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다. 계기판을 얼핏 보니 F-4E의 속도는 단 5초만에 130노트 (240km/h) 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쯤 이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낙하산의 드래그 슈트 (착륙시 펴져 속도를 줄이는 낙하산) 가 펴지며 속도가 다시 급히 줄어들었다. 아쉬웠지만, 거기까지였다. 이건 하이택싱 체험이지 비행 체험이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거친 숨을 다시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재밌죠? 그래도 이 맛에 사는 거예요.”
“힘이...대단하네요, 정말.”
그렇지만 아직도 내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동치고 있었다.
이제 제 153전투비행대대 소속의 F-4E 세 대는 다시 유도로를 따라 격납고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2번기 후방석에 탄 여학생 참가자와 3번기 후방석의 외국 항공소년단원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자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이제 하이택싱 체험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조종사분께서 다시 한 번 말을 꺼냈다.
“관제탑에 인사 한 번 하지?”
“네? 어떻게 하는...”
“스로틀에 작은 버튼 누르고 얘기하면 우리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들려.”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여기는 콘도르 폭스트롯 1,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울산과학고등학교 @@@.”
그러자 곧 대답이 들려왔다.“라져. 콘도르 폭스트롯,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나도 모르게 이름까지 밝힌 걸 듣고 조종사분은 껄껄 웃으셨다.
몇 분 뒤, 격납고 바로 앞에서 전투기는 멈춰섰다. 그리고 캐노피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블랙 바이저를 원래대로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조심조심 사다리를 내려와 단단한 지상에 발을 내딛었다. 나는 헬멧을 벗고 옆구리에 끼운 채 조종사분과 함께 걸어 나왔다. 사실 남자 치고 (혹은 여자라도) 이 상황에서 한 번쯤 폼을 잡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원래는 비행을 마치고 난 뒤에 헬멧은 덮개를 씌워 헬멧 가방에 넣는 것이 맞지만, 그 자세를 꼭 한 번 취해 보고 싶은 생각이 더 컸다. 조금 뒤엔 하이택싱 체험자 세 명과 각각의 전방석 조종사분들이 다시 모여 기념촬영 및 인터뷰를 했다. 나는 말 그대로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었다. 언제까지나 그랬으면 정말 좋았으련만.
3박 4일 캠프의 끝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나는 하이택싱을 마치자마자 수료식을 위해 다시 전투비행단 사령부 건물로 돌아가 황급히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 때 내 명찰과 제 153전투비행대대 패치, 조종사 패치는 가져가도 된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가져와 아직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마지막 일정으로 수료식이 이어지고, 우리는 실제 조종사들이 훈련 과정을 마쳤을 때 주어지는 ‘빨간 마후라’ 대신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주황 마후라’를 수여받았다. 그 때 느껴지던 이상한 먹먹함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마무리 인터뷰를 한 뒤에 모두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2011 공군항공우주캠프의 공식적인 일정은 막을 내렸다.
Epilogue
공군항공우주캠프를 갔다온 뒤 며칠 동안이나 나는 극심한 무력감과 권태감에 시달렸다.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정신적인 문제였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그 실체였다는 것이 머지않아 드러났다. 내가 하이택싱을 하던 때를 되돌아보았다. 조종사분은 내게 조종사같은 힘든 일은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직도 계속해서 날고 계신다. 그런 사람들을 조종석으로 이끄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내가 처음 조종석에 앉았을 때의 그 느낌을 떠올렸다. 좁고, 덥고, 온 몸을 조여왔다. 그러나 편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귀를 찢는 120dB의 격렬한 엔진음에서 느껴지는 그 떨림, 그 울림, 그 설렘. 그런 모든 것이 바로 그들 조종사들을 기름 냄새 가득한 조종석에 붙잡아 두는 본질적인 이유가 아닐까.
공군항공우주캠프는 끝났다. 하지만 공군항공우주캠프는 끝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사건이었지만 그것이 내 삶에 너무나 큰 영향을, 아직도 계속해서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공군항공우주캠프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진로에 관련된 고민은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 역시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그 때를 추억한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대한민국 공군 제 17전투비행단 제 153전투비행대대 소속 콘도르 폭스트롯 편대 1번기 WSO, 중위 @@@’이라는, 그 한 시간 동안의 내 모습을 소중히 간직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조종석을 결코 잊지 못한다.
