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성경에서 가르치는 승리
1. 승리하려면, 불평을 멈추어야 한다.
2. 승리하려면, 훈련 받아야 한다.
3. 승리하려면 섬겨야 한다.
4. 영적전쟁은 기도해야 한다.
5. 승리하려면, 함께해야 한다.
Ⅲ. 마치며
Ⅱ.성경에서 가르치는 승리
1. 승리하려면, 불평을 멈추어야 한다.
2. 승리하려면, 훈련 받아야 한다.
3. 승리하려면 섬겨야 한다.
4. 영적전쟁은 기도해야 한다.
5. 승리하려면, 함께해야 한다.
Ⅲ. 마치며
본문내용
다. 하나님의 사람이 기쁨을 잃어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사람이 행복하지 못하도록, 그 사람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그 마음이 갈라지고, 피폐해지도록, 무너지도록, 그래서 본진에서 멀어져 하나님을 욕하고 떠나게 하도록, 하나님 마음이 아프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것이 영적 존재인 사탄의 노림수이다. 영적 전쟁은 마귀에 의해서 조종받는 세력이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 한 가지 목적을 두고 영적 전쟁을 일으키는 사탄의 계략 앞에서 우리는 입술을 사탄에게 내어주지 않음으로 반드시 승리해야 할 것이다.
2. 승리하려면, 훈련 받아야 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TV프로그램 중에 ‘날아라 슛돌이’가 있다. 2005년에 시즌1을 했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받은 ‘이강인’선수가 성장하여 현재 스페인 발렌시아 메스타야에서 뛰고 있다. 15년만에 올해 2020년‘날아라 슛돌이 - 뉴 비기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매회 거듭 볼 때 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하고 본다. 오합지졸이었던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아빠에게 그리고 좋은 코치들을 만나 훈련을 받아서 멋진 경기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훈련의 필요성을 발견하였다. 군대의 존재 이유는 ‘강한 군병’을 육성하여,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다.
군대에서는 ‘선착순 ○○명!’과 같은 훈련을 많이 한다. 어떤 목표 지점을 향해 질주 해 갔다가 돌아와야 하는 훈련이다. “전방에 보이는 360m 고지까지 뛰어갔다 와!”
이런 명령을 받고 뛰어가다 보면 꼭 중간에 숨는 병사들이 간혹 있다. 어차피 다시 내려올 테니 그때 슬쩍 끼어들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훈련은 왜 필요할까? 사실, 산에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닐 것이다. 전투에 필요한 튼튼한 근육과 끈질긴 지구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이 훈련의 목적이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하셨던 일을 이루시기 위해 모세를 광야에서 40년동안 훈련시키셨다. 그가 학문적으로 받은 애굽에서의 40년의 훈련을 더한다면, 모세 한 사람이 온전히 주 앞에 서기 까지는 80년의 시간이 경과 되었다. 모세가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 한 분의 음성만을 친밀하게 듣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를 애굽으로 보내셨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야훼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34:10)
모세는 출애굽 당시 바다를 가르시는 역사가 있었고, 기도함으로 만나와 메츄라기를 보내주셨고, 그를 통하여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므리바의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다. 40년 동안 완벽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먹여주셨고, 하늘의 모형이자 성전의 모형인 성막을 보여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친히 거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가장 놀라운 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세가 이곳까지 서기 까지 그냥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기나긴 훈련을 통해서 다른 무엇 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애굽의 왕자였을 때 혈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백성을 압제하는 사람을 죽이고 시신 유기를 했을 때, 성경은 정확히 그의 행실을 기록하고 있다.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출2:12) ‘좌우를 살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그가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출2:13-15)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해결해 보려했던 사람이 훈련 받기 전에 모세였다.
