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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 시 리 아
Ⅰ. 서론
Ⅱ. 시리아 개황 : 시리아의 사회와 지정학적 위치를 중심으로
시리아의 사회
1. 시리아의 인종, 환경, 문화, 생활방식
2. 시리아의 제도와 사회체제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
Ⅲ. 시리아의 역사 : 양차 대전 기간 이후에서 현재까지
양차 대전 기간
독립 이후기
통일아랍공화국 시기 (1958~1961)
바아스당 정권기 (1963~1970)
하페즈 아사드 대통령의 집권기
바샤르 아사드 現 대통령의 집권기
Ⅳ. 바아스당, 군부, 알라위파 : 시리아의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
바아스당의 뿌리 : 바아스 운동
알라위파란 무엇인가?
바아스당과 군부
바아스당과 알라위파
군부와 알라위파
Ⅴ. 시리아 사태 : 혁명을 넘어 내전으로
시리아 민주화 혁명의 전개
시리아 민주화 혁명의 장기화 이유
1. 국내적 요인
2. 국외적 요인
Ⅵ. 결론 : 민중의 힘은 군부-정당-종파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목 차 : 이 집 트
Ⅰ. 서론
Ⅱ. 이집트 개황 : 이집트의 사회와 역사를 중심으로
이집트의 사회
1. 이집트의 인종, 문화, 생활방식
2. 이집트의 종교와 사회
이집트의 역사 : 영국의 점령부터 민주화 혁명의 성공과 그 이후
1. 영국 점령기 ~ 나세르 혁명 전
2. 나세르 혁명 후 ~ 현재
Ⅲ. 이집트의 정치체제 형성과정
이집트 정치 개괄
이집트의 근대화 : 무함마드 알리의 개혁
나세르와 자유장교단의 군사 쿠데타 : 나세르 혁명
1. 혁명의 배경
2. 혁명의 발발
3. 혁명정권의 개혁노력
나세르 정권
1. 나세르 정권 개관
1] 나세르 정권 전기(前期) : 1952 ~ 1961
2] 나세르 정권 후기(後期) : 1961 ~ 1967
2. 정치적 조처 : 군사정권의 절대적 권력확보 위하여
1] 토지개혁
2] 정치조직의 해체
3. 근대화 정책
1] 전문관료제
2] 경제개혁
4. 나세르이즘
5. 아랍사회주의 강화
1] 사회주의 강화
2] 시리아의 통일아랍공화국 탈퇴
3] 소련의 영향
6. 한계
사다트 정권
1. 사다트, 그는 누구인가
2. 사다트 통치하의 시기구분
3. 사다트 정권과 소련, 미국의 관계
1] 사다트 정권 이전의 소련, 미국의 관계 : 나세르의 외교 정책
2] 사다트 정권의 소련, 미국의 관계
4. 평가
무바라크 정권
1. 무바라크 등장
2. 대내외정책
3. 이스라엘과의 평화유지
Ⅳ. 이집트 혁명 : 30년 독재자를 무너뜨린 군중의 의지 혹은 정의
1. 이집트 혁명의 경과
2. 이집트 혁명의 특수성
1] 세속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후견독재의 성립
2] 권위주의 국가의 고착과 부패
3] 신 자유주의와 경제위기가 강요한 민중들의 고통
4] 이집트 군부의 특수성
Ⅴ. 결론
Ⅰ. 서론
Ⅱ. 시리아 개황 : 시리아의 사회와 지정학적 위치를 중심으로
시리아의 사회
1. 시리아의 인종, 환경, 문화, 생활방식
2. 시리아의 제도와 사회체제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
Ⅲ. 시리아의 역사 : 양차 대전 기간 이후에서 현재까지
양차 대전 기간
독립 이후기
통일아랍공화국 시기 (1958~1961)
바아스당 정권기 (1963~1970)
하페즈 아사드 대통령의 집권기
바샤르 아사드 現 대통령의 집권기
Ⅳ. 바아스당, 군부, 알라위파 : 시리아의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
바아스당의 뿌리 : 바아스 운동
알라위파란 무엇인가?
