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적 성격을 강하게 심어왔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점차 그리스도의 우주적 가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너무 많은 세월동안 너무 작은 그리스도를 보았던 것이다. 현재의 그리스도의 통치를 개인의 마음이나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신앙인들의 고립된 집단에 편리한대로 제한시켜 그의 위대함을 약화시키는 신학을 조심해야 한다. 설교에서 예수의 균형 있는 주되심을 회복하는 것은 교회와 강단이 자체의 갱신을 위해 물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균형 있는 복음이 선포되거나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예수가 개인의 구주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세상의 주이시라는 기독교의 신앙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2) 현실적이며 초월적인 역사
균형 있는 복음을 향한 설교는 역사를 진지하게 이해해야 한다.
바람직한 역사관은 현실적이며 동시에 초월적이다. 대체로 신자들은 역사를 진지하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자들은 두 가지 영역, 삶의 모든 조건을 포함하는 내세와 영원, 정치의 세계와 기도의 세계, 자연의 질서와 은혜의 질서, 사랑과 정의, 또는 개인과 제도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이유는 각 영역이 다른 영역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즉 정의에 대한 진지한 헌신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복음을 듣게 된다. 만일 신자들이 약자들을 돕고 그들을 위해 외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설교자는 청중을 역사 속에 더욱 진지하게 참여하도록 깨우쳐야 한다. 신자들은 자신들을 불의한 일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3) 구약과 신약의 말씀
균형 있는 복음을 위한 설교는 구약과 신약성경 모두에 근거를 둔다. 그런 설교는 인권, 전쟁과 평화, 빈곤, 인구 억제, 환경보존 등과 같은 공동적 관심으로 향한다. 바로 사회적 문제에 관여하여야 하는데 그것을 염려하는 설교자는 개인적 도덕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에서 확립된 정의를 위한 공동의 신앙과 책임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하고 있는 구약과 신약성경을 진지하게 이해하지 않는데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설교 사역은 두 성경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균형 있는 복음에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성경은 오직 유일한 하나님의 관심이 각 개인의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 그 창조의 보존뿐만 아니라 남녀의 구원에도 관심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교회가 자체의 생명 보존만을 위해 그 자원들을 사용하고 확장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힘을 잘못 사용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4) 개인과 제도의 변화
균형 있는 복음을 전하는 설교는 개인들과 그들의 사회 제도들 모두를 위한 변화의 힘을 강조한다. 즉, 설교자는 정치적 사회적 정의뿐 아니라 또한 개인의 구원에 대한 관심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일은 부분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실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많은 설교자들이 죄는 절대적으로 개인에게 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과 싸우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나 상담의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개인의 문제들이 사회적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교자는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가르침과 모범을 보여줌으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사람들의 관심의 주변으로부터 중심으로 강력하게 옮겨 놓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강한 자들과 가진 자들에 의해 쉽게 희생당한 이 땅의 작고 약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셨다는 것을 믿는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설교 사역에서 도움을 요구하는 자들을 위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
4. 복음 선포의 실제
지금가지 설교자가 충실해야 할 복음의 내용들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한 가지 더 다루어야 할 것은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방법이다. 모든 설교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복음을 직접 말하는 것이다. 설교학적 순환에 의하며, 처음에 말씀이고(heard), 그 다음에 들은 말씀으로 믿게 되며(believed), 하나의 고백(confession)을 일으키어 다시 그 말씀 선포대로 돌아가게 된다.
복음 선포 즉,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인간을 위해 행하신 것에 관한 현재시제의 선언은 사람들에게 신앙적 반응을 불러일으키어 말씀과 만찬으로 다시 모이도록 인도하여 여기에서 다시 동일한 기쁜 소식이 새롭게 들려진다.
1) 복음 선포의 문법
복음을 선포하는 문법은 시제, 태, 그리고 인칭의 세 분야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첫째로 현재 시제로 표현하여야 한다. 과거의 하나님이 아닌 지금 여기에 계신 하나님을 선포해야 한다. 둘째로, 복음의 주체인 하나님, 그리스도, 또는 성령의 활동을 능동적 동사로 표현하여야 한다. 셋째로 1인칭을 2인칭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이다. 신약에 나타나는 용서의 복음과 축복의 복음은 “너를 위하여”라는 분명한 성격이 있다.
2) 복음 선포의 형태
첫째, 특별한 인간의 문제나 상황을 다루어야 한다. 이것은 설교에서 복음을 말하는 것을 예전형식에 갇힌 선포와 다르게 만든다. 둘째, 확신을 가지고 말하라. 복음을 직접 말하는 것은 확신 있게 말하는 것이다.
결 론
21세기를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설교자들은 복음의 균형에 대한 신학적 이해로부터 변하는 사회에서의 설교 사역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한다.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설교에서 전인적(영, 혼, 육) 목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모든 인간의 제도와 또한 개인의 문제들을 기독교화 하려는 목적을 반영하기 위해 특별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강단은 인간의 영적 필요를 인간의 육체적 필요와 함께 조화시켜야 한다. 모든 설교에서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차원을 함께 다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설교자는 설교를 자의적으로 개인적 범주와 사회적 범주로 나누기보다는 오히려 청중들의 삶의 전 영역을 복음과 만나게 해야 한다.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성경 본문으로 들어 갈 때부터 설교자 주위의 환경을 그대로 가지고 가야 한다. 그래서 그 대가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균형 있는 복음, 즉 온전한 복음을 끝까지 증거 해야 한다.
