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탁사 최병헌의 삶
2. 탁사의 종교관
1) 개신교 수용시기 지식인의 고민
2) 성산명경
3) 만종일련
4) 만종일련에서 발췌
2. 탁사의 종교관
1) 개신교 수용시기 지식인의 고민
2) 성산명경
3) 만종일련
4) 만종일련에서 발췌
본문내용
의 고기라는 뜻으로 여러 종교는 하나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는 하나님 개념으로 동 서양의 모든 종교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식은 조선인의 하나님을 기독교의 하나님과 만나게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던 아펜젤러의 선교정신과 다르지 않았다. 또한 탁사는 ‘예로부터 성스런 황제와 총명한 임금, 어진 선비와 학자들이 상천주재(上天主宰)를 존경하지 않음이 없으니 상서(尙書)에 상제를 존칭한 것이 49곳이고 모시(毛詩)에는 39곳’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유가에서 말하는 하늘(天)과 기독교의 하나님은 다른 개념이나, 유가의 상제(上帝)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은 존재라는 것, 즉 이런 식의 차이는 양교의 종지에 남아있는 인식상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다. “형체로서 하늘이라 하고 그 주재로서 상제인데 상제는 하늘과 특별히 다르거늘 유서에서는 분간 없이 일체로 말삼하야...’ 성산명경 14-15쪽
나아가 탁사는 하늘과 상제에 대한 인식상의 혼란을 일컬어, 이치는 하나인데 만물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리일분수(理一分殊)론으로 설명해 갔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유가성현들이 상제를 경외하며 숭배치 아니한 이가 없고 이 유가에서 경외하는 상제는 도가에서 존하는 옥황상제나 현천상제나 元是天尊이 아니오, 천지를 관리하시는 조화의 주재를 칭함이니 아소교회에서 독일부이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하나라. 시서논맹의 서를 궁구하건데 人神의 관계가 敬畏崇祀에 불과하고 상주의 친애하신 은전과 응허의 立約이 없으며 천국의 신민과 영생의 리가 없으니 이는 주 예수의 대속구령 하신 리를 不知不問함이라 유서의 종지가 유신적 관념이 없다하지 못하나 자비의 은전이 없고 장래의 화복은 선악을 쫓아 자손에게까지 이른다고 하였고...” 만종일련 13-14쪽 경외상제 편
여기서 탁사는 기독교와 유교의 같음과 다름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타종교와의 연속성을 인정하였으나 그리스도 복음과 타종교와의 사이에서 연속성을 부정하였다. 탁사는 그 이유를 비록 유가의 상제개념에 구원의 약속이 없다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친애의 인격신이 아니라 다만 인간이 경외하고 제사하는 신이며 천국백성과 영생의 이치가 없다는 것에서 찾았다. 어쨌든 그가 유교의 상제에서 유신적 관념을 보았고 유교의 종지가 기독의 진리와 다른 것은 다만 그들이 예수의 대속구원의 이치에 무지한 연고라 단정하고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탁사가 시도한 상제중심의 종교변증은 기독교의 교리를 만종의 개념과 사고의 틀로 다시 해석하는 것이었다. 만종을 일이관지하는 일련으로서의 상제의 존재를 증명하고 여기에서 만종의 다름이 상제담론 안에서 하나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소중한 신학적 성과였다.
4)만종일련에서 발췌 만종일련에서 유교와 개신교에 대한 최병헌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을 발췌해 보았다.
