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차
서론: 평화통일과 북한 핵문제 우선해결
본론
1, 1950~60년대의 남북관계
2,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대북정책
3, 1980~90년대 한국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
4, 한반도의 분단 고착화와 정전
5, 체제정비 하의 남북대결관계6, 대화 있는 남북의 대결관계7, 관계진전을 위한 대화추진8, 관계재정립을 위한 대화공세 1) 1972년 7.4공동성명 2)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결론
참고자료
서론: 평화통일과 북한 핵문제 우선해결 한국정부의 평화통일구상은 대북정책에는 하나의 방법이자 통일의 중요한 원칙이다. 박정희 시대부터 평화통일은 한국정부의 중요선언 구호가 되고 있었다. 평화통일을 선호하는 하는 한국정부에게 셋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 한국전쟁의 역사경험이다. 둘째, 한국의 경제력이다. 셋째, 한국의 도덕적 공격무기로 유용하다. 특히1980년대부터 한국의 산업화의 성공은 경제협력의 방식으로 점진적 통일을 도모할 수 있는 물적 기반과 합리적이고 평화적 통일방법을 제공하였다. 1990년대에 와서
서론: 평화통일과 북한 핵문제 우선해결
본론
1, 1950~60년대의 남북관계
2,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대북정책
3, 1980~90년대 한국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
4, 한반도의 분단 고착화와 정전
5, 체제정비 하의 남북대결관계6, 대화 있는 남북의 대결관계7, 관계진전을 위한 대화추진8, 관계재정립을 위한 대화공세 1) 1972년 7.4공동성명 2)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결론
참고자료
서론: 평화통일과 북한 핵문제 우선해결 한국정부의 평화통일구상은 대북정책에는 하나의 방법이자 통일의 중요한 원칙이다. 박정희 시대부터 평화통일은 한국정부의 중요선언 구호가 되고 있었다. 평화통일을 선호하는 하는 한국정부에게 셋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 한국전쟁의 역사경험이다. 둘째, 한국의 경제력이다. 셋째, 한국의 도덕적 공격무기로 유용하다. 특히1980년대부터 한국의 산업화의 성공은 경제협력의 방식으로 점진적 통일을 도모할 수 있는 물적 기반과 합리적이고 평화적 통일방법을 제공하였다. 1990년대에 와서
본문내용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하며, 다섯째,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발효 후 1개월 안에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남북기본합의서와 같이 북한에 의해서 무효화되었다. 한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북한은 이런 남북대화에 나온 것은 “한국의 흡수통일방지 및 남북한 간의 체제공존을 확보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남북합의서 채택에 호응해 온 것이라는 것이다.”286 다시 말하면 남북대화와 남북한의 합의는 실질적 문제해결보다는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었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남북한 관계의 발전은 남북한 쌍방 사이의 관계만 아니라 주변국과 특히 한미공맹관계과 정전협정 등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남북한 간의 합의는 형식적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이후 올바른 남북한관계 설정에 있어 일종의향도 역할을 하였고, 또한 북한의 핵무장의 불법성을 지적, 비판하는 근거문서로 가능하게 되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제5공화국 전두환정부는 「통일되고 독립된 근대적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평화통일을 향한 통일정책을 제시하였다. 평화노력의 한 고리로 처음 남북관계정상화를 주장하였다. 더욱 구체적인 조치는 「20개 시범실천사업」중의 17조부터 20조까지 에서 잘 나타났다. 노태우정부는 ‘7.7선언’을 통해 서 남북관계정상화가 아닌 북미관계정상화를 제의함으로서 새로운 평화구상을 했다. 김영삼정부에 이르기까지 핵문제가 떠오르면서 한반도평화체제 구축문제와 한반도 비핵화는 대북정책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95년 8.15광복절에 제시된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3원칙」, 1996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제시된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협력」 및 1997년 광복절 제시된 「평화정착을 위한 4대원칙」등이 감영삼정부의 우려를 반영하는 정책지향이다. 전두환정부의 남북대화 제의와 노태우 정부의 북미대화 요구와 달리 김영삼정부는 한반도평화정착을 위한 4자회담을 제시하였다. 