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불편한 믿음
1장.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천국을 만드는 믿음의 공식.
2장. 우리의 믿음 vs 하나님의 사랑.
사랑, 취약성이 능력이다.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독생자의 의미.
독생자란 무엇일까?
3장.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믿으면 무너진다.
사랑하는 삶이 영생이다.
4장. 인문학으로 푸는 믿음의 공식.
제2의 로마서, 레미제라블
인류의 역사를 이끈 기독교의 믿음
5장. 믿음의 능력을 얻는 방법: 타자 앞에 서 보기.
믿음의 능력은 환란으로 시작된다.
깨어져야 얻는다. 야이로의 믿음.
믿음은 확신이 아닌 두려움이다. 베드로의 믿음
천국의 주인공, 강도의 믿음
6장. 세상과 소통하는 믿음의 능력.
믿음으로 세상이 바뀔까?
진짜 답은 울타리 밖에 있다.
Ⅲ. 소감 및 감상평
Ⅱ. 불편한 믿음
1장.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천국을 만드는 믿음의 공식.
2장. 우리의 믿음 vs 하나님의 사랑.
사랑, 취약성이 능력이다.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독생자의 의미.
독생자란 무엇일까?
3장.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믿으면 무너진다.
사랑하는 삶이 영생이다.
4장. 인문학으로 푸는 믿음의 공식.
제2의 로마서, 레미제라블
인류의 역사를 이끈 기독교의 믿음
5장. 믿음의 능력을 얻는 방법: 타자 앞에 서 보기.
믿음의 능력은 환란으로 시작된다.
깨어져야 얻는다. 야이로의 믿음.
믿음은 확신이 아닌 두려움이다. 베드로의 믿음
천국의 주인공, 강도의 믿음
6장. 세상과 소통하는 믿음의 능력.
믿음으로 세상이 바뀔까?
진짜 답은 울타리 밖에 있다.
Ⅲ. 소감 및 감상평
본문내용
자기 믿음이다. 그 믿음의 시간에 비례해서 능력이 경험되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믿은 자가 나중되기도 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기도 한다.
6장. 세상과 소통하는 믿음의 능력.
믿음으로 세상이 바뀔까?
작은 교회가 절대 선하고, 큰 교회가 절대 악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세상과의 소통능력이다. 물론 교회가 커짐에 따라 보통 그 소통의 능력은 저하된다. 요즘 대형교회는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하지만, 작은 교회도 생존 자체가 절실하다. 그래서 세상과의 소통이 힘들다. 모든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의 이야기는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 많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다. 가난과 질병, 부정의와 불평등, 청년 실업과 갈등, 그리고 전쟁이다. 교회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수 많은 성도가 각자 삶의 현장에서 복잡하고 힘든 그 무한한 문제들을 들고 교회에 온다. 이를 위한 해답과 정답이 연구실이나 회의실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러한 연구와 정답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정말 문제를 해결할 산을 움직일 능력이 그 속에 있을까?
아이 손에 들린 물고기는 헬라어로 ‘옵사리온’이란 뜻이다. 너무 작아서 시장에 팔수도 없어 어부들이 버리는 그런 물고기다. 보리떡 역시 거칠고 맛이 없어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그 런 떡이었다. 그야말로 가난한 아이의 볼품이 없는 점심이다. 과연 안드레가 이 볼품없는 오병이어를 보자기에서 풀어 내 보이면서 예수님께 드리기가 쉬웠을까? 수치심 때문에 조용히 제자들 사이에 와서 앉았을 것이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수치심이다. 누구에게나 허물이 있다. 그래서 그 허물은 어느 정도 감추어지고 포장되어 꺼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 허물이 외부의 힘에 의해 포장될 시간도 없이 밖으로 표출 될 때, 이간은 수치심을 느낀다.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수치심으로 가리지 않고 꺼내 놓았다. 자신의 그 수치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시험하신 이유가 이 본질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천국을 세워나가는 ‘방법’은 인간의 정답이 아닌 볼품없는 오병이어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인 것이다. 이 믿음에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 두려움과 수치심이다.