“유교의 요소를 개론한다면, 옛날의 어진 이와 성인이 상제를 공경하고 두려워함은 유신론의 관념이 있는 듯 하나, 예수교의 하늘의 아버지 또는 자비로우신 주님이라는 일컬음이 없고, 다만 존엄하다 할 뿐이요. 친하고 사랑함이 없었으니,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없고, 또 주님의 성신께서 우리들 마음 가운데 위치하여 몸은 성전이 되고 모든 일을 인도하여 주신다는 한토막의 말도 없는 것이다.” 최병헌 저, 박혜선 역, ‘만종일련’, 성광문화사, 1985, 64쪽
“전욱(頊)임금이 제사의 도리를 처음 마련하심으로 우순(虞舜)이 요 임금에게서 선위를 받고 상제와 육종(六宗)과 산천에 제사하고 여러 귀신에게도 제사하였으니, 이것은 일월 성신과 오악과 사독(四瀆)과 바람 비 우레의 귀신과 분묘와 구릉의 모든 귀신을 제사한 것이니, 또한 숭배하는 귀신이 많은 다신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최병헌 저, 박혜선 역, ‘만종일련’, 성광문화사, 1985, 65쪽
최병헌 약력
1858충북제천 현좌면 신월리에 출생, 20세까지 향리에서 한학을 수학
1875 처음 과거 치르다
1880 영환지략을 읽다
1882년 임오군란을 목격하고 보은으로 귀향
1883 김노득과 결혼
1888 아펜젤러와 존스 목사를 만나 한문성경을 받다
1889 배재학당 한학부 교원으로 부임 신약성경 한글번역 시작
1892 마지막 과거로 경무대 정시에 응시했으나 실패
1893년 기독교로 개종을 결심한 후 세례 설교권을 가진 권사 되다
1894 대동서시를 열고 민중에게 서책을 열람케 하다
1895 농상공부 주사로 관직에 나아가다
1896 정동교회 안에 엡
나아가 탁사는 하늘과 상제에 대한 인식상의 혼란을 일컬어, 이치는 하나인데 만물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리일분수(理一分殊)론으로 설명해 갔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유가성현들이 상제를 경외하며 숭배치 아니한 이가 없고 이 유가에서 경외하는 상제는 도가에서 존하는 옥황상제나 현천상제나 元是天尊이 아니오, 천지를 관리하시는 조화의 주재를 칭함이니 아소교회에서 독일부이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하나라. 시서논맹의 서를 궁구하건데 人神의 관계가 敬畏崇祀에 불과하고 상주의 친애하신 은전과 응허의 立約이 없으며 천국의 신민과 영생의 리가 없으니 이는 주 예수의 대속구령 하신 리를 不知不問함이라 유서의 종지가 유신적 관념이 없다하지 못하나 자비의 은전이 없고 장래의 화복은 선악을 쫓아 자손에게까지 이른다고 하였고...” 만종일련 13-14쪽 경외상제 편
여기서 탁사는 기독교와 유교의 같음과 다름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타종교와의 연속성을 인정하였으나 그리스도 복음과 타종교와의 사이에서 연속성을 부정하였다. 탁사는 그 이유를 비록 유가의 상제개념에 구원의 약속이 없다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친애의 인격신이 아니라 다만 인간이 경외하고 제사하는 신이며 천국백성과 영생의 이치가 없다는 것에서 찾았다. 어쨌든 그가 유교의 상제에서 유신적 관념을 보았고 유교의 종지가 기독의 진리와 다른 것은 다만 그들이 예수의 대속구원의 이치에 무지한 연고라 단정하고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탁사가 시도한 상제중심의 종교변증은 기독교의 교리를 만종의 개념과 사고의 틀로 다시 해석하는 것이었다. 만종을 일이관지하는 일련으로서의 상제의 존재를 증명하고 여기에서 만종의 다름이 상제담론 안에서 하나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소중한 신학적 성과였다.
4)만종일련에서 발췌 만종일련에서 유교와 개신교에 대한 최병헌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을 발췌해 보았다.
“유교의 요소를 개론한다면, 옛날의 어진 이와 성인이 상제를 공경하고 두려워함은 유신론의 관념이 있는 듯 하나, 예수교의 하늘의 아버지 또는 자비로우신 주님이라는 일컬음이 없고, 다만 존엄하다 할 뿐이요. 친하고 사랑함이 없었으니,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없고, 또 주님의 성신께서 우리들 마음 가운데 위치하여 몸은 성전이 되고 모든 일을 인도하여 주신다는 한토막의 말도 없는 것이다.” 최병헌 저, 박혜선 역, ‘만종일련’, 성광문화사, 1985, 64쪽
“전욱(頊)임금이 제사의 도리를 처음 마련하심으로 우순(虞舜)이 요 임금에게서 선위를 받고 상제와 육종(六宗)과 산천에 제사하고 여러 귀신에게도 제사하였으니, 이것은 일월 성신과 오악과 사독(四瀆)과 바람 비 우레의 귀신과 분묘와 구릉의 모든 귀신을 제사한 것이니, 또한 숭배하는 귀신이 많은 다신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최병헌 저, 박혜선 역, ‘만종일련’, 성광문화사, 1985, 65쪽
최병헌 약력
1858충북제천 현좌면 신월리에 출생, 20세까지 향리에서 한학을 수학
1875 처음 과거 치르다
1880 영환지략을 읽다
1882년 임오군란을 목격하고 보은으로 귀향
1883 김노득과 결혼
1888 아펜젤러와 존스 목사를 만나 한문성경을 받다
1889 배재학당 한학부 교원으로 부임 신약성경 한글번역 시작
1892 마지막 과거로 경무대 정시에 응시했으나 실패
1893년 기독교로 개종을 결심한 후 세례 설교권을 가진 권사 되다
1894 대동서시를 열고 민중에게 서책을 열람케 하다
1895 농상공부 주사로 관직에 나아가다
1896 정동교회 안에 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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