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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다. 동시에 그것은 새색시의 의견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흥!"
복녀는 역시 코웃음만 쳤다」
이는 '복녀'가 자기 오해로 빚어낸 무지에서 온 결과다. 엄격한 의미에서 왕서방의 결혼과 그녀와는 무관한 일이다. 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왕서방에게 애정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왕서방은 동족인이 아닌 중국인이요. 육체적 관계의 대가로 돈으로써 지불해 주었기 때문이다. 착각에 빠져 있는 '복녀'는 왕서방이 다른 여자와 결혼함으로 인하여 입게 될 경제적 손실과 애정관계의 단절은, 그녀로 하여금 여성 본래의 질투, 배신감 같은 덖을 작용케 하여 분노와 고뇌의 소용돌이에 빠뜨린다. 이제 복'녀'가 설 땅은 없어진 것이다. 결국 그녀의 오해로 야기된 계층 간의 차이는 줄음을 건 사투로 나타난다. '복녀'는 낫을 품에 품고 신혼방에 뛰어들어 왕서방에게 덤벼들다가 도리어 왕서방의 손에 생명을 잃고 만다. 질투란 본능의 충동을 자제할 수만 있었다면 최소한 왕서방에 의해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복녀'가 죽은 지 삼을 후 그녀의 시체는 남편의 손으로 공동묘지에 묻힌다.
「밤중 복녀의 시체는 왕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시체에 는 세 사람 이 둘러 않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서방 또 한 사람은 어떤 한방의사, 왕서방은 말없이 돈주머니를 꺼내어 십원 지폐 석 장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한방의 사의 손에도 십원짜리 두 장이 갔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묘지로 가져갔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삶의 사랑하여 끈질기게 살아온 '복녀' 때문에 굶지 않고 살아온 남편은 비명에 간 아내의 목숨을 몇 푼의 돈으로 교환해 버리는 장면은 우리의 생활 감정까지 맞닿아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할 뿐이다. 작가는 돈이 온갖 것 위에 군림하는 절박하면서 도 냉혹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핵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있다. 그것은 왕서방의 도덕성 여부이다. 왕서방이 도덕적으로 정상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있지만 악인이라고 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복녀'가 죽은 것도 왕서방의 정당방위라고도 볼 수 있으며, 그녀의 남편을 돈으로 매수하여 자연사로 꾸민 것도 칠성문 밖 빈민굴이라는 공간 세계를 눈여겨본다면 어느 정도 이해되어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극적 반항여 '복녀'의 죽음에서 몇 가지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가난은 죄악을 낳게 하는 근원이 되고,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질 때 인간성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말
부유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아쉬움 없이 살아온 그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친일로 민족적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고 그의 찬란한 업적 마져 그 빚을 발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로서의 평가보다는 시대의 선각자로 살아온 그의 평가는 그리 좋지가 못하다.
물론 어릴적부터 아버지로부터 배워온 끝없는 자부심과 오만은 우리 문단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문학의 다양성을 가져 올 수 있었고 금기로만 여겨지던 성과 죽음으로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려한 그의 도전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특히 민중의 솔직한 모습을 그려낸 그의 자연주의 소설은 그 시대의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소설의 현실성 충실하였다.
하지만 작가의 글의 허구성만으로는 쓰여져서는 되지 않는다. 시대를 가늠하고 그 길을 글로 나타낼 수 있고 방향을 제시하여야만 한다. 자신의 안위로 글로 민중을 현혹한 것은 바로 매국으로 치부되어야 한다. 작가의 생명은 바로 그가 지녔던 글의 자존심과 사상 이여야 하는데 자신의 사상을 팔아버림으로 작가의 생명은 그로써 끝이 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흥!"
복녀는 역시 코웃음만 쳤다」
이는 '복녀'가 자기 오해로 빚어낸 무지에서 온 결과다. 엄격한 의미에서 왕서방의 결혼과 그녀와는 무관한 일이다. 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왕서방에게 애정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왕서방은 동족인이 아닌 중국인이요. 육체적 관계의 대가로 돈으로써 지불해 주었기 때문이다. 착각에 빠져 있는 '복녀'는 왕서방이 다른 여자와 결혼함으로 인하여 입게 될 경제적 손실과 애정관계의 단절은, 그녀로 하여금 여성 본래의 질투, 배신감 같은 덖을 작용케 하여 분노와 고뇌의 소용돌이에 빠뜨린다. 이제 복'녀'가 설 땅은 없어진 것이다. 결국 그녀의 오해로 야기된 계층 간의 차이는 줄음을 건 사투로 나타난다. '복녀'는 낫을 품에 품고 신혼방에 뛰어들어 왕서방에게 덤벼들다가 도리어 왕서방의 손에 생명을 잃고 만다. 질투란 본능의 충동을 자제할 수만 있었다면 최소한 왕서방에 의해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복녀'가 죽은 지 삼을 후 그녀의 시체는 남편의 손으로 공동묘지에 묻힌다.
「밤중 복녀의 시체는 왕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시체에 는 세 사람 이 둘러 않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서방 또 한 사람은 어떤 한방의사, 왕서방은 말없이 돈주머니를 꺼내어 십원 지폐 석 장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한방의 사의 손에도 십원짜리 두 장이 갔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묘지로 가져갔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삶의 사랑하여 끈질기게 살아온 '복녀' 때문에 굶지 않고 살아온 남편은 비명에 간 아내의 목숨을 몇 푼의 돈으로 교환해 버리는 장면은 우리의 생활 감정까지 맞닿아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할 뿐이다. 작가는 돈이 온갖 것 위에 군림하는 절박하면서 도 냉혹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핵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있다. 그것은 왕서방의 도덕성 여부이다. 왕서방이 도덕적으로 정상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있지만 악인이라고 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복녀'가 죽은 것도 왕서방의 정당방위라고도 볼 수 있으며, 그녀의 남편을 돈으로 매수하여 자연사로 꾸민 것도 칠성문 밖 빈민굴이라는 공간 세계를 눈여겨본다면 어느 정도 이해되어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극적 반항여 '복녀'의 죽음에서 몇 가지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가난은 죄악을 낳게 하는 근원이 되고,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질 때 인간성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말
부유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아쉬움 없이 살아온 그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친일로 민족적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고 그의 찬란한 업적 마져 그 빚을 발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로서의 평가보다는 시대의 선각자로 살아온 그의 평가는 그리 좋지가 못하다.
물론 어릴적부터 아버지로부터 배워온 끝없는 자부심과 오만은 우리 문단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문학의 다양성을 가져 올 수 있었고 금기로만 여겨지던 성과 죽음으로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려한 그의 도전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특히 민중의 솔직한 모습을 그려낸 그의 자연주의 소설은 그 시대의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소설의 현실성 충실하였다.
하지만 작가의 글의 허구성만으로는 쓰여져서는 되지 않는다. 시대를 가늠하고 그 길을 글로 나타낼 수 있고 방향을 제시하여야만 한다. 자신의 안위로 글로 민중을 현혹한 것은 바로 매국으로 치부되어야 한다. 작가의 생명은 바로 그가 지녔던 글의 자존심과 사상 이여야 하는데 자신의 사상을 팔아버림으로 작가의 생명은 그로써 끝이 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