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할을 수행했다. 적어도 19세기 후반까지 미국은 Skowronek(1982)이 표현한 대로
“법원과 정당의 국가”였던 것이다.
Skowronek(1982)의 지적처럼, 국가형성과정에서 미국이 예외적인 사례인 것은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무국가성(statelessness)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조직화되어 있는 방식이 예외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이센이나 영국과 비교할 때 19세기 미국에서는 집권화 관료제화된 자율적 국가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법원과 정당이 국가를 대체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의 의회제 국가에서는 예산편성이 주로 행정부에서 이루어진 반면, 미국에서는 의회 내 정당이 전적으로 예산편성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이러한 역사적 제도적 전통으로 인해 여전히 미국 의회가 예산결정과정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앙으로 국가권력이 집중되기 이전에 극도의 분권화가 이루어져 있었고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다는 점이 미국 국가형성과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이러한 시작 단계에서의 제도적 조건은 이후 전개되는 미국의 행정발전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가 없는 미국의 특징은 남북 전쟁으로 중대한 전환을 맞긴 했지만, 남북 전쟁에 의해 만들어진 재정적군사적 강력한 국가는 전쟁 이후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이 또한 전쟁 이후 약화되었다. 미국에서 연방정부의 기능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1921년의 예산회계법의 제정이 결정적인 계기이며, 특히 뉴딜(New Deal)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3. 한국 국가형성과정의 특징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적인 요소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관료제이다. 현 시점에서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지만 이 세 가지 요소가 형성된 역사적 순서는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
한국의 국가형성과정은 유럽과 흡사해 보이는데, 이는 강력한 국가와 국가 관료제가 가장 먼저 성립하고, 그 이후 국가 주도하에 자본주의가 발전했으며, 가장 늦게 민주주의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제도의 역사적 발전 순서가 흡사하긴해도 한국과 유럽의 결정적인 차이는 국가형성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이다. 국가는 홀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세계 국가체제 속에서 다른 국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었다. 유럽의 경우 국가체제 속에서 다른 국가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형성되었다. 유럽의 국가형성과정과 한국의 국가형성과정의 결정적 차이는 세계 국가체제에 부차적 혹은 종속적으로(subordinate)으로 편입되었으며, 그 결과 국가형성과정이‘단절과 불연속의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다른 제3세계 국가와는 달리 일찍이 일정한 경계 안에 민족이 형성되어 있었고 발달된 관료제를 갖추고 있었지만 이것이 현대의 국가로 지속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지배를 통해 단절과 불연속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관료제 모델의 원형은 프로이센 모델보다 정확하게는 일제 식민지 지배를 거치면서 일본으로부터 이식된 일제가 해석한 프로이센 모델이다. 이와 함께 인접국에 의한 식민지 지배, 반주변주에 의한 주변부의 지배, 제국주의 시대의 종료시점에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 그리고 부국강병을 위한 국가 주도하의 경제발전 등의 특징이 일제 식민지 지배 시대뿐만 아니라 국가 주도하의 경제발전 등의 특징이 일제 식민지 지배 시대 뿐만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한국 행정의 작동 양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키 어렵다.
해방은 우리나라 국가형성과정에 있어 또 하나의 단절과 불연속의 과정이었다. 미군정에 이은 대한민국의 성립에 따라 미국의 정치행정체제가 이후의 제도형성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한국전쟁과 원조경제의 전개는 강제력과 자본축적을 위한 물질적 기초를 독점한 강력한 국가를 출현시킨 결정적 요인이다. 또한 두 가지 세계체제, 즉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세계 국가체제로의 편입 순서도 한국행정의 전개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국가체제에 먼저 편입된 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순서는 우리나라에서 국가와 국가 관료제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다. 역사적 유산과 세계 국가체제의 영향 아래 강력한 국가가 등장했고 이러한 기본 배경하에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국가 주도 산업화의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 의해 노동계급과 중산층의 성장이라는 계급 구성의 변화와 민주시민의식의 성장이 나타났고 이로부터 민주화가 촉발되었던 것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국가관료제의 성장과정 자체가 법치의 제도화 과정이었던 데에 비해 우리의 경우에는 형식적인 법치는 있었지만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라는 실질적인 법치가 제도화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피치자의 동의에 의한 조세징수라는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적 요소가 전면으로 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형식적 혹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이 특징이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이란 곧 납세자이며, 민주주의의 요체는 시민이 납부한 세금의 정당한 사용에 대하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피치자의 동의에 의한 조세징수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가 부각되지 못한 역사적 과정은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 그리고 국민에 대한 국가의 민주적 책무성(democratic accountability)이 제도화되지 않을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앞으로 한국 행정의 주요 과제가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민주적 책무성 확보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4. 우리나라 신자유주의와 신공공관리의 특징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자유주의는 자원 배분 메커니즘으로서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특징이다. 이에따라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방해하는 존재인 국가의 역할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유럽에서 절대군주로부터 신흥 자본가계급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신장하기 위한 사상적 기반이었던 자유주의(liberalism)의 부활이라는 의미에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라고 부른다.