당신이 아시다시피, 그는 결국 그 사건으로 인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게 된다. 그러나, 그가 40년간의 광야에서의 훈련을 통해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부르셨다. 그리고 혈기 많았던 그가 변하여 하나님께 어떤 평가를 받았는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 (민12:3)
솔직히, 대단한 평가 아닌가? 혈기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모세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부르심의 사건 이후에 반드시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훈련의 시간이 모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했다. ‘말씀을 듣는 훈련, 말씀을 기다리는 훈련, 그리고, 말씀이 들려질 때 청종하고, 순종하는 훈련’ 그래서 ‘그 때에’ 므리바에서 물이 없는 그때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말렉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성경은 결국 이 광야 40년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훈련’의 시간이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 신8:2-4)
모세는 원래 실패자였다. 그가 자기의 의와 정열과 의지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를 오히려 낮추셨다. 어느 때 까지 낮아졌는가? 왕자의 신분을 잃어버리고, 한순간에 살인범이 되어
2. 승리하려면, 훈련 받아야 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TV프로그램 중에 ‘날아라 슛돌이’가 있다. 2005년에 시즌1을 했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받은 ‘이강인’선수가 성장하여 현재 스페인 발렌시아 메스타야에서 뛰고 있다. 15년만에 올해 2020년‘날아라 슛돌이 - 뉴 비기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매회 거듭 볼 때 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하고 본다. 오합지졸이었던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아빠에게 그리고 좋은 코치들을 만나 훈련을 받아서 멋진 경기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훈련의 필요성을 발견하였다. 군대의 존재 이유는 ‘강한 군병’을 육성하여,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다.
군대에서는 ‘선착순 ○○명!’과 같은 훈련을 많이 한다. 어떤 목표 지점을 향해 질주 해 갔다가 돌아와야 하는 훈련이다. “전방에 보이는 360m 고지까지 뛰어갔다 와!”
이런 명령을 받고 뛰어가다 보면 꼭 중간에 숨는 병사들이 간혹 있다. 어차피 다시 내려올 테니 그때 슬쩍 끼어들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훈련은 왜 필요할까? 사실, 산에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닐 것이다. 전투에 필요한 튼튼한 근육과 끈질긴 지구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이 훈련의 목적이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하셨던 일을 이루시기 위해 모세를 광야에서 40년동안 훈련시키셨다. 그가 학문적으로 받은 애굽에서의 40년의 훈련을 더한다면, 모세 한 사람이 온전히 주 앞에 서기 까지는 80년의 시간이 경과 되었다. 모세가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 한 분의 음성만을 친밀하게 듣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를 애굽으로 보내셨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야훼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34:10)
모세는 출애굽 당시 바다를 가르시는 역사가 있었고, 기도함으로 만나와 메츄라기를 보내주셨고, 그를 통하여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므리바의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다. 40년 동안 완벽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먹여주셨고, 하늘의 모형이자 성전의 모형인 성막을 보여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친히 거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가장 놀라운 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세가 이곳까지 서기 까지 그냥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기나긴 훈련을 통해서 다른 무엇 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애굽의 왕자였을 때 혈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백성을 압제하는 사람을 죽이고 시신 유기를 했을 때, 성경은 정확히 그의 행실을 기록하고 있다.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출2:12) ‘좌우를 살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그가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출2:13-15)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해결해 보려했던 사람이 훈련 받기 전에 모세였다.
당신이 아시다시피, 그는 결국 그 사건으로 인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게 된다. 그러나, 그가 40년간의 광야에서의 훈련을 통해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부르셨다. 그리고 혈기 많았던 그가 변하여 하나님께 어떤 평가를 받았는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 (민12:3)
솔직히, 대단한 평가 아닌가? 혈기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모세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부르심의 사건 이후에 반드시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훈련의 시간이 모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했다. ‘말씀을 듣는 훈련, 말씀을 기다리는 훈련, 그리고, 말씀이 들려질 때 청종하고, 순종하는 훈련’ 그래서 ‘그 때에’ 므리바에서 물이 없는 그때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말렉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성경은 결국 이 광야 40년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훈련’의 시간이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 신8:2-4)
모세는 원래 실패자였다. 그가 자기의 의와 정열과 의지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를 오히려 낮추셨다. 어느 때 까지 낮아졌는가? 왕자의 신분을 잃어버리고, 한순간에 살인범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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