 인침인 것이다. 이때 한 생명의 새로운 존재의미가 다시 발견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소속된 지체의 일부임을 언제나 자각케 함으로써 타락된 육적 생활오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상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갈 3:27)라고 말하고 있다.
둘째, 세례는 자신의 죄를 회개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예전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인침의 예전 가운데 참여한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회개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죄의 회개를 수반하지 않는 세례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례라고 인정할 수 없다.
초대교회 당시 수세자에게는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수세 전 며칠간 금식하면서 준비하라는 명령을 할 정도로 회개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죄의 회개가 있을 때 하나님은 자비의 손길을 펴시어 용서의 인을 쳐주시며 동시에 “전에 지었던 죄를 간과하심으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롬 3:25-26)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보이는 은총의 실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은총의 현장에서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것은 단순히 물에 의한 세례가 죄의 용서를 가져오는 방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곧 그물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흘린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해야 하고 그 보혈에 의하여 죄씻음을 받는다는 신앙고백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세계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탄생(Birth)을 의미해야 한다. 세례란 이미 언급한 대로 삶의 출발인 것이다. 이 새로운 삶의 출발이란 예수 밖에서 살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예수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 새로운 삶은 단순히 물로 받은 세례의식보다는 그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새롭게 변화한 생의 출발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례란 “성령님의 선물”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세례는 죄의 세계로부터의 의의 세계로, 속박에서 자유로, 율법아래의 죽음으로부터 성령 안의 생명으로 옮겨지는 중요한 과정임에 틀림이 없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세례의 의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골 2:11-12)라고 말하였다.
넷째, 세례는 크리스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의식이다. 초대 기독교나 가톨릭의 전통에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의 공동체 속에 함께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쉽게 볼 수 있다. 특별히 초대교회에서는 말씀의 예전과 다락방 예전으로 구분하여 말씀의 예전에는 누구나 함께 하는 것을 허용하였으나 다락방 예전에는 세례받지 않은 무리들은 퇴장시키고 수세자들만 참여시켰다. 이러한 예전의 현장 속에서 그들이 얼마만큼 공동체의식과 존엄성을 준수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러한 크리스천 공동체의 특유한 성격은 지금도 기독교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공식적인 크리스천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상례로, 세례는 크리스천 공동체 안에 들어오는 “입장허가”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정장복, 「예배의 신학」(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9), 276-280
4. 세례의식의 기원
세례의식은 율법만큼이나 오랜것이다. 율법에는 몸을 청결케 하는 의식들로 가득차 있다. 신구약 성경은 연속성을 지닌 역사적 사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신약자체가 구약의 정결의식을 “세례”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율법에는 “뿌린다”는 말씀이 자주나온다. J.E.아담스, “결단력중생”, 「개혁신학 Ⅵ집」(서울: 개혁신학사, 1980), 100
① 히 9:13-민 19:17,18(피와 재를 뿌려)
② 히 9:19-출24:6,8(피와 물을 뿌려)
③ 히 9:21-레8:19, 16:14(피를 뿌려)
특히 히 9:10의 “여러 가지 씻는것”이란 구약의 세례가 모두 다같은 종류는 아님을 지적하고, 그 “뿌리는 의식”은 사용된 성분에 따라 여러 가지였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뿌리는 의식이 사용된 경우-문둥병(레14:6,7), 범죄(시5:17),시체(민 19:11-13, 막 7:3-4), 음식(민8:7, 겔 36:25-27)
이와 같이 성경적인 세례의식의 기원을 살펴볼 때, “뿌려서”의식을 행하였고, 침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중대한 의미가 있다. 이상과 같이 율법의 “뿌리는 의식”은 침례가 아닌 뿌리는 세례를 미리 예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세례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결코 되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세례는 당사자에게 물을 붓거나 뿌리는 것으로 족하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을 일으키고 기르며 굳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어지며 물로 씻음으로써 정결을 상징하는 신약의 한 성례이다(마 28:19, 고전 11:20,23, 마 26:26-28, 5:26). 세례 받은 당사자들은 엄숙히 몸된 교회에 속하고 되고(고전 12:13), 전적으로 오직 주께 만 속한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예식이다(롬 6:4). 이 세례를 통하여 우리 모두는 단 한분이신 하나님께 예배하며,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한 몸안에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우희영, 「성령의 사역」(서울: 심언, 1989), 13
세례의 사상이나 사역은 구약시대 유대민족의 종교생활 가운데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물을 사용하여 하나님 앞에 깨끗함을 보이고 제단을 쌓는다든가, 하나님을 향하여 나오는 무리들이 물로 씻는 의식을 거쳐서 새로운 세례의 원시적 형태는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먼저,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나 또는 거룩한 예전에 참여할 때는 반드시 물로 깨끗이
첫째,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데 필요한 결정적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공적으로 시인하고 그와의 연합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성례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로운 몸으로서의 출발이 다짐되고 공포되는 예전으로서의 세례는 수세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는 방편이요, 인침인 것이다. 이때 한 생명의 새로운 존재의미가 다시 발견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소속된 지체의 일부임을 언제나 자각케 함으로써 타락된 육적 생활오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상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갈 3:27)라고 말하고 있다.
