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생애
Ⅱ. 교육사상
Ⅲ. 현대교육사적 의의
Ⅱ. 교육사상
Ⅲ. 현대교육사적 의의
본문내용
교육 위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민중의 역사의식 함양 : 각 계층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이것을 역사적·사회적 전망에서 해결하는 자세를 지니게 일깨워 준다.
지역간·계층간의 화해 : 각 지역간의 이해의 조정, 각 계층간의 화해, 관리와 민중간의 상호신뢰의 회복, 그리고 군주와 신하간의 부자관계의 정립 등 사회 구성원 간의 화해·신뢰감의 조정에 힘쓴다.
5.체벌교육론
교육방법의 하나로 체벌을 인정할 수 있는가. 과연 체벌은 효과가 있는가. 아니,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이 인권적 차원에서 용인될 수 있는가. ……이렇게 체벌교육은 문제가 많다. 그러나 교육의 현장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고, 이것이 불법화되어 있는 나라에서도 체벌로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체벌을 가할 당시의 교사의 교육에 대한 열성을 참작하여 긍정적, 동정적으로 보는 판례가 많다.
위대한 교육사상가들 중에 체벌을 찬양한 사람(플라톤 등)도 있고 그것을 피해야 할 것으로 본 사람(퀸틸리아누스 등)도 있다. 그러나 체벌에 관한 한 절대찬성론자도 없고 절대반대론자도 없음을 우리는 주목하자. 그것이 큰 효과를 나타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페스탈로찌는 어느편에 드는 사람이었던가.
페스탈로찌라면 우선 사랑의 교사라는 인상 때문에 체벌에는 절대 반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은 그는 체벌찬성론자였다. 그의 저작이나 편지, 특히 그중에서 학부모와 주고 받은 편지 속에 이 체벌에 관한 논의가 많이 발견된다.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스케이트와 체벌에 관하여'(1808)라는 논설조의 편지다. 페스탈로찌가 이베르당학원의 원장이었을때, 그 학원의 교사 하나가 어린이의 신체훈련의 방법으로 스케이트를 가르쳤다. 그런데 어느 아이 하나가 한사코 스케이트 배우기를 거부해서 교사는 체벌을 가했다. 그랬더니, 그의 아버지가 교사에게 항의를 해와 이에 대해 페스탈로찌는 이 교사를 옹호하면서 체벌의 필요성을 논한 편지다.
) J. H. Pestalozzi. ber Schlittschuhlaufen und K rperliche Zuchtigung, 위 주 4)의
페스탈로찌全集, 제 7 권 151∼152면
그 논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체벌은 결코 일반적으로 좋은 방법은 아니고, 그러기에 되도록 억제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꼭 필요하고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첫째는 강한 훈련과정에서다. 예를 들어, 정신훈련의 일환으로 겨울철 스케이트를 타게 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아이를 방관하면 되겠는가.
둘째는 부모를 대신한 사랑의 발동이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 사랑의 매를 들 수 있다. 그런데 그 부모를 대신하는 교사는 매를 들 수 없어서야 되겠는가.
세째는 아이의 그릇된 생동을 교정하기 위해서다. 안하무인격으로 교사에 대들고 힘이 약한 친구를 짓궂게 놀리는 아이의 그릇된 행동은 매로라도 다스려져야 하지 않겠는가.
네째는 잘못한 자기 행동에 대한 보상이다. 거짓말을 했기에 그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어 있는 아이가 있다하자. 이 아이는 매를 한대 딱 맞음으로 해서 자기의 행동의 죄책감에서 오는 마음의 부담을 떨쳐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끝으로, 아이를 고무해주기 위해서다. 팽이는 쳐야 돌아간다. 잘 도는 팽이도 안치면 쓰러지고, 쓰러지는 팽이도 치면 돌아간다. 잘하는 아이는 더 잘하라고 고무해주고, 못한 아이는 좀더 잘하라고 꾸짖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Ⅲ. 현대교육사적 의의
페스탈로찌의 교육학 체계를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그것을 현대교육에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는 크게 세 시각이 있으리라 보여진다.
그 첫째는 민중교육의 이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토르프(P.Natrop)의 말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인류의 역사상 이상주의자를 딱 둘만 든다면 하나는 플라톤이고 또 하나는 페스탈로찌다. 이 두 사람이 다 교육을 통해서 인류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그 방법, 즉 그 주요대상은 정반대였다. 플라톤은 철인교육, 페스탈로찌는 정반대로 민중교육이였다. ……그렇다. 교육의 주요대상은 국민의 절대다수인, 그리고 그 주요구성원인 민중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민중의 전면적 각성, 이것이 페스탈로찌 교육학의 귀한 이념이다.