바아스당과 군부
바아스당과 알라위파
군부와 알라위파
Ⅴ. 시리아 사태 : 혁명을 넘어 내전으로
시리아 민주화 혁명의 전개
시리아 민주화 혁명의 장기화 이유
1. 국내적 요인
2. 국외적 요인
Ⅵ. 결론 : 민중의 힘은 군부-정당-종파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목 차 : 이 집 트
Ⅰ. 서론
Ⅱ. 이집트 개황 : 이집트의 사회와 역사를 중심으로
이집트의 사회
1. 이집트의 인종, 문화, 생활방식
2. 이집트의 종교와 사회
이집트의 역사 : 영국의 점령부터 민주화 혁명의 성공과 그 이후
1. 영국 점령기 ~ 나세르 혁명 전
2. 나세르 혁명 후 ~ 현재
Ⅲ. 이집트의 정치체제 형성과정
이집트 정치 개괄
이집트의 근대화 : 무함마드 알리의 개혁
나세르와 자유장교단의 군사 쿠데타 : 나세르 혁명
1. 혁명의 배경
2. 혁명의 발발
3. 혁명정권의 개혁노력
나세르 정권
1. 나세르 정권 개관
1] 나세르 정권 전기(前期) : 1952 ~ 1961
2] 나세르 정권 후기(後期) : 1961 ~ 1967
2. 정치적 조처 : 군사정권의 절대적 권력확보 위하여
1] 토지개혁
2] 정치조직의 해체
3. 근대화 정책
1] 전문관료제
2] 경제개혁
4. 나세르이즘
5. 아랍사회주의 강화
1] 사회주의 강화
2] 시리아의 통일아랍공화국 탈퇴
3] 소련의 영향
6. 한계
사다트 정권
1. 사다트, 그는 누구인가
2. 사다트 통치하의 시기구분
3. 사다트 정권과 소련, 미국의 관계
1] 사다트 정권 이전의 소련, 미국의 관계 : 나세르의 외교 정책
2] 사다트 정권의 소련, 미국의 관계
4. 평가
무바라크 정권
1. 무바라크 등장
2. 대내외정책
3. 이스라엘과의 평화유지
Ⅳ. 이집트 혁명 : 30년 독재자를 무너뜨린 군중의 의지 혹은 정의
1. 이집트 혁명의 경과
2. 이집트 혁명의 특수성
1] 세속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후견독재의 성립
2] 권위주의 국가의 고착과 부패
3] 신 자유주의와 경제위기가 강요한 민중들의 고통
4] 이집트 군부의 특수성
Ⅴ. 결론
본문내용
1. 시리아의 인종, 환경, 문화, 생활방식
시리아는 지역, 종교, 인종, 언어, 그리고 삶의 방식에 따라 다수의 공동체가 공존하는 사회다. 그리고 각자의 공동체들은 그들 나름의 결속력을 가지고 있는데, 인구의 3분의 2정도가 순니파 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베두인, 촌락민, 도시거주자 등이 판이한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어 공동체 서로간의 동화 내지 융합이 어려운 사회다. 시리아를 관찰해온 한 전문가는 시리아를 “비어있는 중심부”라고 표현했다. 이는 하나의 강력하고 주동적인 세력 없이 표류하는 시리아사회 전반적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시리아 전국민의 15%가 채 안되지만 매우 다양한 종교와 인종들은 지형적, 정신적으로 폐쇄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는 시리아에 존재하는 종교들이 대체적으로 사회와 단절된 채 독립적인 기능을 때문에 볼 수 있는 특이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각자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의 공통적 가치는 사회 주류가 요구하는 가치 위에 존재한다.
종교적인 공동체들은 단순한 신앙집단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이는데, 그들은 일반사람들의 생활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사회 전체에 심각한 불화를 일으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비록 이슬람이 공동체들에게 있어서 핵심적 상징과 문화적 절대성을 행사하지만 나머지 15%의 소수집단들은 일반 무슬림 사회와 구분되는 뿌리깊은 지역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소수의 그룹들은 세속주의적 성향을 띄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평균의 시리아 인들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한편, 1960년대 초중반 시리아에선 많은 수의 비무슬림 상공업 종사자들이나 각종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엑소더스(Exodus)”라고 부를 만큼 활발하게 해외로 이주했다. 그 당시 집권 한 바아스당의 사회주의 노선을 그에 대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시리아 정부는 70년대 중반 이민자들을 다시 국내로 향하게 할 목적으로 법 개정 등, 사회안정화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러한 시리아 정부의 노력 중 하나로 그들의 의회 시스템을 들 수 있다. 그들의 의회 시스템은 역시 프랑스의 의회시스템에 많은 영향을 받은 레바논과 닮아 있다.
아랍인들은 산, 도시, 촌락, 사막 등에 넓게 퍼져서 살고 있다. 비 아랍인들은 대부분이 고립되어 있는 특정지역에 사는 성향을 보이고 있는데, 그들만의 촌락을 꾸려 살아가거나 알레포 북쪽이나 Jazirah 지역 같은 도시나 지방에 자신들의 구역을 설정하여 공동체를 꾸려나간다. 특히 Jazirah지역 같은 경우는 이질적이게도 정착민들 중 비아랍인들의 비율이 다른 인종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Halab지방이나 Jazirah으로 대표되는 비아랍인들 지역들의 주류아랍지역과 구분되는 특징은 중앙집권적 성향을 가진 중앙정부에게 항상 이슈가 되고 있다.
