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1. 파시즘의 대두와 권력 장악
2. 파시즘의 전개 과정과 지배 방식
3. 파시즘 체제하의 사회와 경제
4. 파시즘의 쇠망
5. 파시즘 해석을 둘러싼 몇 가지 쟁점
결론
1. 파시즘의 대두와 권력 장악
2. 파시즘의 전개 과정과 지배 방식
3. 파시즘 체제하의 사회와 경제
4. 파시즘의 쇠망
5. 파시즘 해석을 둘러싼 몇 가지 쟁점
결론
본문내용
파시스트 국가가 이들 위에 군림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비마르크스주의적 파시즘 연구는 이 체제의 보편 이론을 추구하기보다는 개별국가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에서 그 뿌리를 찾고자 하는 산발적인 연구로 한정되거나, 파시즘으로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독립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파시즘 등장의 민족적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집중된 이 연구는 마르크스주의적 파시즘 연구에 비해 부진을 면치 못했고, 오히려 우익 진영에서 나온 파시즘 이론으로서 전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냉전기인 195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풍미한 ‘전체주의 이론’이다. 아렌트(H. Arendt)나 브레진스키(Brzezinski)에 의해 개념이 정립된 이 이론은 나치즘과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본질을 전체주의로 규정하고, 이를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비민주적인 독재 체제와는 전혀 다른 ‘역사적으로 독특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정치 현상으로 보았다. 즉, 히틀러나 스탈린 체제는 ①공적 이데올로기, ②일인이 이끄는 단일 정당 정치, ③테러 주의적 비밀경찰과 강제수용소, ④커뮤니케이션의 독점, ⑤무기의 독점, ⑥중앙집권적 통제경제를 통한 전체적 지배, 다시 말해서 ‘개개인의 모든 생활 영역에 대한 영구적인 지배’를 획책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파시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고 파시즘의 본질을 둘러싸고 여전히 논쟁이 무성한 것은 이 이념이 현대 대중사회에서 지니고 있는 파괴적 위력에 못지않게, 그것이 여전히 제3세계에서 지니는 현실적 의미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자본주의 세계의 변경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소탕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 예가 1967년에서 1974년 사이의 그리스의 군사독재나 남미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군부독재이다. 사실 세계금융자본의 지배 아래 놓인 대다수의 저개발 국가들이 의회 민주주의의 정착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 현실이고 보면, 제3세계 국가들의 보편적 독재 체제를 파시즘 체제로 규정하는 논자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에 유럽에서 나타난 고전적인 파시즘 국가와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제3세계 독재국가들은 만성적인 경제 위기에 처해있기는 하지만 세계공황과 같은 첨예한 위기 상황 하에서 등장한 것은 아니다. 둘째, 고전적인 파시즘 독재는 대중운동의 도움과 더불어 권력에 도달하고, 이후에는 테러나 조직적인 이데올로기 침투를 통해 그들의 지배를 구축한다. 이를 통해 대중은 부분적으로 체제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반대파들은 이념적으로 대중으로부터 소외되고 만다. 이에 비해 제3세계에서는 독재 체제가 대중운동의 도움으로 권력에 오르지도 않았고, 대중조직의 활용이나 그에 대한 이념적 침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셋째, 제3세계의 대자본가들은 거의 외국에 종속되어 있다. 이런 세 가지 요소를 들어, 오늘날 제3세계에서 나타나는 독재 체제를 파시즘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그 외에도 최근 독일에서 활발하게 개진되고 있는 또 하나의 쟁점은 파시즘과 근대화와의 관계이다. 흔히 독일에서 파시즘의 등장은 국가에 의한 빠른 산업화, 이에 뒤진 정치나 사회 문화의 후진성, 그리고 산업화의 급류를 심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사회집단의 증오와 반동에서 발생한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래서 독일 나치즘은 본질적으로 반근대적인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 사이에, 나치는 본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근대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사회혁명을 수행했다는 주장이 간헐적으로 제기되다가, 최근에 와서는 그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예를 들면 도시화, 자본의 집중화, 농촌 인구의 감소, 여성 고용의 증가, 경제적 불평등, 산업과 기술 발전 등의 진행과정에서 나치즘은 독일 사회와 독일인의 심성 구조에 영향을 끼쳤고, 이를 통해 독일의 전근대적이고도 권위적인 사회구조를 파괴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앞의 주장이 ‘근대성’에 긍정적인 함의를 부여하면서 출발한 데 비해, 포이커트(Peukert)는 근대화에 대한 나치의 기여를 언급하면서도 그 ‘부정적 