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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일 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재직.
저서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의 엽서,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등이 있다.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궁금해졌다. <담론>은 지금 필사까지 할 정도로 좋은 책이라 느꼈다. 그래서 인지 신영복 선생님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영복 선생님은 1968년 일명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년의 옥고를 치르신 분이다. 내가 읽은 책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엽서>의 합본이다. 중간 중간 <엽서>에 실린 실제 엽서의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편지글들은 시간 순으로 엮어 선생님의 생각의 변천 과정도 엿볼 수 있고 저자의 입장이 잘 보이도록 편집했다고 한다. 이 책의 초판은 신영복 선생님이 아직 옥중에 계실 때 출판되었기 때문에 소제목을 편집자가 달았지만 내가 읽은 책의 소제목은 신성생님이 직접 다시 달았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20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며 어떤 생각을 품고 사셨는지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한자어가 많아서 읽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사전을 찾아가며 되도록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신성생님이 품은 뜻과 생각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겠지만 어렴풋하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이중에서 선생님의 생각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 내가 느낀 점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1972.3.16. 대전교도소에서 선생님 아버님께 띄운 서신의 일부이다.
“저에게는 아버님으로부터 아버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개성을 가진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이해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 중에서 자식을 아들이 아닌 독립된 인격을 가진 청년으로만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팔순인 부모님이 예순 된 자식에게 차조심 하라고 이른다라는 말에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부모님에게는 아이처럼 보인다고 한다. 어느 순간에 잠깐은 아들이 아닌 독립된 개성을 가진 청년으로 봐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시일 뿐이다. 대부분은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지속적으로 인해하기는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걸 아셨으니 욕심이라는 표현을
저서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의 엽서,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등이 있다.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궁금해졌다. <담론>은 지금 필사까지 할 정도로 좋은 책이라 느꼈다. 그래서 인지 신영복 선생님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영복 선생님은 1968년 일명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년의 옥고를 치르신 분이다. 내가 읽은 책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엽서>의 합본이다. 중간 중간 <엽서>에 실린 실제 엽서의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편지글들은 시간 순으로 엮어 선생님의 생각의 변천 과정도 엿볼 수 있고 저자의 입장이 잘 보이도록 편집했다고 한다. 이 책의 초판은 신영복 선생님이 아직 옥중에 계실 때 출판되었기 때문에 소제목을 편집자가 달았지만 내가 읽은 책의 소제목은 신성생님이 직접 다시 달았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20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며 어떤 생각을 품고 사셨는지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한자어가 많아서 읽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사전을 찾아가며 되도록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신성생님이 품은 뜻과 생각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겠지만 어렴풋하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이중에서 선생님의 생각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 내가 느낀 점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1972.3.16. 대전교도소에서 선생님 아버님께 띄운 서신의 일부이다.
“저에게는 아버님으로부터 아버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개성을 가진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이해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 중에서 자식을 아들이 아닌 독립된 인격을 가진 청년으로만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팔순인 부모님이 예순 된 자식에게 차조심 하라고 이른다라는 말에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부모님에게는 아이처럼 보인다고 한다. 어느 순간에 잠깐은 아들이 아닌 독립된 개성을 가진 청년으로 봐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시일 뿐이다. 대부분은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지속적으로 인해하기는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걸 아셨으니 욕심이라는 표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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