많은 도시거주자들 같은 경우에는 서구의 언어를 아랍어와 더불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높은 교육수준을 보이는 도시거주민들은 프랑스어를 아랍어만큼이나 유창하게 구사한다. 비록 영어의 사용이 큰 증가를 보이고는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더욱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하나의 나라라고 부르기에는 과도할 정도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시리안 인들은 그들의 공동체들에게는 확고한 충성심을 나타내지만 주정부의 정책들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종교간의 갈등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 예로, 만일 아랍 지주가 그의 땅의 대여비용을 올리면 쿠르드인들은 공동체 전체가 그 땅의 사용을 전면 거부 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한다. 시리아에서 보여지는 극단적 이질성과 사회응집력의 결여는 결국 중앙정부의 전국토의 인종의 아랍화가 불러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비록 비 아랍인들에게 의석수의 어느 정도를 할당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정부의 기조는 시리아의 아랍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시도는 원래 지명인 Jabal Druze를 중앙정부 임의로 Jabal al Arab이라고 바꾼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의 많은 국가가 인종적, 종교적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그들 전체를 하나로 묶어 가려는 시도를 하는데 반해, 시리아는 대대로 시리아의 땅에서 살아 왔던 작은 소수 공동체들이 보이는 중앙정부에 대한 적대감과 중앙정부 역시 이슬람만을 강요한 채 다양한 소그룹들을 아랍화 시키려는 무리한 정책과 슬로건 남발로 인해 잠재적 국내분쟁이 심한 나라이다.
시리아는 지역, 종교, 인종, 언어, 그리고 삶의 방식에 따라 다수의 공동체가 공존하는 사회다. 그리고 각자의 공동체들은 그들 나름의 결속력을 가지고 있는데, 인구의 3분의 2정도가 순니파 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베두인, 촌락민, 도시거주자 등이 판이한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어 공동체 서로간의 동화 내지 융합이 어려운 사회다. 시리아를 관찰해온 한 전문가는 시리아를 “비어있는 중심부”라고 표현했다. 이는 하나의 강력하고 주동적인 세력 없이 표류하는 시리아사회 전반적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시리아 전국민의 15%가 채 안되지만 매우 다양한 종교와 인종들은 지형적, 정신적으로 폐쇄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는 시리아에 존재하는 종교들이 대체적으로 사회와 단절된 채 독립적인 기능을 때문에 볼 수 있는 특이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각자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의 공통적 가치는 사회 주류가 요구하는 가치 위에 존재한다.
종교적인 공동체들은 단순한 신앙집단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이는데, 그들은 일반사람들의 생활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사회 전체에 심각한 불화를 일으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비록 이슬람이 공동체들에게 있어서 핵심적 상징과 문화적 절대성을 행사하지만 나머지 15%의 소수집단들은 일반 무슬림 사회와 구분되는 뿌리깊은 지역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소수의 그룹들은 세속주의적 성향을 띄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평균의 시리아 인들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한편, 1960년대 초중반 시리아에선 많은 수의 비무슬림 상공업 종사자들이나 각종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엑소더스(Exodus)”라고 부를 만큼 활발하게 해외로 이주했다. 그 당시 집권 한 바아스당의 사회주의 노선을 그에 대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시리아 정부는 70년대 중반 이민자들을 다시 국내로 향하게 할 목적으로 법 개정 등, 사회안정화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러한 시리아 정부의 노력 중 하나로 그들의 의회 시스템을 들 수 있다. 그들의 의회 시스템은 역시 프랑스의 의회시스템에 많은 영향을 받은 레바논과 닮아 있다.
아랍인들은 산, 도시, 촌락, 사막 등에 넓게 퍼져서 살고 있다. 비 아랍인들은 대부분이 고립되어 있는 특정지역에 사는 성향을 보이고 있는데, 그들만의 촌락을 꾸려 살아가거나 알레포 북쪽이나 Jazirah 지역 같은 도시나 지방에 자신들의 구역을 설정하여 공동체를 꾸려나간다. 특히 Jazirah지역 같은 경우는 이질적이게도 정착민들 중 비아랍인들의 비율이 다른 인종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Halab지방이나 Jazirah으로 대표되는 비아랍인들 지역들의 주류아랍지역과 구분되는 특징은 중앙집권적 성향을 가진 중앙정부에게 항상 이슈가 되고 있다.
많은 도시거주자들 같은 경우에는 서구의 언어를 아랍어와 더불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높은 교육수준을 보이는 도시거주민들은 프랑스어를 아랍어만큼이나 유창하게 구사한다. 비록 영어의 사용이 큰 증가를 보이고는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더욱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하나의 나라라고 부르기에는 과도할 정도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시리안 인들은 그들의 공동체들에게는 확고한 충성심을 나타내지만 주정부의 정책들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종교간의 갈등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 예로, 만일 아랍 지주가 그의 땅의 대여비용을 올리면 쿠르드인들은 공동체 전체가 그 땅의 사용을 전면 거부 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한다. 시리아에서 보여지는 극단적 이질성과 사회응집력의 결여는 결국 중앙정부의 전국토의 인종의 아랍화가 불러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비록 비 아랍인들에게 의석수의 어느 정도를 할당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정부의 기조는 시리아의 아랍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시도는 원래 지명인 Jabal Druze를 중앙정부 임의로 Jabal al Arab이라고 바꾼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의 많은 국가가 인종적, 종교적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그들 전체를 하나로 묶어 가려는 시도를 하는데 반해, 시리아는 대대로 시리아의 땅에서 살아 왔던 작은 소수 공동체들이 보이는 중앙정부에 대한 적대감과 중앙정부 역시 이슬람만을 강요한 채 다양한 소그룹들을 아랍화 시키려는 무리한 정책과 슬로건 남발로 인해 잠재적 국내분쟁이 심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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