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다. 그리고 더욱 큰 영향은 북방운동에서부터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조선이 망해가는 시기인데, 이 시기에 가톨릭을 박해 하는데, 이 가톨릭은 조선의 법을 굉장히 많이 어겼다고 박해를 받았다. 그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제사법.
또 하나가 가톨릭교회들은 외세를 끌어들인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그것에 비해 개신교선교사들은 개신교선교사들은 공식적으로 1884년에 들어오는데, 개신교선교사들은 조선에 합법적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개신교선교사들은 조선정부와 항상 법적인 대화를 하였다.
Q.선교를 할 때에 선교지의 법을 지켜야 하는가?
기독교 역사에서는 case를 가지고 예를 드는데, 지켰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며 안 지켰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까. 역사는 바로 그것이다. 실제 case. 그래서 역사적인 면이 중요하다.
미 북장로회, 남장로회
북감리회, 남감리회 = 이들은 선교본부, 주류층, 교단선교단체.
교단하고 상관없이 선교한다는 그룹, 신앙선교단체(~선교회, ex CCC).
신앙선교단체들은 주로 선교지의 법을 안지키고, 교단 선교단체들은 주로 법을 지킨다. 지하교회.
ex) 중국의 법을 어기면서 선교를 하는 그룹이 있다. 그들은 대부 신앙선교단체. (ex중국내지선교회). 암암리에 중국의 권력이 약해지길 바라는데, 결국은 국가 반선교단체인 셈이다.
Q.만약 내가 미국 선교사라면 조선이 안정되게 하는 선교사가 될 것이냐, 망하게 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냐? 생각을 좀 해봐야 할 문제. 당시 미국 선교사들은 어떨까?.
훔버시선교사 사건. 과일을 따먹은 아이의 볼에 도적이라고 낙인찍은 사건.
공동체의 단합, 공동체의 이익 vs 개인의 이익, 개인의 안위, 근면, 정직.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가치체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 개인의 안위와 근면 정직을 우선시 하는 것이 바로 복음주의, Evangelicalism 이다. 이렇게 됐을 때 국가의 이익은 중요시 되지 않는다.
질문할 점.
1)그렇다면 한국교회는 결과론적으로 볼 때, 교파선교단체 vs 신앙선교단체
2)네비우스 선교정책. 자립 자치 자전. 그때 그 자. 는 개를 말하는데, 개교회를 말함.
즉, 교회의 생사는 각자 알아서 전도하고 자급자족 하는데에 달려있다.
3)그렇다면 지금 한국 교회는 기독교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적인 것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기독교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까?
2013.9.12
한국교회사
질문중에, 왜 선교사가 그랬을까요? 라는 질문이 있는데, 이 질문 속에는 (선교사 = Good)이라는 관점이 자리잡고 있어서..
선교사=good 이라는 것은 진실일수도 억측일 수도 있는데, 이것이 신념 내지 신앙이 되버린 것이다.
항상 질문을 하기 전에는, “내가 왜 이게 궁금하지? 내가 왜 이게 알고 싶은걸까?”라고 한번 더 돌아봐야한다.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 <-> 반 그리스도, 교회의 적, 사탄.
순교자//토마스 선교사. 왜 죽었는지를 알아봐야함. 그 이유에 따라 순교자가 될 수도 아닐수도 있다.
상식. common sense. 보편적인 지식. 한국교회가 흔히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 항상 참일까?
\"Again 1907\" 속에는 이미 1907이 좋다는 입장이 속해있음.
공부한다는 것은, 쉽게 누구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편들기 전에 먼저 성찰을 하는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이 사건을 보는 눈들은 몇 개고 관점은 몇 개인가? 그렇다면 난 어떻게 보았는가?
신념이 무너진다고 해서 신앙이 무너지진 않는다.
-정리---------------------------------------------------------------
1779년 조선중반이후, 조선의정신은 유학인데 중기를 넘어가면서 이 정신이 무너지면서 신진유학자들이 서학을 가져다가 유학을 보충하려함. 보유론. 이때 서학은 유교를 배격하는게 아님. 이때 실학자들 몇몇이 모여서 미사를 드리기 시작. 모여서 공부하는거임. 그러다가 이 그룹중 한 명을 중국으로 보내서 세례를 받게 함.