진짜 답은 울타리 밖에 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이 요구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솔직히 빌립처럼 정답도 안다.세상과 소통 없이 믿음으로 만 도전하는 것은 ‘자기 믿음’으로 사는 이들로도 이미 충분하다. 세상은 우리에게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정확히 말한다. 그리고, 단지 몇 데나리온도 없는 우리의 현실 또한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자기 확신으로 믿는 것보다 세상의 현실과 소통한 후에 도전하는 것은 두려움과 수치심이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 충분한 사랑으로 채웠는데 그 사랑이 흘러가지 않으면 마치 고인물이 썩는 것과 같다. 어떻게 다시 이 사랑을 흐르게 할까? 자기의 믿음의 한계에서 스스로 벗어나서 지금도 이 땅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경험해 볼 수 있을까? 안드레처럼 이 세상의 고통받는 타자앞에 정직히 서보는 것이다. 교회는 복지 단체가 아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사는 곳이다. 그래서, 먼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그 하나님의 얼굴 앞에 마주 서야 한다.
이제 우리도 지루한 우리의 이야기를 넘어선 새로운 세상 속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 우리 교회 주변 이웃들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들이 흘러나올 때, 우리는 믿음이 세상과 소통해 낸 것이다.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니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다.
Ⅲ. 소감 및 감상평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자산이다. 눈에 보이는 자산도 있고, 눈에 안 보이는 자산도 있다.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자산 중에서도 가장 큰 자산은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 크면 큰 일을 할 수 있고, 믿음이 작으면 작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의 믿음은 결코 비상식적이거나 비지성적이기보다 우리의 지성과 경험을 뛰어넘는 초상식적, 초지성적인 믿음이다. 이 시대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일은 이웃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여기며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길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 시대의 모든 신학적 담론으로부터 ‘믿음’을 정의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오히려 믿음에 대한 정의는 불편한 것이 되었다. ‘불편한 것’그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소통의 문제이고, 배타성의 문제이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은 맞지만, 우리가 참된 믿음이 되지 못하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고, 타인과 바른 윤리적 관계 형성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왜 세상과 불통하고 어떻게 해야 믿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목회자와 교수로 오랫동안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책이다. 믿음과 영생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또, 세상의 법칙을 거슬러 믿음으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지적으로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들려준다. 저자는 인간의 본연적 모습을 노출할 것이 중요하다가 역설한다. 감추지 말고 드러냄이 사랑, 믿음, 구원, 영생으로 가는 은혜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취약함을 드러내는 능력, 능력이 커질수록 절대자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마주하기 때문이다.
믿음, 흔하게 쓰는 말이지만, 믿음을 지켜 나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은 참 적다. 로마 시대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이유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손해 보고, 돕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그 무한한 주님의 사랑을 좀더 확실하게 알고 싶다면, 그 사랑 때문에 불편함을 스스로 행함으로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답을 얻고 행동으로 옮기게 될 것이다. 믿음보다 의심이 더 많아지는 세대에 건강한 성경해석과 인문학이 잘 어울려진 책이며, 모든 독자들에게 믿음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소개하는 친절한 영적 길라잡이다. 불편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귀한 책이라 평가하고 싶다.
6장. 세상과 소통하는 믿음의 능력.
믿음으로 세상이 바뀔까?
작은 교회가 절대 선하고, 큰 교회가 절대 악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세상과의 소통능력이다. 물론 교회가 커짐에 따라 보통 그 소통의 능력은 저하된다. 요즘 대형교회는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하지만, 작은 교회도 생존 자체가 절실하다. 그래서 세상과의 소통이 힘들다. 모든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의 이야기는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 많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다. 가난과 질병, 부정의와 불평등, 청년 실업과 갈등, 그리고 전쟁이다. 교회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수 많은 성도가 각자 삶의 현장에서 복잡하고 힘든 그 무한한 문제들을 들고 교회에 온다. 이를 위한 해답과 정답이 연구실이나 회의실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러한 연구와 정답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정말 문제를 해결할 산을 움직일 능력이 그 속에 있을까?