“재밌죠? 그래도 이 맛에 사는 거예요.”
“힘이...대단하네요, 정말.”
그렇지만 아직도 내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동치고 있었다.
이제 제 153전투비행대대 소속의 F-4E 세 대는 다시 유도로를 따라 격납고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2번기 후방석에 탄 여학생 참가자와 3번기 후방석의 외국 항공소년단원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자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이제 하이택싱 체험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조종사분께서 다시 한 번 말을 꺼냈다.
“관제탑에 인사 한 번 하지?”
“네? 어떻게 하는...”
“스로틀에 작은 버튼 누르고 얘기하면 우리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들려.”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여기는 콘도르 폭스트롯 1,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울산과학고등학교 @@@.”
그러자 곧 대답이 들려왔다.“라져. 콘도르 폭스트롯,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나도 모르게 이름까지 밝힌 걸 듣고 조종사분은 껄껄 웃으셨다.
몇 분 뒤, 격납고 바로 앞에서 전투기는 멈춰섰다. 그리고 캐노피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블랙 바이저를 원래대로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조심조심 사다리를 내려와 단단한 지상에 발을 내딛었다. 나는 헬멧을 벗고 옆구리에 끼운 채 조종사분과 함께 걸어 나왔다. 사실 남자 치고 (혹은 여자라도) 이 상황에서 한 번쯤 폼을 잡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원래는 비행을 마치고 난 뒤에 헬멧은 덮개를 씌워 헬멧 가방에 넣는 것이 맞지만, 그 자세를 꼭 한 번 취해 보고 싶은 생각이 더 컸다. 조금 뒤엔 하이택싱 체험자 세 명과 각각의 전방석 조종사분들이 다시 모여 기념촬영 및 인터뷰를 했다. 나는 말 그대로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었다. 언제까지나 그랬으면 정말 좋았으련만.
3박 4일 캠프의 끝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나는 하이택싱을 마치자마자 수료식을 위해 다시 전투비행단 사령부 건물로 돌아가 황급히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 때 내 명찰과 제 153전투비행대대 패치, 조종사 패치는 가져가도 된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가져와 아직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마지막 일정으로 수료식이 이어지고, 우리는 실제 조종사들이 훈련 과정을 마쳤을 때 주어지는 ‘빨간 마후라’ 대신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주황 마후라’를 수여받았다. 그 때 느껴지던 이상한 먹먹함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마무리 인터뷰를 한 뒤에 모두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2011 공군항공우주캠프의 공식적인 일정은 막을 내렸다.
Epilogue
공군항공우주캠프를 갔다온 뒤 며칠 동안이나 나는 극심한 무력감과 권태감에 시달렸다.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정신적인 문제였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그 실체였다는 것이 머지않아 드러났다. 내가 하이택싱을 하던 때를 되돌아보았다. 조종사분은 내게 조종사같은 힘든 일은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직도 계속해서 날고 계신다. 그런 사람들을 조종석으로 이끄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내가 처음 조종석에 앉았을 때의 그 느낌을 떠올렸다. 좁고, 덥고, 온 몸을 조여왔다. 그러나 편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귀를 찢는 120dB의 격렬한 엔진음에서 느껴지는 그 떨림, 그 울림, 그 설렘. 그런 모든 것이 바로 그들 조종사들을 기름 냄새 가득한 조종석에 붙잡아 두는 본질적인 이유가 아닐까.
공군항공우주캠프는 끝났다. 하지만 공군항공우주캠프는 끝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사건이었지만 그것이 내 삶에 너무나 큰 영향을, 아직도 계속해서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공군항공우주캠프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진로에 관련된 고민은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 역시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그 때를 추억한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대한민국 공군 제 17전투비행단 제 153전투비행대대 소속 콘도르 폭스트롯 편대 1번기 WSO, 중위 @@@’이라는, 그 한 시간 동안의 내 모습을 소중히 간직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조종석을 결코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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