1784년에 이승훈을 중국 신부한테 보내 세례를 받게 함.(공식적인 카톨릭 시작으로봄)
1800년대 들어오면서 카톨릭인들이 엄청나게 순교를 당함. 이 때의 명분이 제사를 안지낸다는 이유. 하지만 지금은 카톨릭에서는 제사를 드림.
마테오리치는 중국화를 찬성해서 사서삼경을 라틴어로 번역해서 봄. 중국 옷도 입음. 마테오리치가 속회있는 곳이 예수회.(서강대) 여기는 일종의 융합정책을 쓴 것.
예수회가 잘못됐다고 들어온 곳이 파리 외방전도회. 여기는 굉장히 보수적임. 이 선교단체에서는 예수회식으로 선교하면 안된다고 생각. 제사 안되!
조선은 카톨릭을 조선을 흔드는 세력으로 인식해서 박해하기 시작했음.
개신교정리----------------------------------------------------------
북방선교: 영국개신교, 프랑스카톨릭, 존로스, 맥킨타이어!!! 중국으로 선교함. 이 사람은 성서공회 사람이라서 성서번역을 마니함. 이 때 같이 동참한 한국인이 이응찬, 서경조, 서상윤. 이 번역한 책을 퍼뜨리러 다니는데 이 사람들을 권서라고 부름. 실질적인 전도를 이 사람들이 했음. 왜 조선인이 북간도 지방에 있었을까? 조선 말, 일체치하에 있어서 살기 힘들어 도망간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동체도 형성하기도 했었음.
소래교회(1884년)-목사없이 평신도들 끼리의 개신교 공동체. 최초임.
남방선교:미국밖에없음 태평양건너~. 그런데 미국이 건너는 데 일본에서 한 번 쉼. 선교기지임. 이 때에 이수정이 일본에서 성경을 함. 언더우드, 아펜젤러 모두 이수정이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선교함.
기장은 캐나다 장로교의 정신임. 북방선교.
남방은 선교사 중심, 북방은 조선인 중심.
미국 선교사들의 선교 정책이 있었음.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올 때에 조선인들 사이에는 카톨릭을 싫어하는 배경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우리는 카톨릭하고 달라요~~”부터 시작한 것이 지금 한국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침.
남방그룹과 북방그룹이 조화를 이루면 좋았지만, 남방그룹이 더
1800년대 후반부터 조선이 망해가는 시기인데, 이 시기에 가톨릭을 박해 하는데, 이 가톨릭은 조선의 법을 굉장히 많이 어겼다고 박해를 받았다. 그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제사법.
또 하나가 가톨릭교회들은 외세를 끌어들인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그것에 비해 개신교선교사들은 개신교선교사들은 공식적으로 1884년에 들어오는데, 개신교선교사들은 조선에 합법적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개신교선교사들은 조선정부와 항상 법적인 대화를 하였다.
Q.선교를 할 때에 선교지의 법을 지켜야 하는가?
기독교 역사에서는 case를 가지고 예를 드는데, 지켰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며 안 지켰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까. 역사는 바로 그것이다. 실제 case. 그래서 역사적인 면이 중요하다.
미 북장로회, 남장로회
북감리회, 남감리회 = 이들은 선교본부, 주류층, 교단선교단체.
교단하고 상관없이 선교한다는 그룹, 신앙선교단체(~선교회, ex CCC).
신앙선교단체들은 주로 선교지의 법을 안지키고, 교단 선교단체들은 주로 법을 지킨다. 지하교회.
ex) 중국의 법을 어기면서 선교를 하는 그룹이 있다. 그들은 대부 신앙선교단체. (ex중국내지선교회). 암암리에 중국의 권력이 약해지길 바라는데, 결국은 국가 반선교단체인 셈이다.
Q.만약 내가 미국 선교사라면 조선이 안정되게 하는 선교사가 될 것이냐, 망하게 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냐? 생각을 좀 해봐야 할 문제. 당시 미국 선교사들은 어떨까?.
훔버시선교사 사건. 과일을 따먹은 아이의 볼에 도적이라고 낙인찍은 사건.
공동체의 단합, 공동체의 이익 vs 개인의 이익, 개인의 안위, 근면, 정직.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가치체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 개인의 안위와 근면 정직을 우선시 하는 것이 바로 복음주의, Evangelicalism 이다. 이렇게 됐을 때 국가의 이익은 중요시 되지 않는다.
질문할 점.
