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들어가며..
프롤로그, 마지막 최고의 단어
제1부 주 은혜 놀라워
제 2부, 비은혜의 사슬 끊기
제3부, 파문의 향기
제4부, 귀머거리 세상을 위한 은혜의 꾸밈음
마치며..
프롤로그, 마지막 최고의 단어
제1부 주 은혜 놀라워
제 2부, 비은혜의 사슬 끊기
제3부, 파문의 향기
제4부, 귀머거리 세상을 위한 은혜의 꾸밈음
마치며..
본문내용
풀어준다. 1년분 잡지를 구독하면 구독이 끝난 후에도 몇 권을 더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연장 구독을 노리고, 무료(gratis)로 보내주는 덤이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가르켜, ‘배은 망덕’(ingrate)하다고 하고 심하게는 불한당(disgrace)라고 욕한다. 이런 갖가지 용어 용례를 보아, 은혜란 분명 놀라운 말이다.
헬라어로 ‘카리스’라는 은혜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기쁘다. 즐겁다’라는 뜻의 동사가 나온다.
상담가 데이빗 시멘즈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했다.
나는 오래전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정서적 문제의 주요 원인 대부분은 다음 두가지로 결론 내릴 수 밖에 없었다. 하나는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은헤와 용서를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하며, 누리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무조건 적인 사랑, 용서,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지 못하는 것이다.
고든 맥도날드는 말한다. “웬만한 일에는 세상도 교회 못지 않거나, 교회보다 낫다. 집을 지어주고, 가난한 자를 먹여주고,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일은 굳이 교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못하는 일이 하나있다. 세상은 은혜를 베풀 수 없다. 이것은 교회가 맡아야 할 절체 절명의 사명을 지적한 말이다. 세상이 은혜를 찾을 곳이 교회 말고 또 어디가 있겠는가?
화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은혜도 개구리처럼 해부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는 사이 생명을 잃고 만다. 완전히 과학적인 취지가 아닌다음에야 그 내장을 보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나는 뉴 카톨릭 백과사전에서 은혜에 대한 무려 13쪽에 달하는 풀이를 읽고나서, 은혜를 해부해서 내장을 파헤치고 싶은 생각이 깨끗이 사라졌다. 생명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1부 주 은혜 놀라워
은혜는 기독교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요, 복수보다 강하고 인종차별보다 강하고, 증오보다 강한 힘을 발하는 영적 신성이다. 사도요한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요1:17)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한 소녀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오 하나님, 나쁜 사람들은 착해지게 해주시고, 착한 사람들은 친절해지게 해주세요’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단체에서는 사과전화를 운영한다. 이는 고객들에게 한 번에 통화료에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전화 서비스다. 신부는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자동 응답기에 죄를 털어 놓는다. 익명으로 이 서비스를 이용해서, 60초짜리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이 매일 200명에 달한다. . 간음은 단골 죄목이다. 강간, 아동 성학대, 살인등 범죄 행위에 대한 고백도 꽤 된다. 알코올 중독자였다가 술을 끊은 한 사람은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18년간 알코올 중독자로 살면서 해를 입혔던 모든 분들께 잘못을 빌고 싶습니다.”
전화벨은 계속 울린다. “
‘죄송하다는 말 밖에 ’ 젊은 여자가 울고 있다. 자기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다섯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시 살아올수만 있다면..’