이런 대북평화공세를 하면서 한국정부는 한미동맹관계를 꾸준히 강화함으로서 북한의 도발이나 북핵 위협에 대항하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한반도 안보정세에 큰 파장이 없었지만 1983년, 1987년 두 차례의 데러 기습사건과 1993년 제1차 북핵위기로 인하여 남북관계는 순조롭지 않았다. 이는 한미동맹관계를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1월에 미국방문을 통해 1970년대의 다소 불편하였던 양국관계를 일소하고 1980년대 들어 새로운 차원의 성숙한 동반자관계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한·미 양국은 1984년 5월 서울에서 제16차 연례안보협의회를 갖고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 양국 군의 전력 증강 계획을 적극 추진할 것을 확인하는 한편,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 보장을 위한 대안이 합의될 때까지는 평화유지기구로서 유엔군 사령부를 계속 존속시킬 것”을 재확인하였다.또한 1987년부터 미국의 대한국 FMS(Foreign Military Sales) 종료에 따른 한국군 전력 강화를 위해 미국 장비 구입을 위해 1억 6,300만 달러 규모의 FMS를 공여하기로 합의하고, 한·미 연합방위 능력을 높이기로 하였다. 252 90년대에 들어 노태우 정부는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미국의 지지를 받았으며 김영삼 정부는 북핵에 대비하는데도 4자회담을 통해 미국과 협조를 하였다.
결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경직되어 있던 냉전구조가 깨짐으로서 대단히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상태를 맞게 되었다. 내부적으로도 1988년의 민주화의 바람으로 대북인식에 큰 변화에 따라서 남북 제3의 대화기가 다가왔다. 한국정부는 ‘7.7선언’을 계기로 대화공세를 다시 펴나갔다. 이와 동시에 북한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기도 하였다. 남북관계사에서 북한을 더 이상 대결이나 경쟁의 상대로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변화이다. 한국은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고 북한은 민족공동체의 일원이며 미완성된 민족공동체를 하나로 회복시켜 나가기 위한 협조자요 동반자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북한 핵은 이러한 진전의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1993년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이후 남북미는 대화의 기회를 얻었으나 미국과의 쌍무회담을 통해 제네바합의를 달성하였으며 한국의 강경태도를 빌미로 한국과 의 양자대화가 단절되고 말았다. 남북한 대화 중단상태에서 한국정부는 미국과의 협력을 함으로서 4자안보회담에 참여하면서 민간차원에서도 대북지원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이들 유화적 대북지원이나 다자회담이 북한의 체제우려를 해소하지 못했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무력도발을 빈번히 자행하였다. 이후 회담 재개와 실패를 반복하면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지금의 남북미 대화무드를 겨우 조성할 수 있었다. 회담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남북미 모두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한 탓이라고 생각되며 이번에야 말로 핵을 넘어서서 한반도 평화라는 값진 결과를 도출해내기를 기대한다.
참고 자료
이평규, 대북제재의 전개과정과 효과성 연구, 경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연합뉴스 홈페이지
비핵화 진전 없이는 남북관계 개선 한계, 경향신문(2018년2월22일)
정성장 저, 최근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전망, 북한정책포럼, 2017
남성욱, 임을출 저, 제4차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 전망과 대응, 시선집중 GSnJ_제 214호, 2016
최용환 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남북관계 전망과 경기도의 과제, 경기연구원, 2018
민혜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에 대한 국제법적 분석,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7.
임현진, 정영철, 21세기 통일한국을 위한 모색 : 분단과 통일의 변증법.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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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판문점선언 합의 이행률 70%, 2019, 2, 3.
한국일보, 2차 북미정상회담, 비핵화 향한 큰 걸음 내딛길 기대한다, 2019, 2, 28.