1)그렇다면 한국교회는 결과론적으로 볼 때, 교파선교단체 vs 신앙선교단체
2)네비우스 선교정책. 자립 자치 자전. 그때 그 자. 는 개를 말하는데, 개교회를 말함.
즉, 교회의 생사는 각자 알아서 전도하고 자급자족 하는데에 달려있다.
3)그렇다면 지금 한국 교회는 기독교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적인 것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기독교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까?
2013.9.12
한국교회사
질문중에, 왜 선교사가 그랬을까요? 라는 질문이 있는데, 이 질문 속에는 (선교사 = Good)이라는 관점이 자리잡고 있어서..
선교사=good 이라는 것은 진실일수도 억측일 수도 있는데, 이것이 신념 내지 신앙이 되버린 것이다.
항상 질문을 하기 전에는, “내가 왜 이게 궁금하지? 내가 왜 이게 알고 싶은걸까?”라고 한번 더 돌아봐야한다.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 <-> 반 그리스도, 교회의 적, 사탄.
순교자//토마스 선교사. 왜 죽었는지를 알아봐야함. 그 이유에 따라 순교자가 될 수도 아닐수도 있다.
상식. common sense. 보편적인 지식. 한국교회가 흔히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 항상 참일까?
\"Again 1907\" 속에는 이미 1907이 좋다는 입장이 속해있음.
공부한다는 것은, 쉽게 누구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편들기 전에 먼저 성찰을 하는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이 사건을 보는 눈들은 몇 개고 관점은 몇 개인가? 그렇다면 난 어떻게 보았는가?
신념이 무너진다고 해서 신앙이 무너지진 않는다.
-정리---------------------------------------------------------------
1779년 조선중반이후, 조선의정신은 유학인데 중기를 넘어가면서 이 정신이 무너지면서 신진유학자들이 서학을 가져다가 유학을 보충하려함. 보유론. 이때 서학은 유교를 배격하는게 아님. 이때 실학자들 몇몇이 모여서 미사를 드리기 시작. 모여서 공부하는거임. 그러다가 이 그룹중 한 명을 중국으로 보내서 세례를 받게 함.
1784년에 이승훈을 중국 신부한테 보내 세례를 받게 함.(공식적인 카톨릭 시작으로봄)
1800년대 들어오면서 카톨릭인들이 엄청나게 순교를 당함. 이 때의 명분이 제사를 안지낸다는 이유. 하지만 지금은 카톨릭에서는 제사를 드림.
마테오리치는 중국화를 찬성해서 사서삼경을 라틴어로 번역해서 봄. 중국 옷도 입음. 마테오리치가 속회있는 곳이 예수회.(서강대) 여기는 일종의 융합정책을 쓴 것.
예수회가 잘못됐다고 들어온 곳이 파리 외방전도회. 여기는 굉장히 보수적임. 이 선교단체에서는 예수회식으로 선교하면 안된다고 생각. 제사 안되!
조선은 카톨릭을 조선을 흔드는 세력으로 인식해서 박해하기 시작했음.
개신교정리----------------------------------------------------------
북방선교: 영국개신교, 프랑스카톨릭, 존로스, 맥킨타이어!!! 중국으로 선교함. 이 사람은 성서공회 사람이라서 성서번역을 마니함. 이 때 같이 동참한 한국인이 이응찬, 서경조, 서상윤. 이 번역한 책을 퍼뜨리러 다니는데 이 사람들을 권서라고 부름. 실질적인 전도를 이 사람들이 했음. 왜 조선인이 북간도 지방에 있었을까? 조선 말, 일체치하에 있어서 살기 힘들어 도망간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동체도 형성하기도 했었음.
소래교회(1884년)-목사없이 평신도들 끼리의 개신교 공동체. 최초임.
남방선교:미국밖에없음 태평양건너~. 그런데 미국이 건너는 데 일본에서 한 번 쉼. 선교기지임. 이 때에 이수정이 일본에서 성경을 함. 언더우드, 아펜젤러 모두 이수정이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선교함.
기장은 캐나다 장로교의 정신임. 북방선교.
남방은 선교사 중심, 북방은 조선인 중심.
미국 선교사들의 선교 정책이 있었음.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올 때에 조선인들 사이에는 카톨릭을 싫어하는 배경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우리는 카톨릭하고 달라요~~”부터 시작한 것이 지금 한국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침.
남방그룹과 북방그룹이 조화를 이루면 좋았지만, 남방그룹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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