둘째는 교육의 본질을 내재적 소질의 조화적 발전으로 본 데 있다. 이 면에서 페스탈로찌는 교육의 역사에 코페르니크스적인 전환을 일으킨 사람이다. 그는 옛교육과 새교육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밖에서 때려넣는 교육 대신에 안으로부터 움트는 교육으로, 위에서 틀을 짜 그것에 맞추어 인간을 길들이는 교육 대신에 민중 하나 하나가 자신의 삶의 몫과 역사의식에 눈떠 삶을 주체적 개성적 창의적으로 개척하는 아래로부터의 교육으로 전환된 것이다.
세째는 가장 귀한 단층의 교육을, 그의 표현으로는, 도덕·종교교육으로 본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그는 인간의 존재상을 동물적 상태, 사회적 상태, 도덕·종교적 상태라는 세 단층으로 나누고, 인간의 내면적 개성적 주체적 자기결단적 실존적, 그러기에 인격적 존재상을 이 도덕·종교적 상태에 기했다. 오늘날 산업사회 안에서의 교육은 인간의 사회성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인격성을 현저하게 잠식하여 교육의 비인간화 현상을 크게 야기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최근 우선 교육의 인간화를 통해 산업사회의 비인간화현상을 극복해 가자는 소리가 높다. 페스탈로찌는 이미 150년 전에 바로 이점을 예언적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페스탈로찌의 교육사상을 다섯 측면으로 나누어 본바 있다. 이 다섯 측면으로만 한정하여 그의 시각에서 한국교육의 현실을 본다면, 우선 조화적 인격조성은 현저하게 후퇴하고 그 대신 그 자리에 인간의 사회화 교육이 창일하고 있고, 다음 유아교육면에서는 어머니와 아이사이의 사랑의 대화에 의한 교육의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인간의 단층적 존재상의 면에서는 인격성을 일깨워 주어야 할 도덕교육이 국민윤리 교육에 치우치고 있으며, 사회교육면에서는 국민정신교육, 생산기술교육, 여가선용교육에 치우쳐 지역간 계층간의 화해교육이 소홀히 되어 있고, 체벌 교육면에서는 체벌의 교육적 의의가 아직 깊이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민중의 역사의식 함양 : 각 계층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이것을 역사적·사회적 전망에서 해결하는 자세를 지니게 일깨워 준다.
지역간·계층간의 화해 : 각 지역간의 이해의 조정, 각 계층간의 화해, 관리와 민중간의 상호신뢰의 회복, 그리고 군주와 신하간의 부자관계의 정립 등 사회 구성원 간의 화해·신뢰감의 조정에 힘쓴다.
5.체벌교육론
교육방법의 하나로 체벌을 인정할 수 있는가. 과연 체벌은 효과가 있는가. 아니,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이 인권적 차원에서 용인될 수 있는가. ……이렇게 체벌교육은 문제가 많다. 그러나 교육의 현장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고, 이것이 불법화되어 있는 나라에서도 체벌로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체벌을 가할 당시의 교사의 교육에 대한 열성을 참작하여 긍정적, 동정적으로 보는 판례가 많다.
위대한 교육사상가들 중에 체벌을 찬양한 사람(플라톤 등)도 있고 그것을 피해야 할 것으로 본 사람(퀸틸리아누스 등)도 있다. 그러나 체벌에 관한 한 절대찬성론자도 없고 절대반대론자도 없음을 우리는 주목하자. 그것이 큰 효과를 나타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페스탈로찌는 어느편에 드는 사람이었던가.
페스탈로찌라면 우선 사랑의 교사라는 인상 때문에 체벌에는 절대 반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은 그는 체벌찬성론자였다. 그의 저작이나 편지, 특히 그중에서 학부모와 주고 받은 편지 속에 이 체벌에 관한 논의가 많이 발견된다.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스케이트와 체벌에 관하여'(1808)라는 논설조의 편지다. 페스탈로찌가 이베르당학원의 원장이었을때, 그 학원의 교사 하나가 어린이의 신체훈련의 방법으로 스케이트를 가르쳤다. 그런데 어느 아이 하나가 한사코 스케이트 배우기를 거부해서 교사는 체벌을 가했다. 그랬더니, 그의 아버지가 교사에게 항의를 해와 이에 대해 페스탈로찌는 이 교사를 옹호하면서 체벌의 필요성을 논한 편지다.
