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1) 종교개혁의 의의
(2) 종교개혁의 요인과 시작
(3) 종교개혁과 칼빈
1) 칼빈의 삶
2) 칼빈의 개혁
3. 결론
4. 참고문헌 및 출처
2. 본론
(1) 종교개혁의 의의
(2) 종교개혁의 요인과 시작
(3) 종교개혁과 칼빈
1) 칼빈의 삶
2) 칼빈의 개혁
3. 결론
4. 참고문헌 및 출처
본문내용
한다.
그러나 칼빈과 파렐이 떠난 뒤 제네바시의 상황은 훨씬 악화됐다. 도덕적 수준이 쇠퇴해가며 특별평의원들은 목화자들을 종으로 불리듯 행동하고 모든 가장이 교회 참석하는 것이 의무규정이 되었고, 주일 예배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칼빈은 마음을 다잡고 3년 동안 떠나있던 제네바를 떠나있다 다시 돌아와 제네바의 교회 규범을 제정하고 통과시키며 종교개혁을 진행했다.
칼빈의 종교개혁은 다른 종교개혁과 달리 특히 보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단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자유주의자들을 맞이해서는 전통신앙과 신학을 고수했다. 더불어 미사를 폐지하고 교계제도를 원로를 선출하는 방식인 장로제도를 도입했으며, 교회의 성 미술을 배척했다. 유럽 전역으로 종교개혁에 대한 흐름이 커지면서, 개신교회의 신학은 칼빈의 신학에 많은 초점을 맞추게 됐다. 이에 현재 개혁의 전통을 고수하는 신학적 유파를 지칭하는 말로 ‘개혁주의’ ‘칼빈주의’를 사용한다. ‘칼빈주의’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신학이 사상적인 체계를 잡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칼빈의 저서인 <신앙강요>에는 이러한 칼빈의 신앙이 잘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그 본성이 타락해 자신이 구원받을 믿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의미의 ‘전적 타락’,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으시며, 하나님의 선택에는 조건이 없다는 뜻의 ‘무조건적 선택’, 이러한 무조건적인 선택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백성이다는 뜻의 ‘제한 속죄’, 하나님께서 믿음의 은혜를 주시기로 한 사람은 받지 않을 수 없다는 ‘불가항력적 은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심판받지 않고, 구원이 성취된다는 ‘성도의 견인’은 칼빈의 5대 강령이며, 칼빈주의의 핵심 사상이다.
이처럼 칼빈주의는 문화, 경제, 교육, 정치를 막론하고 많은 영향을 끼치며 사람들의 도덕심과 종교심이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왔다. 다만 칼빈이 자신과 종교적인 이념을 달리 가진 크리스천들에게는 비관용적 태도를 보인 점은 비판할 여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3. 결론
칼빈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주장했다. 태어날 때부터 그 본성이 악해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만들 수 없다는 칼빈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대가 바뀌고 아날로그적 삶의 형태에서 디지털화하며 사람들의 삶의 모양은 이전과 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일정하다. 계급은 없어졌으나 자본주의사회의 돈이라는 계급이 보이지 않는 신분제도를 만들고, 종교라는 이름은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된다. 이처럼 사람은 선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패와 불공정함을 두고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16세기에는 종교개혁을 통해 부조리함에 맞서 사람의 도덕과 종교의 시선을 넓혀주었다. 역사는 반복되듯 인간의 죄성이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온다고 느끼는 21세기 이 시점에서, 종교개혁은 우리에게도 다시 한 번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 참고문헌 및 출처
1) 이성덕, <종교개혁 이야기> 살림 2006. 2. 28.
2) Cottret 2000, 812쪽;Parker 2006, 1720쪽
3) Ganoczy 2004, 34쪽;Cottret 2000, 1216쪽;Parker 2006, 21쪽.McGrath 1990, 2227쪽 states that Nicolas Colladon was the source that he attended College de la Marche which McGrath disputes.
4) Parker, T. H. L,John Calvin: a Biograph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2006), 199203.
그러나 칼빈과 파렐이 떠난 뒤 제네바시의 상황은 훨씬 악화됐다. 도덕적 수준이 쇠퇴해가며 특별평의원들은 목화자들을 종으로 불리듯 행동하고 모든 가장이 교회 참석하는 것이 의무규정이 되었고, 주일 예배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칼빈은 마음을 다잡고 3년 동안 떠나있던 제네바를 떠나있다 다시 돌아와 제네바의 교회 규범을 제정하고 통과시키며 종교개혁을 진행했다.
칼빈의 종교개혁은 다른 종교개혁과 달리 특히 보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단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자유주의자들을 맞이해서는 전통신앙과 신학을 고수했다. 더불어 미사를 폐지하고 교계제도를 원로를 선출하는 방식인 장로제도를 도입했으며, 교회의 성 미술을 배척했다. 유럽 전역으로 종교개혁에 대한 흐름이 커지면서, 개신교회의 신학은 칼빈의 신학에 많은 초점을 맞추게 됐다. 이에 현재 개혁의 전통을 고수하는 신학적 유파를 지칭하는 말로 ‘개혁주의’ ‘칼빈주의’를 사용한다. ‘칼빈주의’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신학이 사상적인 체계를 잡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칼빈의 저서인 <신앙강요>에는 이러한 칼빈의 신앙이 잘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그 본성이 타락해 자신이 구원받을 믿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의미의 ‘전적 타락’,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으시며, 하나님의 선택에는 조건이 없다는 뜻의 ‘무조건적 선택’, 이러한 무조건적인 선택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백성이다는 뜻의 ‘제한 속죄’, 하나님께서 믿음의 은혜를 주시기로 한 사람은 받지 않을 수 없다는 ‘불가항력적 은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심판받지 않고, 구원이 성취된다는 ‘성도의 견인’은 칼빈의 5대 강령이며, 칼빈주의의 핵심 사상이다.
이처럼 칼빈주의는 문화, 경제, 교육, 정치를 막론하고 많은 영향을 끼치며 사람들의 도덕심과 종교심이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왔다. 다만 칼빈이 자신과 종교적인 이념을 달리 가진 크리스천들에게는 비관용적 태도를 보인 점은 비판할 여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3. 결론
칼빈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주장했다. 태어날 때부터 그 본성이 악해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만들 수 없다는 칼빈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대가 바뀌고 아날로그적 삶의 형태에서 디지털화하며 사람들의 삶의 모양은 이전과 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일정하다. 계급은 없어졌으나 자본주의사회의 돈이라는 계급이 보이지 않는 신분제도를 만들고, 종교라는 이름은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된다. 이처럼 사람은 선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패와 불공정함을 두고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16세기에는 종교개혁을 통해 부조리함에 맞서 사람의 도덕과 종교의 시선을 넓혀주었다. 역사는 반복되듯 인간의 죄성이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온다고 느끼는 21세기 이 시점에서, 종교개혁은 우리에게도 다시 한 번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 참고문헌 및 출처
1) 이성덕, <종교개혁 이야기> 살림 2006. 2. 28.
2) Cottret 2000, 812쪽;Parker 2006, 1720쪽
3) Ganoczy 2004, 34쪽;Cottret 2000, 1216쪽;Parker 2006, 21쪽.McGrath 1990, 2227쪽 states that Nicolas Colladon was the source that he attended College de la Marche which McGrath disputes.
4) Parker, T. H. L,John Calvin: a Biograph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2006), 199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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