근대성’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나치 운동은 고도로 합리화된 산업사회에 대한 저항이기보다는 근대사회 내의 근대적인 위기에 대한 대처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즉 경제위기 앞에서 헤게모니 상실의 위기를 겪게 된 전통적인 지배층은 자신들의 특권과 하층계급에 대한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지켜줄 어떤 체제를 필요로 하였고, 이에 나치는 그 해결사로 등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근대사회의 사회적 갈등에 대한 어떤 해소책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나치는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근대적인 기술을 동원한 선전 활동이나 테러를 통해 철저하게 원자화된 사회를 만들어내었다. 이런 나치와 근대화와의 연관성을 둘러싼 논쟁은 깔끔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여전히 진행 중에 있으며, 나치를 근대화 과정과 연계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결론
앞서 살펴본 것처럼 파시즘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이념이다.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사회는 무질서해지고 대중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파시즘은 다른 사상들을 배척하며 대중들의 공포를 조장하고 불안과 증오를 선동하며 이들을 공포에 편승시켰다. 심지어, 대중이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강력한 지도자 밖에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것을 토대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는 대중을 결집시켜 크게 성장하여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었고, 막강한 영향력을 국내외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파시즘은 여러 가지 모순점을 드러냈고 종국에는 전쟁으로 인해 그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아직까지도 파시즘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논쟁이 분분하다. 물론, 고전적인 의미의 파시즘은 커다란 비극을 남긴 채 침몰했으므로 힘을 잃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파시즘이란 사상이 현대에 와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질서의 위기 속에서, 파시즘은 아직도 현대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때문에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스스로 끊임없는 자가진단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비마르크스주의적 파시즘 연구는 이 체제의 보편 이론을 추구하기보다는 개별국가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에서 그 뿌리를 찾고자 하는 산발적인 연구로 한정되거나, 파시즘으로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독립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파시즘 등장의 민족적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집중된 이 연구는 마르크스주의적 파시즘 연구에 비해 부진을 면치 못했고, 오히려 우익 진영에서 나온 파시즘 이론으로서 전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냉전기인 195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풍미한 ‘전체주의 이론’이다. 아렌트(H. Arendt)나 브레진스키(Brzezinski)에 의해 개념이 정립된 이 이론은 나치즘과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본질을 전체주의로 규정하고, 이를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비민주적인 독재 체제와는 전혀 다른 ‘역사적으로 독특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정치 현상으로 보았다. 즉, 히틀러나 스탈린 체제는 ①공적 이데올로기, ②일인이 이끄는 단일 정당 정치, ③테러 주의적 비밀경찰과 강제수용소, ④커뮤니케이션의 독점, ⑤무기의 독점, ⑥중앙집권적 통제경제를 통한 전체적 지배, 다시 말해서 ‘개개인의 모든 생활 영역에 대한 영구적인 지배’를 획책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파시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고 파시즘의 본질을 둘러싸고 여전히 논쟁이 무성한 것은 이 이념이 현대 대중사회에서 지니고 있는 파괴적 위력에 못지않게, 그것이 여전히 제3세계에서 지니는 현실적 의미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자본주의 세계의 변경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소탕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 예가 1967년에서 1974년 사이의 그리스의 군사독재나 남미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군부독재이다. 