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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얼굴] 문장 비평
본문내용
확한 다른 표현을 썼더라면 독자로 하여금 작가 특유의 섬세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지 않나 아쉬움이 있다.
문장이 정확한 문장이야 아니냐 못지 않게 타당성 즉 합리적이냐 아니냐도 작품의 품격을 좌우한다. 아무리 큰 소리를 내서 외쳐도 타당하지 않은 주장은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다.
·걸음걸이의 버릇에 따라 안쪽으로 심하게 닳은 굽, 발가락에서 발등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부풀음과 주름이 잡힌 것 등 사람의 모습을 진정으로 나타내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닐까.
내용의 아릿한 느낌에 비해 구조적으로 뭔지 아귀가 덜 맞는 문장이다. 걸음걸이에 따라 굽이 닳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안쪽이 유독 많이 닳는 사람도 있지만 전체가 고르게 닳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모습을 진정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 것은 딱히 이 소설의 주인공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데 '안쪽으로 심하게 닳은 굽'이라고 해서 특정한 어느 사람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또 '발가락에서 발톱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부풀음과 주름잡힌 것'은 '부풀음과 주름'을 함께 말하고자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경우에는 '부풀음과 주름'으로 하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느낌을 확실하게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주관적인 이론이 아닌가 하는 점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늙을수록 치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내의 지론이었다.
외출을 위해 옷을 갈아입은 아내가 머리를 빗고 엷게 화장을 한다. 화장을 한 늙은 아내를 그가 잠깐 바라본다. 아내를 바라본 남편은 또 다시 상념에 빠져든다. 그 상념은 아내의 치장 지론과는 아주 거리가 먼 '쓸쓸하고 기이한 감정'이다. 이 장면에서 이 느닷없는 아내의 지론이 과연 필요할까.
·며칠 전 아내는 뭔가 쉬쉬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개가 들어왔노라고 말했다.
쉬쉬하는 표정이 어떤 표정일까 알 수 없다. 아마 아내는 어쩌면 불길할 수도 있는 사건,낯선 개의 틈입을 남편에게 설명하는 아내의 두렵고도 조심스런 태도를 이렇게 묘사했다. '쉬쉬하다'는 동사가 관형어로 잘못 쓰인 경우이다.
·기르던 개가 땅을 파거나 울면 초상이 날 전조라는 통설을 그 역시 모르지 않았다.
'통설'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에게 이미 잘 알려져 인정받고 있는 학설'이다. '기르던 개가 땅을 파거나 울면 초상 난다'를 학설로 보기는 억지가 있다. '속설(민간에 전하여 내려오는 설)' 정도의 어휘가 적절하다고 본다.
·그때 그는 끝없이 깊고 거대한 심연 속에서 얼음 속에 갇힌 얼굴을 보았다. 어린아이들이, 그들이 떠나온 세계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 말을 하지 못하듯이 얼음 속의 얼굴을 본 그는 말을 잃었다.
주제문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 두 개의 문장으로 이 소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말을 못하는 까닭과 그가 말을 잃은 이유와의 대비는 과연 적절한가는 좀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얼굴」에서 나타난 모든 것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줄이 끊긴 연, 얼음 속의 얼굴, 집에 들어와 땅을 파고 기분 나뿐 울음을 우는 검정개, 낡아 가는 집, 닫힌 문, 저물어 가는 날, 기이한 정적, 돌아오지 않는 아내 그리고 떠도는 영혼처럼 부는 바람 속에 흩어지는 기억이 죽어 가고 있는 한 남자를 위하여 동원된 것이다. 작가는 어렵사리 이야기를 끌고 왔지만 아내가 생모를 만나지 못한 사연과 양잿물을 마시고 성대를 상한 이야기는 이 소설의 주제와는 아무래도 부합하지 못한다. 굳이 개연성을 찾자면 느닷없이 양잿물을 마실 수 있는 아내의 본질이 줄 끊어진 연처럼 떠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적절하지 못한 몇 개의 작은 이야기로 하여 주제가 후려진 안타까움이 크다. -끝-
문장이 정확한 문장이야 아니냐 못지 않게 타당성 즉 합리적이냐 아니냐도 작품의 품격을 좌우한다. 아무리 큰 소리를 내서 외쳐도 타당하지 않은 주장은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다.