오염된 공기를 느끼지못하는 도시인들처럼, 우리도 부지 중에 은혜를 비호홉하고 있다. 이미 유치원때부터 시험과 평가를 거쳐 우열반 배정을 받는다. 산수, 과학, 읽기 등 성취도에 따른 점수 매기기가 그때부터 시작되며, 심지어 대인관계나 시민의식도 점수로 환산된다. 모두가 성인판 왕가리기놀이인 냉혹한 서열식 현실 세계에 대한 준비이다. 군대는 철저한 비 은혜집단이다. 모든 군인은 호칭과 제복과 봉급과 행동 수칙이 정해져있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상관에게 복종하고 경례하고, 부하에게 명령한다. 기업은 군대보다 덜하지만, 별차이가 없다. 포드사 직원들은 1급(평사원과 비서)부터 27급(대표이사)까지 등급이 매겨져있다. 어느 기관이나 자기 몫은 자기가 벌어야 한다는 비은혜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패자는 설곳이 없다. 해마다 포츈지는 500대 부자 명단을 내 놓지만, 500대 빈민의 이름을 아무도 모른다. 거식증이라는 질병, 비은혜의 직접적 산물이다. 십대 소녀들이 예쁘고 날씬한 모델을 이상형으로 삼아, 자기도 그렇게 되려고 사력을 다해 굶는 것이다. 거식증은 현대 서구 문명의 괴이한 부산물로 역사상 유례가 없으며, 현대에도 아프리카 같은 곳(날씬한 것보다는 통통한 것을 선호하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소위 평등사회라는 미국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에 일본의 범죄를 연재로 다룬적이 있다. 거기에 제기된 질문, 인구 십만명당 감옥에 가 있는 사람이 미국은 519명인 반면 , 일본은 왜 37명밖에 안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기자는 해답을 찾고자 살인죄로 형을 살고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한 일본인 남자를 인터뷰했다. 그는 감옥에서 15년 있는 동안 면회 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옥에서 나오자 부인과 아들이 오긴 했지만, 절대 자기 동네에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하려고 온 것이었다고 했다. 그 사이에 결혼한 세 딸은 지금 그들 상대도하지 않는다. 손자 손녀도 넷이나 있는 것같은데...,
남자가 슬프게 말했다. 그는 아직, 그들의 사진 조차 본 적이 없다. 일본 사회는 비 은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다. 체면을 중시 하는 문화는 명예를 훼손하는 자에게 발 붙일 곳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실적이 아닌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조차도 비 은혜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있다.
헤밍웨이의 한 소설 세속의 도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어느 스페인인 아버지가 집을 나가 마드리드로 간 아들과 화해하기로 다짐한다. 아버지는 뒤 늦게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엘리베랄’신문에 이런 광고를 낸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 파코는 스페인에서 흔한 이름이다. 아버지가 그곳에 나가자, 파코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800명이나 나와서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헤밍웨이는 가정의 비은혜를 잘 알았다. 신앙이 독실했던 그의 부모(그의 조부모는 복음주의적 휘튼대 출신이다)는 아들의 방종한 삶을 싫었다. 나중에 어머니는 아들이 자기 눈에 뛰는 것 조차 그냥두지 않았다. 아들의 생일에, 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가르켜, ‘배은 망덕’(ingrate)하다고 하고 심하게는 불한당(disgrace)라고 욕한다. 이런 갖가지 용어 용례를 보아, 은혜란 분명 놀라운 말이다.
헬라어로 ‘카리스’라는 은혜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기쁘다. 즐겁다’라는 뜻의 동사가 나온다.
상담가 데이빗 시멘즈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했다.
나는 오래전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정서적 문제의 주요 원인 대부분은 다음 두가지로 결론 내릴 수 밖에 없었다. 하나는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은헤와 용서를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하며, 누리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무조건 적인 사랑, 용서,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지 못하는 것이다.
고든 맥도날드는 말한다. “웬만한 일에는 세상도 교회 못지 않거나, 교회보다 낫다. 집을 지어주고, 가난한 자를 먹여주고,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일은 굳이 교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못하는 일이 하나있다. 세상은 은혜를 베풀 수 없다. 이것은 교회가 맡아야 할 절체 절명의 사명을 지적한 말이다. 세상이 은혜를 찾을 곳이 교회 말고 또 어디가 있겠는가?