사실 세계금융자본의 지배 아래 놓인 대다수의 저개발 국가들이 의회 민주주의의 정착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 현실이고 보면, 제3세계 국가들의 보편적 독재 체제를 파시즘 체제로 규정하는 논자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에 유럽에서 나타난 고전적인 파시즘 국가와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제3세계 독재국가들은 만성적인 경제 위기에 처해있기는 하지만 세계공황과 같은 첨예한 위기 상황 하에서 등장한 것은 아니다. 둘째, 고전적인 파시즘 독재는 대중운동의 도움과 더불어 권력에 도달하고, 이후에는 테러나 조직적인 이데올로기 침투를 통해 그들의 지배를 구축한다. 이를 통해 대중은 부분적으로 체제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반대파들은 이념적으로 대중으로부터 소외되고 만다. 이에 비해 제3세계에서는 독재 체제가 대중운동의 도움으로 권력에 오르지도 않았고, 대중조직의 활용이나 그에 대한 이념적 침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셋째, 제3세계의 대자본가들은 거의 외국에 종속되어 있다. 이런 세 가지 요소를 들어, 오늘날 제3세계에서 나타나는 독재 체제를 파시즘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그 외에도 최근 독일에서 활발하게 개진되고 있는 또 하나의 쟁점은 파시즘과 근대화와의 관계이다. 흔히 독일에서 파시즘의 등장은 국가에 의한 빠른 산업화, 이에 뒤진 정치나 사회 문화의 후진성, 그리고 산업화의 급류를 심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사회집단의 증오와 반동에서 발생한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래서 독일 나치즘은 본질적으로 반근대적인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 사이에, 나치는 본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근대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사회혁명을 수행했다는 주장이 간헐적으로 제기되다가, 최근에 와서는 그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예를 들면 도시화, 자본의 집중화, 농촌 인구의 감소, 여성 고용의 증가, 경제적 불평등, 산업과 기술 발전 등의 진행과정에서 나치즘은 독일 사회와 독일인의 심성 구조에 영향을 끼쳤고, 이를 통해 독일의 전근대적이고도 권위적인 사회구조를 파괴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앞의 주장이 ‘근대성’에 긍정적인 함의를 부여하면서 출발한 데 비해, 포이커트(Peukert)는 근대화에 대한 나치의 기여를 언급하면서도 그 ‘부정적 근대성’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나치 운동은 고도로 합리화된 산업사회에 대한 저항이기보다는 근대사회 내의 근대적인 위기에 대한 대처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즉 경제위기 앞에서 헤게모니 상실의 위기를 겪게 된 전통적인 지배층은 자신들의 특권과 하층계급에 대한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지켜줄 어떤 체제를 필요로 하였고, 이에 나치는 그 해결사로 등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근대사회의 사회적 갈등에 대한 어떤 해소책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나치는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근대적인 기술을 동원한 선전 활동이나 테러를 통해 철저하게 원자화된 사회를 만들어내었다. 이런 나치와 근대화와의 연관성을 둘러싼 논쟁은 깔끔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여전히 진행 중에 있으며, 나치를 근대화 과정과 연계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결론
앞서 살펴본 것처럼 파시즘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이념이다.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사회는 무질서해지고 대중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파시즘은 다른 사상들을 배척하며 대중들의 공포를 조장하고 불안과 증오를 선동하며 이들을 공포에 편승시켰다. 심지어, 대중이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강력한 지도자 밖에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것을 토대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는 대중을 결집시켜 크게 성장하여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었고, 막강한 영향력을 국내외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파시즘은 여러 가지 모순점을 드러냈고 종국에는 전쟁으로 인해 그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아직까지도 파시즘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논쟁이 분분하다. 물론, 고전적인 의미의 파시즘은 커다란 비극을 남긴 채 침몰했으므로 힘을 잃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파시즘이란 사상이 현대에 와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질서의 위기 속에서, 파시즘은 아직도 현대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때문에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스스로 끊임없는 자가진단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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