둘째, 세례는 자신의 죄를 회개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예전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인침의 예전 가운데 참여한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회개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죄의 회개를 수반하지 않는 세례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례라고 인정할 수 없다.
초대교회 당시 수세자에게는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수세 전 며칠간 금식하면서 준비하라는 명령을 할 정도로 회개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죄의 회개가 있을 때 하나님은 자비의 손길을 펴시어 용서의 인을 쳐주시며 동시에 “전에 지었던 죄를 간과하심으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롬 3:25-26)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보이는 은총의 실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은총의 현장에서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것은 단순히 물에 의한 세례가 죄의 용서를 가져오는 방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곧 그물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흘린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해야 하고 그 보혈에 의하여 죄씻음을 받는다는 신앙고백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세계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탄생(Birth)을 의미해야 한다. 세례란 이미 언급한 대로 삶의 출발인 것이다. 이 새로운 삶의 출발이란 예수 밖에서 살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예수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 새로운 삶은 단순히 물로 받은 세례의식보다는 그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새롭게 변화한 생의 출발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례란 “성령님의 선물”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세례는 죄의 세계로부터의 의의 세계로, 속박에서 자유로, 율법아래의 죽음으로부터 성령 안의 생명으로 옮겨지는 중요한 과정임에 틀림이 없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세례의 의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골 2:11-12)라고 말하였다.
넷째, 세례는 크리스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의식이다. 초대 기독교나 가톨릭의 전통에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의 공동체 속에 함께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쉽게 볼 수 있다. 특별히 초대교회에서는 말씀의 예전과 다락방 예전으로 구분하여 말씀의 예전에는 누구나 함께 하는 것을 허용하였으나 다락방 예전에는 세례받지 않은 무리들은 퇴장시키고 수세자들만 참여시켰다. 이러한 예전의 현장 속에서 그들이 얼마만큼 공동체의식과 존엄성을 준수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러한 크리스천 공동체의 특유한 성격은 지금도 기독교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공식적인 크리스천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상례로, 세례는 크리스천 공동체 안에 들어오는 “입장허가”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정장복, 「예배의 신학」(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9), 276-280
4. 세례의식의 기원
세례의식은 율법만큼이나 오랜것이다. 율법에는 몸을 청결케 하는 의식들로 가득차 있다. 신구약 성경은 연속성을 지닌 역사적 사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신약자체가 구약의 정결의식을 “세례”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율법에는 “뿌린다”는 말씀이 자주나온다. J.E.아담스, “결단력중생”, 「개혁신학 Ⅵ집」(서울: 개혁신학사, 1980), 100
① 히 9:13-민 19:17,18(피와 재를 뿌려)
② 히 9:19-출24:6,8(피와 물을 뿌려)
③ 히 9:21-레8:19, 16:14(피를 뿌려)
특히 히 9:10의 “여러 가지 씻는것”이란 구약의 세례가 모두 다같은 종류는 아님을 지적하고, 그 “뿌리는 의식”은 사용된 성분에 따라 여러 가지였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뿌리는 의식이 사용된 경우-문둥병(레14:6,7), 범죄(시5:17),시체(민 19:11-13, 막 7:3-4), 음식(민8:7, 겔 36:25-27)
이와 같이 성경적인 세례의식의 기원을 살펴볼 때, “뿌려서”의식을 행하였고, 침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중대한 의미가 있다. 이상과 같이 율법의 “뿌리는 의식”은 침례가 아닌 뿌리는 세례를 미리 예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세례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결코 되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세례는 당사자에게 물을 붓거나 뿌리는 것으로 족하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을 일으키고 기르며 굳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어지며 물로 씻음으로써 정결을 상징하는 신약의 한 성례이다(마 28:19, 고전 11:20,23, 마 26:26-28, 5:26). 세례 받은 당사자들은 엄숙히 몸된 교회에 속하고 되고(고전 12:13), 전적으로 오직 주께 만 속한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예식이다(롬 6:4). 이 세례를 통하여 우리 모두는 단 한분이신 하나님께 예배하며,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한 몸안에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우희영, 「성령의 사역」(서울: 심언, 1989), 13
세례의 사상이나 사역은 구약시대 유대민족의 종교생활 가운데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물을 사용하여 하나님 앞에 깨끗함을 보이고 제단을 쌓는다든가, 하나님을 향하여 나오는 무리들이 물로 씻는 의식을 거쳐서 새로운 세례의 원시적 형태는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먼저,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나 또는 거룩한 예전에 참여할 때는 반드시 물로 깨끗이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