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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본질로서의 인간을 그가 거부했다는 것이다. 고전파경제학자들이 주장했던 합리적 인간도, 슈티르너가 말한 자기의식도 인정할 수 없었다. 인간은 사회적 환경에 영향받는 존재이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인간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구조주의적인가?
대부분의 서구마르크스주의의 논쟁은 이 두 가지 극단을 중심으로 선회하면서 대립하면서 결국은 비마르크스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까지 치닫고 말았다.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정치적 권위가 무너지고 서구마르크스주의가 몰락해가고 있는 현재가 오히려 마르크스 사상을 어떤 틀지워진 해석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는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마르크스로, 즉 '순수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는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마르크스는 순수하지도 않을뿐더러, 그의 사상은 이미 19세기라는, 이미 옛날이 되어버린 시절의 사상이다. 그리고 비록 부분적인 이론으로 마르크스를 불구화시켰지만 마르크스 사후 120년 동안의 이론적 축적은, 그것이 새로운 개방적 기획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재구성하는 길에 지적 자양분으로서 역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아직 현재형이다. 그리고 읽어야만 하고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다.
구조주의적인가?
대부분의 서구마르크스주의의 논쟁은 이 두 가지 극단을 중심으로 선회하면서 대립하면서 결국은 비마르크스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까지 치닫고 말았다.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정치적 권위가 무너지고 서구마르크스주의가 몰락해가고 있는 현재가 오히려 마르크스 사상을 어떤 틀지워진 해석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는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마르크스로, 즉 '순수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는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마르크스는 순수하지도 않을뿐더러, 그의 사상은 이미 19세기라는, 이미 옛날이 되어버린 시절의 사상이다. 그리고 비록 부분적인 이론으로 마르크스를 불구화시켰지만 마르크스 사후 120년 동안의 이론적 축적은, 그것이 새로운 개방적 기획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재구성하는 길에 지적 자양분으로서 역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아직 현재형이다. 그리고 읽어야만 하고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