아이 손에 들린 물고기는 헬라어로 ‘옵사리온’이란 뜻이다. 너무 작아서 시장에 팔수도 없어 어부들이 버리는 그런 물고기다. 보리떡 역시 거칠고 맛이 없어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그 런 떡이었다. 그야말로 가난한 아이의 볼품이 없는 점심이다. 과연 안드레가 이 볼품없는 오병이어를 보자기에서 풀어 내 보이면서 예수님께 드리기가 쉬웠을까? 수치심 때문에 조용히 제자들 사이에 와서 앉았을 것이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수치심이다. 누구에게나 허물이 있다. 그래서 그 허물은 어느 정도 감추어지고 포장되어 꺼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 허물이 외부의 힘에 의해 포장될 시간도 없이 밖으로 표출 될 때, 이간은 수치심을 느낀다.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수치심으로 가리지 않고 꺼내 놓았다. 자신의 그 수치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시험하신 이유가 이 본질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천국을 세워나가는 ‘방법’은 인간의 정답이 아닌 볼품없는 오병이어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인 것이다. 이 믿음에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 두려움과 수치심이다.
진짜 답은 울타리 밖에 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이 요구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솔직히 빌립처럼 정답도 안다.세상과 소통 없이 믿음으로 만 도전하는 것은 ‘자기 믿음’으로 사는 이들로도 이미 충분하다. 세상은 우리에게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정확히 말한다. 그리고, 단지 몇 데나리온도 없는 우리의 현실 또한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자기 확신으로 믿는 것보다 세상의 현실과 소통한 후에 도전하는 것은 두려움과 수치심이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 충분한 사랑으로 채웠는데 그 사랑이 흘러가지 않으면 마치 고인물이 썩는 것과 같다. 어떻게 다시 이 사랑을 흐르게 할까? 자기의 믿음의 한계에서 스스로 벗어나서 지금도 이 땅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경험해 볼 수 있을까? 안드레처럼 이 세상의 고통받는 타자앞에 정직히 서보는 것이다. 교회는 복지 단체가 아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사는 곳이다. 그래서, 먼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그 하나님의 얼굴 앞에 마주 서야 한다.
이제 우리도 지루한 우리의 이야기를 넘어선 새로운 세상 속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 우리 교회 주변 이웃들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들이 흘러나올 때, 우리는 믿음이 세상과 소통해 낸 것이다.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니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다.
Ⅲ. 소감 및 감상평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자산이다. 눈에 보이는 자산도 있고, 눈에 안 보이는 자산도 있다.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자산 중에서도 가장 큰 자산은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 크면 큰 일을 할 수 있고, 믿음이 작으면 작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의 믿음은 결코 비상식적이거나 비지성적이기보다 우리의 지성과 경험을 뛰어넘는 초상식적, 초지성적인 믿음이다. 이 시대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일은 이웃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여기며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길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 시대의 모든 신학적 담론으로부터 ‘믿음’을 정의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오히려 믿음에 대한 정의는 불편한 것이 되었다. ‘불편한 것’그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소통의 문제이고, 배타성의 문제이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은 맞지만, 우리가 참된 믿음이 되지 못하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고, 타인과 바른 윤리적 관계 형성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왜 세상과 불통하고 어떻게 해야 믿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목회자와 교수로 오랫동안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책이다. 믿음과 영생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또, 세상의 법칙을 거슬러 믿음으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지적으로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들려준다. 저자는 인간의 본연적 모습을 노출할 것이 중요하다가 역설한다. 감추지 말고 드러냄이 사랑, 믿음, 구원, 영생으로 가는 은혜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취약함을 드러내는 능력, 능력이 커질수록 절대자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마주하기 때문이다.
믿음, 흔하게 쓰는 말이지만, 믿음을 지켜 나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은 참 적다. 로마 시대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이유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손해 보고, 돕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그 무한한 주님의 사랑을 좀더 확실하게 알고 싶다면, 그 사랑 때문에 불편함을 스스로 행함으로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답을 얻고 행동으로 옮기게 될 것이다. 믿음보다 의심이 더 많아지는 세대에 건강한 성경해석과 인문학이 잘 어울려진 책이며, 모든 독자들에게 믿음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소개하는 친절한 영적 길라잡이다. 불편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귀한 책이라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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