화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은혜도 개구리처럼 해부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는 사이 생명을 잃고 만다. 완전히 과학적인 취지가 아닌다음에야 그 내장을 보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나는 뉴 카톨릭 백과사전에서 은혜에 대한 무려 13쪽에 달하는 풀이를 읽고나서, 은혜를 해부해서 내장을 파헤치고 싶은 생각이 깨끗이 사라졌다. 생명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1부 주 은혜 놀라워
은혜는 기독교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요, 복수보다 강하고 인종차별보다 강하고, 증오보다 강한 힘을 발하는 영적 신성이다. 사도요한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요1:17)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한 소녀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오 하나님, 나쁜 사람들은 착해지게 해주시고, 착한 사람들은 친절해지게 해주세요’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단체에서는 사과전화를 운영한다. 이는 고객들에게 한 번에 통화료에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전화 서비스다. 신부는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자동 응답기에 죄를 털어 놓는다. 익명으로 이 서비스를 이용해서, 60초짜리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이 매일 200명에 달한다. . 간음은 단골 죄목이다. 강간, 아동 성학대, 살인등 범죄 행위에 대한 고백도 꽤 된다. 알코올 중독자였다가 술을 끊은 한 사람은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18년간 알코올 중독자로 살면서 해를 입혔던 모든 분들께 잘못을 빌고 싶습니다.”
전화벨은 계속 울린다. “
‘죄송하다는 말 밖에 ’ 젊은 여자가 울고 있다. 자기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다섯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시 살아올수만 있다면..’
오염된 공기를 느끼지못하는 도시인들처럼, 우리도 부지 중에 은혜를 비호홉하고 있다. 이미 유치원때부터 시험과 평가를 거쳐 우열반 배정을 받는다. 산수, 과학, 읽기 등 성취도에 따른 점수 매기기가 그때부터 시작되며, 심지어 대인관계나 시민의식도 점수로 환산된다. 모두가 성인판 왕가리기놀이인 냉혹한 서열식 현실 세계에 대한 준비이다. 군대는 철저한 비 은혜집단이다. 모든 군인은 호칭과 제복과 봉급과 행동 수칙이 정해져있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상관에게 복종하고 경례하고, 부하에게 명령한다. 기업은 군대보다 덜하지만, 별차이가 없다. 포드사 직원들은 1급(평사원과 비서)부터 27급(대표이사)까지 등급이 매겨져있다. 어느 기관이나 자기 몫은 자기가 벌어야 한다는 비은혜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패자는 설곳이 없다. 해마다 포츈지는 500대 부자 명단을 내 놓지만, 500대 빈민의 이름을 아무도 모른다. 거식증이라는 질병, 비은혜의 직접적 산물이다. 십대 소녀들이 예쁘고 날씬한 모델을 이상형으로 삼아, 자기도 그렇게 되려고 사력을 다해 굶는 것이다. 거식증은 현대 서구 문명의 괴이한 부산물로 역사상 유례가 없으며, 현대에도 아프리카 같은 곳(날씬한 것보다는 통통한 것을 선호하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소위 평등사회라는 미국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에 일본의 범죄를 연재로 다룬적이 있다. 거기에 제기된 질문, 인구 십만명당 감옥에 가 있는 사람이 미국은 519명인 반면 , 일본은 왜 37명밖에 안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기자는 해답을 찾고자 살인죄로 형을 살고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한 일본인 남자를 인터뷰했다. 그는 감옥에서 15년 있는 동안 면회 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옥에서 나오자 부인과 아들이 오긴 했지만, 절대 자기 동네에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하려고 온 것이었다고 했다. 그 사이에 결혼한 세 딸은 지금 그들 상대도하지 않는다. 손자 손녀도 넷이나 있는 것같은데...,
남자가 슬프게 말했다. 그는 아직, 그들의 사진 조차 본 적이 없다. 일본 사회는 비 은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다. 체면을 중시 하는 문화는 명예를 훼손하는 자에게 발 붙일 곳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실적이 아닌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조차도 비 은혜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있다.
헤밍웨이의 한 소설 세속의 도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어느 스페인인 아버지가 집을 나가 마드리드로 간 아들과 화해하기로 다짐한다. 아버지는 뒤 늦게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엘리베랄’신문에 이런 광고를 낸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 파코는 스페인에서 흔한 이름이다. 아버지가 그곳에 나가자, 파코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800명이나 나와서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헤밍웨이는 가정의 비은혜를 잘 알았다. 신앙이 독실했던 그의 부모(그의 조부모는 복음주의적 휘튼대 출신이다)는 아들의 방종한 삶을 싫었다. 나중에 어머니는 아들이 자기 눈에 뛰는 것 조차 그냥두지 않았다. 아들의 생일에, 케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