둘
“법원과 정당의 국가”였던 것이다.
Skowronek(1982)의 지적처럼, 국가형성과정에서 미국이 예외적인 사례인 것은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무국가성(statelessness)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조직화되어 있는 방식이 예외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이센이나 영국과 비교할 때 19세기 미국에서는 집권화 관료제화된 자율적 국가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법원과 정당이 국가를 대체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의 의회제 국가에서는 예산편성이 주로 행정부에서 이루어진 반면, 미국에서는 의회 내 정당이 전적으로 예산편성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이러한 역사적 제도적 전통으로 인해 여전히 미국 의회가 예산결정과정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앙으로 국가권력이 집중되기 이전에 극도의 분권화가 이루어져 있었고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다는 점이 미국 국가형성과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이러한 시작 단계에서의 제도적 조건은 이후 전개되는 미국의 행정발전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가 없는 미국의 특징은 남북 전쟁으로 중대한 전환을 맞긴 했지만, 남북 전쟁에 의해 만들어진 재정적군사적 강력한 국가는 전쟁 이후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이 또한 전쟁 이후 약화되었다. 미국에서 연방정부의 기능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1921년의 예산회계법의 제정이 결정적인 계기이며, 특히 뉴딜(New Deal)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3. 한국 국가형성과정의 특징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적인 요소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관료제이다. 현 시점에서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지만 이 세 가지 요소가 형성된 역사적 순서는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
한국의 국가형성과정은 유럽과 흡사해 보이는데, 이는 강력한 국가와 국가 관료제가 가장 먼저 성립하고, 그 이후 국가 주도하에 자본주의가 발전했으며, 가장 늦게 민주주의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제도의 역사적 발전 순서가 흡사하긴해도 한국과 유럽의 결정적인 차이는 국가형성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이다. 국가는 홀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세계 국가체제 속에서 다른 국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었다. 유럽의 경우 국가체제 속에서 다른 국가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형성되었다. 유럽의 국가형성과정과 한국의 국가형성과정의 결정적 차이는 세계 국가체제에 부차적 혹은 종속적으로(subordinate)으로 편입되었으며, 그 결과 국가형성과정이‘단절과 불연속의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다른 제3세계 국가와는 달리 일찍이 일정한 경계 안에 민족이 형성되어 있었고 발달된 관료제를 갖추고 있었지만 이것이 현대의 국가로 지속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지배를 통해 단절과 불연속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관료제 모델의 원형은 프로이센 모델보다 정확하게는 일제 식민지 지배를 거치면서 일본으로부터 이식된 일제가 해석한 프로이센 모델이다. 이와 함께 인접국에 의한 식민지 지배, 반주변주에 의한 주변부의 지배, 제국주의 시대의 종료시점에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 그리고 부국강병을 위한 국가 주도하의 경제발전 등의 특징이 일제 식민지 지배 시대뿐만 아니라 국가 주도하의 경제발전 등의 특징이 일제 식민지 지배 시대 뿐만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한국 행정의 작동 양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키 어렵다.
해방은 우리나라 국가형성과정에 있어 또 하나의 단절과 불연속의 과정이었다. 미군정에 이은 대한민국의 성립에 따라 미국의 정치행정체제가 이후의 제도형성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한국전쟁과 원조경제의 전개는 강제력과 자본축적을 위한 물질적 기초를 독점한 강력한 국가를 출현시킨 결정적 요인이다. 또한 두 가지 세계체제, 즉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세계 국가체제로의 편입 순서도 한국행정의 전개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국가체제에 먼저 편입된 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순서는 우리나라에서 국가와 국가 관료제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다. 역사적 유산과 세계 국가체제의 영향 아래 강력한 국가가 등장했고 이러한 기본 배경하에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국가 주도 산업화의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 의해 노동계급과 중산층의 성장이라는 계급 구성의 변화와 민주시민의식의 성장이 나타났고 이로부터 민주화가 촉발되었던 것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국가관료제의 성장과정 자체가 법치의 제도화 과정이었던 데에 비해 우리의 경우에는 형식적인 법치는 있었지만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라는 실질적인 법치가 제도화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피치자의 동의에 의한 조세징수라는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적 요소가 전면으로 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형식적 혹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이 특징이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이란 곧 납세자이며, 민주주의의 요체는 시민이 납부한 세금의 정당한 사용에 대하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피치자의 동의에 의한 조세징수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가 부각되지 못한 역사적 과정은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 그리고 국민에 대한 국가의 민주적 책무성(democratic accountability)이 제도화되지 않을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앞으로 한국 행정의 주요 과제가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민주적 책무성 확보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4. 우리나라 신자유주의와 신공공관리의 특징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자유주의는 자원 배분 메커니즘으로서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특징이다. 이에따라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방해하는 존재인 국가의 역할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유럽에서 절대군주로부터 신흥 자본가계급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신장하기 위한 사상적 기반이었던 자유주의(liberalism)의 부활이라는 의미에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라고 부른다.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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