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와생활문화) 양반의 일생에 대해 서술 자신을 조선시대 살았던 인물로 상정함 공부 과정, 과거를 보는 과정, 관료와 양반으로서의 활동 등을 가상하여 정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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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통사회와생활문화) 양반의 일생에 대해 서술 자신을 조선시대 살았던 인물로 상정함 공부 과정, 과거를 보는 과정, 관료와 양반으로서의 활동 등을 가상하여 정리할 것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1. 양반의 일생
2. 생활 속 의례생활

본문내용

가 지나면서 아이는 백일을 맞이햇는데 백일에도 역시 이웃들과 친척들이 찾아와 축하를 해주었다. 그 날은 우리 아이가 백일동안 건강히 잘 자랐다는 의미로 여는 잔치로 손님 대접이 후하도록 시어머니가 특히나 신경을 썼었다. 손님들은 아이가 더욱 건강히 오래 살라는 의미로 실패나 옷을 가져왔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귀하고 질이 좋은 것을 골라 시어머니가 매번 쓰다듬고 귀중하게 보호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1년이 되어서 돌잔치를 열었다. 돌잔치에는 백설기나 수수 팥떡을 해서 이웃들에게 돌렸고 손님들을 초대하여 돌잡이를 했다. 돌 상을 차려 그 위에 돌 떡과 실, 돈과 화살, 책, 붓 등을 올려두었고 우리 아이가 그 때 실을 잡아 다른건 몰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라며 손님들이 이야기했다. 시어머니는 아비를 닮아 책을 잡으면 좋겠다고 한 마디 하였으나 나는 아무렴 좋았다. 돌상에 차려진 돌잡이 물건을 보고 아이의 미래를 점치고 바르게 자라라고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진정한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돌잔치를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아이가 무럭무럭 커서 관례를 치르게 되었다. 관례는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공표하는 의식이었는데 관례를 치르고 나서는 성인으로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신랑이 혼인을 했던 14살에 관례식을 하였는데 사실 관례를 일반적으로 많이 하던 것은 아니어서 혼례식과 겹쳐서 올리기도 하였으나 아이가 혼인이 다소 늦어져 관례를 먼저 올리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나에게 깊은 배움과 깨달음을 주셨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날은 참 슬펐다. 상주는 신랑이 되었다. 임종은 정침에서 맞았는데 매번 기운차게 일어나셨던 어머니가 그대로 누워있는 모습은 나에게 많은 슬픔을 주었다. 그래도 원래 계시던 그 자리에서 영면에 드신 것은 나를 비롯한 남은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었는데 그 자리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우리 가문을 떠나지 않고 계속 함께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는 시신을 시상판에 모시고 병풍을 친 뒤에 조문객을 받았다. 집안의 가족들과 이웃들이 모여 마당의 차일에서 밤샘을 했다.
나의 일생은 재례와 의식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나 기초 소양을 쌓고 혼인을 하고 남편을 급제시키기 위해 내조에 힘쓰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어엿한 성인으로 길러내자 평생의 스승같았던 시어머니를 여의었다. 남편이 내내 가문의 영광을 위해 학문에 매진한 것처럼 나역시 가문의 영광을 위해 살아왔다. 각자의 역할은 달랐지만 목적이 같았던 우리 부부는 열렬한 사랑이 없이도 묵묵히 할 일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예부터 정해져있는 법과 관습에 따라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시대가 달라져도 그 형태가 조금씩 달라져도 의미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3. 참고문헌
전통사회와생활문화. 송찬섭, 안승택, 오창현, 오석민, 최은수, 정연식, 정정남, 박현순, 이성임, 권내현, 강정원, 안혜경 지음. 출판문화원. 2016
조선양반의 일생, 규장각한국한연구원, 글항아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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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24.02.02
  • 저작시기2024.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2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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