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개론 레포트- 에리히 프롬의 사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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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철학개론 레포트- 에리히 프롬의 사상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 이 때의 종교는 ‘신’이라는 개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라기 보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원리', 즉 사랑이나 자비, 진리, 정의의 원리를 신봉한다.
권위주의적 종교와 인본주의적 종교
프롬은 종교의 유신론적, 비유신론적 차이는 비본질적인 것이며 진정한 차이는 ‘어떤 종류의 종교냐’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종교가 인간 특유의 잠재적 능력의 전개를 촉진시킬 수 있는지, 아니면 저해하는지가 중요하다. 권위주의적 종교에서 신은 전능하다고 생각되는 반면, 인간은 무력하고 천하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신은 이성과 사랑의 상징이기보다는 자의적인 권력과 힘의 상징이다. 권위주의적 종교는 인간의 현실적인 생활과는 전혀 관계없는 추상적이고 동떨어진 이상을 요구한다. 죽은 후의 삶이나 인류의 장래 등의 이상 때문에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행복이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옥스포드 사전의 종교에 대한 정의)
이에 대해서 인본주의적인 종교는 인간과 인간의 힘 그리고 인간이 이상으로 여기는 가치들을 중심으로 삼는다. 인본주의적 종교에서 삶의 목적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전능한 신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최대의 힘을 달성하는 것이다. 미덕은 복종이 아니라 자기 실현에 있다. 권위주의적 종교에서는 비애와 죄악감이 지배적인 반면, 인본주의적 종교에서는 기쁨이 지배적이다.(기독교의 하시딤 운동) 또한 프롬은 인본주의적 종교의 가장 좋은 본보기로 불교를 들고 있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깨달아야 하는 한편 자기 안에 있는 힘도 자각해야만 한다. 깨달은 자가 도달하게 되는 마음의 상태인 열반은 무력함과 굴복의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힘을 발전시킨 상태인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또는 권위적인 종교의 특징은 죄와 의례에 대한 태도로부터 보다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권위주의적 종교에서 죄란 권위에 대한 불복종으로 간주되며, 그 권위가 불합리한 것이라도 그것에 불복종하는 것은 죄로 간주된다. 그러나 인본주의적인 종교에서 죄란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며, 결국 죄란 신이나 외적인 권위에 대한 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죄다.
또한 권위주의적 종교에서의 의례는 한 번이라도 행하지 않으면 억압당하고 있는 불안이 튀어나와 엄습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행해져야만 하는 강박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인본주의적 종교에서의 의례는 인간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고안한 것으로 간주되므로 이를 깨뜨렸다는 강박적 불안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보다 합리적인 의례에 의해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것이다.
윤리와 종교
지금까지의 내용은 권위주의적 윤리와 인본주의적 윤리의 장에서 본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프롬은 윤리적인 차원을 초월한 종교적 체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종교적 신비체험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비합리적이라고 보는 일반적인 견해와는 달리, 프롬은 신비 체험이 고도의 합리성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체험은 우주와 하나가 되면서도 자아 의식과 통찰력이 극도로 강화되는 상태이다. 그것은 완전한 개성에 대한 체험이면서도 그것을 넘어서 자신의 존재와 세계 전체의 궁극적 근거에 대한 체험이다. 자신이 완성되었음을 느끼는 자긍심의 경험이면서도 자신이 우주라는 베 안의 한 올의 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겸손의 경험이기도 하다.
과학과 종교
프롬은 우주에 대한 경탄과 그 앞에서의 겸손을 의미하는 종교적 감정은 자연과학을 비롯한 다른 어떤 과학에 의해서도 결코 위협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주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는 것은 도리어 인간이 인간 자신에 대해서 자신을 가지면서도 보다 더 겸손하게 되는 데 도움이 된다. 겸손이란 비굴이나 교만에 대한 반대이지 결코 건전한 자신감의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건전한 자신감은 자신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자신에 대한 비판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자세와 분리될 수 없으며, 따라서 겸손과 자신감은 상보 관계에 있는 것이다.
프롬은 종교적 태도를 위협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불합리한 통념이며 사회 구조라고 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삶의 가장 높은 목적을 추구하기를 중단한 채 사회 구조의 요구에 맞추어서 자신이 만들어낸 경제적 메커니즘을 섬기는 도구가 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자기의 행복과 영혼의 성장보다는 능률과 성공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진정한 종교의 사멸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반면에, 프롬은 ‘인간은 죽었다’고 보고 있다. 19세기에 일어났던 교회와 국가, 가족의 권위에 대한 싸움을 중단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복능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이러한 복종은 귀족적인 소수의 인간들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조직에 대한 복종이다. ‘조직인’은 자신이 복종하고 있음을 자각하지 않고, 단지 합리적이며 실제적인 필요에 따라 일한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불안하고 원칙이나 신념이 없으며 전진한다는 목표 이외에는 아무런 목표도 갖고 있지 않다.
요즘은 종교가 다시 부흥되는 것 같지만 사람들이 사실상 믿는 것은 신이 아니라 물질과 권력의 힘이며, 사람들은 종교가 그러한 물질과 권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에게 기도하고 의지한다. 이런 의미에서 프롬은 현대인의 종교적 태도를 세 살 난 어린애의 상태와 비교한다. 아버지가 필요할 때는 아버지를 찾으며 울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놀이에 빠져 있는 어린애와 같다는 것이다. 물론 중세와 같은 종교적 문화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은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신을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아버지요 어머니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의 뜻에 따라서 살고, 구원을 삶의 최고의 관심사로 여겼다는 점에서 신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점에서 프롬은 중세인들의 종교적 태도를 아버지의 가르침과 원칙을 자기의 생활에 받아들이기 시작한 여덟 살 난 어린애에 비교하고 있으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의 종교의 사멸과는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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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2.21
  • 저작시기2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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