) J. H. Pestalozzi. ber Schlittschuhlaufen und K rperliche Zuchtigung, 위 주 4)의
페스탈로찌全集, 제 7 권 151∼152면
그 논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체벌은 결코 일반적으로 좋은 방법은 아니고, 그러기에 되도록 억제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꼭 필요하고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첫째는 강한 훈련과정에서다. 예를 들어, 정신훈련의 일환으로 겨울철 스케이트를 타게 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아이를 방관하면 되겠는가.
둘째는 부모를 대신한 사랑의 발동이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 사랑의 매를 들 수 있다. 그런데 그 부모를 대신하는 교사는 매를 들 수 없어서야 되겠는가.
세째는 아이의 그릇된 생동을 교정하기 위해서다. 안하무인격으로 교사에 대들고 힘이 약한 친구를 짓궂게 놀리는 아이의 그릇된 행동은 매로라도 다스려져야 하지 않겠는가.
네째는 잘못한 자기 행동에 대한 보상이다. 거짓말을 했기에 그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어 있는 아이가 있다하자. 이 아이는 매를 한대 딱 맞음으로 해서 자기의 행동의 죄책감에서 오는 마음의 부담을 떨쳐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끝으로, 아이를 고무해주기 위해서다. 팽이는 쳐야 돌아간다. 잘 도는 팽이도 안치면 쓰러지고, 쓰러지는 팽이도 치면 돌아간다. 잘하는 아이는 더 잘하라고 고무해주고, 못한 아이는 좀더 잘하라고 꾸짖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Ⅲ. 현대교육사적 의의
페스탈로찌의 교육학 체계를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그것을 현대교육에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는 크게 세 시각이 있으리라 보여진다.
그 첫째는 민중교육의 이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토르프(P.Natrop)의 말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인류의 역사상 이상주의자를 딱 둘만 든다면 하나는 플라톤이고 또 하나는 페스탈로찌다. 이 두 사람이 다 교육을 통해서 인류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그 방법, 즉 그 주요대상은 정반대였다. 플라톤은 철인교육, 페스탈로찌는 정반대로 민중교육이였다. ……그렇다. 교육의 주요대상은 국민의 절대다수인, 그리고 그 주요구성원인 민중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민중의 전면적 각성, 이것이 페스탈로찌 교육학의 귀한 이념이다.
둘째는 교육의 본질을 내재적 소질의 조화적 발전으로 본 데 있다. 이 면에서 페스탈로찌는 교육의 역사에 코페르니크스적인 전환을 일으킨 사람이다. 그는 옛교육과 새교육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밖에서 때려넣는 교육 대신에 안으로부터 움트는 교육으로, 위에서 틀을 짜 그것에 맞추어 인간을 길들이는 교육 대신에 민중 하나 하나가 자신의 삶의 몫과 역사의식에 눈떠 삶을 주체적 개성적 창의적으로 개척하는 아래로부터의 교육으로 전환된 것이다.
세째는 가장 귀한 단층의 교육을, 그의 표현으로는, 도덕·종교교육으로 본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그는 인간의 존재상을 동물적 상태, 사회적 상태, 도덕·종교적 상태라는 세 단층으로 나누고, 인간의 내면적 개성적 주체적 자기결단적 실존적, 그러기에 인격적 존재상을 이 도덕·종교적 상태에 기했다. 오늘날 산업사회 안에서의 교육은 인간의 사회성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인격성을 현저하게 잠식하여 교육의 비인간화 현상을 크게 야기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최근 우선 교육의 인간화를 통해 산업사회의 비인간화현상을 극복해 가자는 소리가 높다. 페스탈로찌는 이미 150년 전에 바로 이점을 예언적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페스탈로찌의 교육사상을 다섯 측면으로 나누어 본바 있다. 이 다섯 측면으로만 한정하여 그의 시각에서 한국교육의 현실을 본다면, 우선 조화적 인격조성은 현저하게 후퇴하고 그 대신 그 자리에 인간의 사회화 교육이 창일하고 있고, 다음 유아교육면에서는 어머니와 아이사이의 사랑의 대화에 의한 교육의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인간의 단층적 존재상의 면에서는 인격성을 일깨워 주어야 할 도덕교육이 국민윤리 교육에 치우치고 있으며, 사회교육면에서는 국민정신교육, 생산기술교육, 여가선용교육에 치우쳐 지역간 계층간의 화해교육이 소홀히 되어 있고, 체벌 교육면에서는 체벌의 교육적 의의가 아직 깊이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