균형 있는 복음이 선포되거나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예수가 개인의 구주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세상의 주이시라는 기독교의 신앙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2) 현실적이며 초월적인 역사
균형 있는 복음을 향한 설교는 역사를 진지하게 이해해야 한다.
바람직한 역사관은 현실적이며 동시에 초월적이다. 대체로 신자들은 역사를 진지하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자들은 두 가지 영역, 삶의 모든 조건을 포함하는 내세와 영원, 정치의 세계와 기도의 세계, 자연의 질서와 은혜의 질서, 사랑과 정의, 또는 개인과 제도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이유는 각 영역이 다른 영역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즉 정의에 대한 진지한 헌신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복음을 듣게 된다. 만일 신자들이 약자들을 돕고 그들을 위해 외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설교자는 청중을 역사 속에 더욱 진지하게 참여하도록 깨우쳐야 한다. 신자들은 자신들을 불의한 일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3) 구약과 신약의 말씀
균형 있는 복음을 위한 설교는 구약과 신약성경 모두에 근거를 둔다. 그런 설교는 인권, 전쟁과 평화, 빈곤, 인구 억제, 환경보존 등과 같은 공동적 관심으로 향한다. 바로 사회적 문제에 관여하여야 하는데 그것을 염려하는 설교자는 개인적 도덕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에서 확립된 정의를 위한 공동의 신앙과 책임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하고 있는 구약과 신약성경을 진지하게 이해하지 않는데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설교 사역은 두 성경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균형 있는 복음에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성경은 오직 유일한 하나님의 관심이 각 개인의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 그 창조의 보존뿐만 아니라 남녀의 구원에도 관심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교회가 자체의 생명 보존만을 위해 그 자원들을 사용하고 확장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힘을 잘못 사용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4) 개인과 제도의 변화
균형 있는 복음을 전하는 설교는 개인들과 그들의 사회 제도들 모두를 위한 변화의 힘을 강조한다. 즉, 설교자는 정치적 사회적 정의뿐 아니라 또한 개인의 구원에 대한 관심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일은 부분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실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많은 설교자들이 죄는 절대적으로 개인에게 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과 싸우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나 상담의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개인의 문제들이 사회적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교자는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가르침과 모범을 보여줌으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사람들의 관심의 주변으로부터 중심으로 강력하게 옮겨 놓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강한 자들과 가진 자들에 의해 쉽게 희생당한 이 땅의 작고 약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셨다는 것을 믿는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설교 사역에서 도움을 요구하는 자들을 위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
4. 복음 선포의 실제
지금가지 설교자가 충실해야 할 복음의 내용들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한 가지 더 다루어야 할 것은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방법이다. 모든 설교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복음을 직접 말하는 것이다. 설교학적 순환에 의하며, 처음에 말씀이고(heard), 그 다음에 들은 말씀으로 믿게 되며(believed), 하나의 고백(confession)을 일으키어 다시 그 말씀 선포대로 돌아가게 된다.
복음 선포 즉,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인간을 위해 행하신 것에 관한 현재시제의 선언은 사람들에게 신앙적 반응을 불러일으키어 말씀과 만찬으로 다시 모이도록 인도하여 여기에서 다시 동일한 기쁜 소식이 새롭게 들려진다.
1) 복음 선포의 문법
복음을 선포하는 문법은 시제, 태, 그리고 인칭의 세 분야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첫째로 현재 시제로 표현하여야 한다. 과거의 하나님이 아닌 지금 여기에 계신 하나님을 선포해야 한다. 둘째로, 복음의 주체인 하나님, 그리스도, 또는 성령의 활동을 능동적 동사로 표현하여야 한다. 셋째로 1인칭을 2인칭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이다. 신약에 나타나는 용서의 복음과 축복의 복음은 “너를 위하여”라는 분명한 성격이 있다.
2) 복음 선포의 형태
첫째, 특별한 인간의 문제나 상황을 다루어야 한다. 이것은 설교에서 복음을 말하는 것을 예전형식에 갇힌 선포와 다르게 만든다. 둘째, 확신을 가지고 말하라. 복음을 직접 말하는 것은 확신 있게 말하는 것이다.
결 론
21세기를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설교자들은 복음의 균형에 대한 신학적 이해로부터 변하는 사회에서의 설교 사역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한다.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설교에서 전인적(영, 혼, 육) 목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모든 인간의 제도와 또한 개인의 문제들을 기독교화 하려는 목적을 반영하기 위해 특별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강단은 인간의 영적 필요를 인간의 육체적 필요와 함께 조화시켜야 한다. 모든 설교에서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차원을 함께 다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설교자는 설교를 자의적으로 개인적 범주와 사회적 범주로 나누기보다는 오히려 청중들의 삶의 전 영역을 복음과 만나게 해야 한다.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성경 본문으로 들어 갈 때부터 설교자 주위의 환경을 그대로 가지고 가야 한다. 그래서 그 대가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균형 있는 복음, 즉 온전한 복음을 끝까지 증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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