제5공화국 전두환정부는 「통일되고 독립된 근대적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평화통일을 향한 통일정책을 제시하였다. 평화노력의 한 고리로 처음 남북관계정상화를 주장하였다. 더욱 구체적인 조치는 「20개 시범실천사업」중의 17조부터 20조까지 에서 잘 나타났다. 노태우정부는 ‘7.7선언’을 통해 서 남북관계정상화가 아닌 북미관계정상화를 제의함으로서 새로운 평화구상을 했다. 김영삼정부에 이르기까지 핵문제가 떠오르면서 한반도평화체제 구축문제와 한반도 비핵화는 대북정책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95년 8.15광복절에 제시된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3원칙」, 1996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제시된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협력」 및 1997년 광복절 제시된 「평화정착을 위한 4대원칙」등이 감영삼정부의 우려를 반영하는 정책지향이다. 전두환정부의 남북대화 제의와 노태우 정부의 북미대화 요구와 달리 김영삼정부는 한반도평화정착을 위한 4자회담을 제시하였다. 이런 대북평화공세를 하면서 한국정부는 한미동맹관계를 꾸준히 강화함으로서 북한의 도발이나 북핵 위협에 대항하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한반도 안보정세에 큰 파장이 없었지만 1983년, 1987년 두 차례의 데러 기습사건과 1993년 제1차 북핵위기로 인하여 남북관계는 순조롭지 않았다. 이는 한미동맹관계를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1월에 미국방문을 통해 1970년대의 다소 불편하였던 양국관계를 일소하고 1980년대 들어 새로운 차원의 성숙한 동반자관계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한·미 양국은 1984년 5월 서울에서 제16차 연례안보협의회를 갖고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 양국 군의 전력 증강 계획을 적극 추진할 것을 확인하는 한편,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 보장을 위한 대안이 합의될 때까지는 평화유지기구로서 유엔군 사령부를 계속 존속시킬 것”을 재확인하였다.또한 1987년부터 미국의 대한국 FMS(Foreign Military Sales) 종료에 따른 한국군 전력 강화를 위해 미국 장비 구입을 위해 1억 6,300만 달러 규모의 FMS를 공여하기로 합의하고, 한·미 연합방위 능력을 높이기로 하였다. 252 90년대에 들어 노태우 정부는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미국의 지지를 받았으며 김영삼 정부는 북핵에 대비하는데도 4자회담을 통해 미국과 협조를 하였다.
결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경직되어 있던 냉전구조가 깨짐으로서 대단히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상태를 맞게 되었다. 내부적으로도 1988년의 민주화의 바람으로 대북인식에 큰 변화에 따라서 남북 제3의 대화기가 다가왔다. 한국정부는 ‘7.7선언’을 계기로 대화공세를 다시 펴나갔다. 이와 동시에 북한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기도 하였다. 남북관계사에서 북한을 더 이상 대결이나 경쟁의 상대로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변화이다. 한국은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고 북한은 민족공동체의 일원이며 미완성된 민족공동체를 하나로 회복시켜 나가기 위한 협조자요 동반자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북한 핵은 이러한 진전의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1993년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이후 남북미는 대화의 기회를 얻었으나 미국과의 쌍무회담을 통해 제네바합의를 달성하였으며 한국의 강경태도를 빌미로 한국과 의 양자대화가 단절되고 말았다. 남북한 대화 중단상태에서 한국정부는 미국과의 협력을 함으로서 4자안보회담에 참여하면서 민간차원에서도 대북지원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이들 유화적 대북지원이나 다자회담이 북한의 체제우려를 해소하지 못했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무력도발을 빈번히 자행하였다. 이후 회담 재개와 실패를 반복하면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지금의 남북미 대화무드를 겨우 조성할 수 있었다. 회담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남북미 모두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한 탓이라고 생각되며 이번에야 말로 핵을 넘어서서 한반도 평화라는 값진 결과를 도출해내기를 기대한다.
참고 자료
이평규, 대북제재의 전개과정과 효과성 연구, 경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연합뉴스 홈페이지
비핵화 진전 없이는 남북관계 개선 한계, 경향신문(2018년2월22일)
정성장 저, 최근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전망, 북한정책포럼, 2017
남성욱, 임을출 저, 제4차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 전망과 대응, 시선집중 GSnJ_제 214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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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육원, 통일문제의 이해, 2014.
국민일보, 판문점선언 합의 이행률 70%, 2019, 2, 3.
한국일보, 2차 북미정상회담, 비핵화 향한 큰 걸음 내딛길 기대한다, 2019,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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