·걸음걸이의 버릇에 따라 안쪽으로 심하게 닳은 굽, 발가락에서 발등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부풀음과 주름이 잡힌 것 등 사람의 모습을 진정으로 나타내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닐까.
내용의 아릿한 느낌에 비해 구조적으로 뭔지 아귀가 덜 맞는 문장이다. 걸음걸이에 따라 굽이 닳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안쪽이 유독 많이 닳는 사람도 있지만 전체가 고르게 닳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모습을 진정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 것은 딱히 이 소설의 주인공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데 '안쪽으로 심하게 닳은 굽'이라고 해서 특정한 어느 사람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또 '발가락에서 발톱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부풀음과 주름잡힌 것'은 '부풀음과 주름'을 함께 말하고자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경우에는 '부풀음과 주름'으로 하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느낌을 확실하게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주관적인 이론이 아닌가 하는 점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늙을수록 치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내의 지론이었다.
외출을 위해 옷을 갈아입은 아내가 머리를 빗고 엷게 화장을 한다. 화장을 한 늙은 아내를 그가 잠깐 바라본다. 아내를 바라본 남편은 또 다시 상념에 빠져든다. 그 상념은 아내의 치장 지론과는 아주 거리가 먼 '쓸쓸하고 기이한 감정'이다. 이 장면에서 이 느닷없는 아내의 지론이 과연 필요할까.
·며칠 전 아내는 뭔가 쉬쉬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개가 들어왔노라고 말했다.
쉬쉬하는 표정이 어떤 표정일까 알 수 없다. 아마 아내는 어쩌면 불길할 수도 있는 사건,낯선 개의 틈입을 남편에게 설명하는 아내의 두렵고도 조심스런 태도를 이렇게 묘사했다. '쉬쉬하다'는 동사가 관형어로 잘못 쓰인 경우이다.
·기르던 개가 땅을 파거나 울면 초상이 날 전조라는 통설을 그 역시 모르지 않았다.
'통설'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에게 이미 잘 알려져 인정받고 있는 학설'이다. '기르던 개가 땅을 파거나 울면 초상 난다'를 학설로 보기는 억지가 있다. '속설(민간에 전하여 내려오는 설)' 정도의 어휘가 적절하다고 본다.
·그때 그는 끝없이 깊고 거대한 심연 속에서 얼음 속에 갇힌 얼굴을 보았다. 어린아이들이, 그들이 떠나온 세계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 말을 하지 못하듯이 얼음 속의 얼굴을 본 그는 말을 잃었다.
주제문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 두 개의 문장으로 이 소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말을 못하는 까닭과 그가 말을 잃은 이유와의 대비는 과연 적절한가는 좀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얼굴」에서 나타난 모든 것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줄이 끊긴 연, 얼음 속의 얼굴, 집에 들어와 땅을 파고 기분 나뿐 울음을 우는 검정개, 낡아 가는 집, 닫힌 문, 저물어 가는 날, 기이한 정적, 돌아오지 않는 아내 그리고 떠도는 영혼처럼 부는 바람 속에 흩어지는 기억이 죽어 가고 있는 한 남자를 위하여 동원된 것이다. 작가는 어렵사리 이야기를 끌고 왔지만 아내가 생모를 만나지 못한 사연과 양잿물을 마시고 성대를 상한 이야기는 이 소설의 주제와는 아무래도 부합하지 못한다. 굳이 개연성을 찾자면 느닷없이 양잿물을 마실 수 있는 아내의 본질이 줄 끊어진 연처럼 떠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적절하지 못한 몇 개의 작은 이야기로 하여 주제가 후려진 안타까움이 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